까칠남의 갑질과 엄마 마음
까탈리스트와 궁중삼계탕
오랜만에 구 송도에 있는 궁중삼계탕 집에 갔다. 이름대로 한결같이 고유의 맛을 자랑하는 제법 유명한 맛집이다. 고풍스러운 느낌과 현대적인 깔끔함이 가미된 실내는 적당히 밝았고 따뜻함이 느껴졌다. 테이블 곳곳에서 손님들이 즐겁게 담소하며 식사하고 있었다. 우린 안쪽 약간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등 쪽은 벽면이고 그 아래 폭신하고 길게 이어진 자리는 좀 더 편히 기댈 수 있어서 남편은 늘 안쪽 자리에 나를 앉게 한다.
인삼 향을 은은하게 풍기며 모락모락 김이 나는 뚝배기 궁중삼계탕이 나왔다. 다리 하나를 건져내 막 한 입 뜯으려고 하는데, 손님 한 쌍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여자는 좀 통통한 체격에 키는 작은 편이고 남자는 호리호리한데 여자보다 좀 젊은 느낌이 났다. 대략 보아서 여자는 4~50대 초반 정도, 남자는 20대 후반에서 30대로 보인다. 하필 다른 자리 놔두고 바로 우리 옆자리에 와서 앉는다. 코로나 시국이라 옆 테이블과는 투명 칸막이가 쳐져 있다. 그런데 앉는 위치가 우리와는 반대로 남자가 등 기대기 편한 의자에, 여자는 그 맞은편 의자에 앉는다. 그냥 밥만 먹으면 되는데 괜히 이상한 생각이 든다. 이들은 무슨 사이일까?
남의 일에 신경 쓰지 않고 남편과의 대화에 집중하려고 하는데, 바로 옆자리라 그들의 말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온다.
“전복삼계탕 먹을 거야?” 여자가 물으니
“아니, 싫어.” 남자가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그럼 옻 전복삼계탕은 어때?”
“아니, 싫어. 나 간단히 먹고 싶어.”
“그럼 옻 삼계탕은?” 아주 상냥하게 여자가 다시 물으니
“엉 그러지 뭐.”라며 인심 쓰듯이 남자가 말한다. 그들이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남자는 삼계탕을 먹으려다 말고 음식을 가져온 아주머니를 부른다.
“저 이것 못 먹어요, 이것 보세요. 빨간 피가 보이잖아요.”
“그건 피가 아닌 것 같은데요?” 하며 아주머니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니 앞에 앉아있던 여자가 급히 카운터로 가서 여사장을 데려온다.
“이것 보세요. 음식이 다 조리되지 않아 피가 있는 닭을 가져왔는데 이걸 어떻게 먹겠어요” 여자가 여사장에게 따지듯이 말하니, “여러 번 왔지만 이런 일은 없었는데 이런 것을 어떻게 먹겠어요?”라며 남자가 한 술 더 거든다. 중저음 톤으로 울림이 괜찮은 목소리인데 말하는 품새는 별로 맘에 안 든다.
여사장은 죄송하다며 다시 가져오겠다고 하고 남자의 삼계탕을 들고 갔다. 잠시 후 새로운 삼계탕을 가져왔고, 그 음식을 한술 뜨던 남자가 “이거 전에 내가 먹던 맛이 아닌데? 이건 너무 진한데?” 여자는 다시 카운터에 가서 여사장을 데려온다. 맛이 이상하냐고 여사장이 물었고, 잘해드리려고 재료를 많이 넣었나 보다고 하니 남자는 전에 먹던 것으로 먹고 싶다고 말한다. 여사장은 다시 평범한 것으로 가져오겠다고 하며 삼계탕을 가져갔고, 한참 후 새로운 삼계탕을 가져왔다. 잠시 먹다가 남자가 “이건 국물이 없네? 삼계탕은 국물 맛으로 먹는 건데.” 그러자 여자가 다시 카운터로 가서 뭐라 하니 여사장이 와서 “국물을 여유 있게 다시 갖다 드릴까요?” 한다. “예, 국물 좀 여유 있게 주세요.”
여사장은 삼계탕을 들고 가서 국물을 가득 담아 온다. 남자는 삼계탕을 깨작깨작 먹는다.
옆자리에 앉은 죄로 별수 없이 그들의 대화를 고스란히 들으며, 우린 서로 눈만 멀뚱 마주 보았고 불편한 마음으로 궁중삼계탕을 먹었다.
그들이 얘기하는 도중에 남자가 몇 차례 ‘엄마’라는 호칭을 썼으므로, 까탈 부리는 자식과 이를 무조건 받아주는 엄마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들이 나가고 그가 먹던 그릇을 흘낏 보니 음식이 반이나 그대로 남아있었다. 아무리 귀하고 금쪽같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전혀 통제 없이 무조건 받아주는 것은 오히려 그의 성격이나 그 인생을 망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지난주에는 19개월 된 외손주가 수족구병에 걸려서 4일간 동탄 딸네 집에 가 손주를 돌봐줬다. 밥 먹이고 약도 먹이고 놀아주고 재우고, 고열이 날 땐 해열제도 먹이고 수분 섭취도 잘해야 하는데 애가 잘 안 먹을 땐 애간장이 탄다. 유아식을 먹기 시작한 아이는 골고루 먹다가도 어느 땐 꽂히는 음식만 계속 먹고 다른 건 뱉어버리는 때가 있어서, 어떻게든 골고루 먹여보려고 애를 써 보지만 편식하면 어쩌나 걱정이 은근히 될 때도 있다.
딸이 재택 근무하던 날, 아이가 배도라지 즙을 2개나 먹었는데 한 팩 더 먹겠다고 하니, 딸은 계속 음료만 먹으면 안 좋다고 다음에 먹자고 하며, 결국 애가 우는데도 배도라지 즙을 안 주는 걸 봤다. 아이에게 하루 적정량이 2개란다. 그거라도 하나 더 먹여서 수분 섭취를 해줬으면 하는 할머니의 마음이었지만 괜한 한마디가 잔소리로 들릴까 봐 입을 다문다.
신기한 것은 그다음 날 손주가 배도라지 즙을 하나 먹은 후에 더 달라고 하길래 “주원아, 하나 먹었으니까 다음에 또 먹는 거야?” 하니 말귀를 알아듣고 떼쓰지 않고 순응하는 것을 보았다. 때로는 규칙을 정해서 강하게 키우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아이가 욕구불만이 되지 않게 만족감을 주면서, 절제는 하되 늘 많이 사랑해야 하리라.
부모는 잘 가르치고 좋은 것만 주려 하지만 자식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넘고 처지지 않게 중용을 지키며 올바르게 키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잘 이끌어 주고 경청하고 배려하며, 온 가족이 합심하여 서로 돕고, 일관성 있는 보육을 실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아이가 건강하고 지혜롭고 현명하게 자라길 늘 기도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