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사랑나이팅겔 Feb 01. 2023

송도 달빛공원의 너구리

도심 속의 너구리

송도 달빛공원을 산책하다가 진짜 너구리를 만났다.

예전에 누군가에게 달빛 공원에 너구리가 있다고 듣긴 했었는데, 드디어 오늘 그 녀석을 딱 마주치게 된 것이다.



아점을 먹은 후에 집 근처에 사는 큰애가 와서  머리염색을 해달라고 했다. 오후 3시에 치과 예약이 되어 있었으므로 급하게 염색을 해줬다. 엄밀히 말하면 염색이 아니고 탈색이다. 멋 내기 염색 전에 탈색을 해야 원하는 칼라로 물이 잘 드니까 미리 탈색 작업을 하는 거다. 개는 혼자서 하는데 가끔 뒤까지 속속들이 꼼꼼하게 해야 할 때는 부탁을 하기도 한다.

 너무 자주 탈색과 색을 하는 딸이 걱정스럽지만 본인은 괜찮다고 하니 어쩔 수가 없다. 다만 두피로 탈색약이 흡수되어 어떤 해가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지만, 머릿결이 손상되고 부작용이 없을 수가 없기 때문에 탈색약을 발라 주면서도 마음은 늘 염려가 된다.

난 자연머리색이 더 이쁘고 좋던데, 요즘 애들은 너무 개성이 강하다. 결혼했는데도 핑크나 오렌지, 혹은 와인칼라 등으로 멋 내기를 하고 다니는 딸이 사위는 괜찮다고 하지만 좀 민망 때가 있다.


커낼워크 봄.여름.가을.겨울 중 여름~봄동

커낼워크 여름동에 위치한 치과는 집에서 그리 멀지는 않지만 급할 때는 자동차로 이동한다. 예약을 해 놓고 가서인지 병원은 예약된 손님 외에 한산한 느낌이었다. 정기 검진으로 x-ray를 찍고, 스케일링을 받았다.

충치는 하나도 없지만 한 달 전부터 오른쪽 어금니가 시린 느낌이 들어서 한번 검진하고, 아래 어금니 뿌리 쪽 파인 것 하나를 때웠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윗어금니가 시린 증상이 있어서 다시 갔는데, 오늘은 스케일링만 하고 다음 주에 윗어금니 뿌리 파임을 때우자고 해서 예약해 놓고 왔다. 칫솔질할 때 너무 빡빡 닦지 말고 부드럽게 잘 닦아줘야겠다. 이 닦고 주로 치간칫솔질만 했었는데 이제부턴 치실도 꼼꼼히 사용해 줘야겠다. 치실은 왠지 잘 안 들어가고  친하지 않았었는데, 이젠 치실과도 친숙해져야겠다. 치아는 오복 중의 하나라고 하는데, 복 하나는 따놓은 줄 알았는데, 그 오복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아 심란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커낼 여름 치과


치과진료가 빨리 끝나서 모처럼 해가 있을 때 산책하고 싶어 남편한테 전화했더니, 헬스커뮤니티에 가서 운동하고 있다고 한다. 햇빛 있을 때 걸었으면 좋겠다고 샤워만 하고 일찍 오는 게 어떻겠냐고 하니 오늘따라 커뮤니티 샤워장이 공사 중으로 문 닫았다 하며, 웨이트 트레이닝만 간단히 하고 올 거라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한다. 내일 새벽 작은 집에 손주 봐주러 가는 날이라 여유 있게 주유해 두려고 주유소에 들러서 오니 남편이 먼저 와있었다.


날씨는 어제보다  싸늘한 느낌이 들고, 스케일링도 했기 때문에 감기예방 차원에서 얇은 레깅스를 하나 더 껴 입고 나갔더니 든든했다. 해가 거의 지기 직전이었다. 일단 집에서 출발하여 걸어서 컨벤시아대교까지 갔다가 더프라우 쪽으로 나와서 한식뷔페인 "엄마밥상"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산책을 이어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어느 음식점 앞 가판대에 도토리 묵이 먹음직스러워 보여서 살까 말까 하다가 산책길에 짐이 될까 봐 안 샀는데, "엄마밥상"에 들어가니 도토리묵이 푸짐하고 정갈하게 차려져 있어서 군침이 돌고 기분이 좋았다. 가지런하고 맛깔스럽게 담아놓은 도토리묵을 보며 사장님이 직접 도토리묵을 쑤느냐고 물으니 다른 건 다 하는데 도토리묵은 당신이 끓이지 않는단다. 왠지 끓이다 보면 자꾸 묽어지고 실패해서 아예 묵은 끓이지 않는단다. 나도 도토리묵을 참 좋아하긴 하는데 한 번도 끓여본 적은 없다. 바로 언니는 종종 도토리 가루로 직접 묵 맛있게 잘 쑤던데 이젠 나도 한번 쑤어봐야겠다. 푸짐하게 저녁을 먹고, 엄마밥상 아래 1층에 자리한 She's Bagel Coffee에서 카페라테 샷추가 해서 한잔을 나눠마시고 다시 달빛공원으로 향했다.



날은 어느새 어스름하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포스코고교옆  금강송  노벨동산을 지나서 내려가 달빛공원 수로 쪽으로 걸어서 하트스윙체어까지 걸었다. 기온이 더 내려가는지 비 온 뒤 질펀하던 흙길은 얼어서 걷기 좋은 정도로 꾸덕꾸덕 굳어있고, 가끔 무르게 덜 얼어서 질척거리는 길에서는 옆 잔디길을 밟으며  걸었다. 흙길 바로 옆에 자전거 타는 정돈된 아스팔트 트랙이 있지만 난 흙길로 걷는 게 더 좋다.

달빛공원 수변 산책로



하트스윙체어는 두 대가 있는데,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아 많은 사람이 이용을  한다. 우리가 자주 이용하던 한 대는 벌써  매달아 놓은 한쪽 줄이 끊어져 있었다. 밤이 되고 추워서 인지 다른 한대는 온전했지만 비어있어서 그쪽에 가서 앉았다. 산책하다가  다리도 아프고 적당히 쉬고 싶은 생각이 들무렵, 그 지점에 하트스윙체어가 있어서  우리가 애용하는 장소이다. 흔들흔들 그네도 타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휴대폰 카톡도 확인하고, 딸이 보내온 손주의 귀여운 동영상을 보며 웃기도 하고, 간혹 어머니 친구들에게 전화 하는 편하고 고마운 장소이다.


밤공기가  더 차가워지고 있어 하트스윙체어에서 조금 일찍 일어나 귀가하기로 했다. 송도 2교-컨벤시아대교- 가까이 왔을 때 수변 쪽에서 이상한 물체가 움직였다. " 어? 너구리 같은데?" 먼저 발견한 남편이 소리를 낮춰 말했다. "정말? 와 신기하네!"  무섭다기보다 신기한 느낌이 들어서 소리를 안 내고 지켜보다가 동영상을 찍어봤다. 녀석은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는지 입을 바위틈으로 쭉 집어넣더니 뭔가를 꺼내서 우걱우걱 먹고 있다. 너구리는 입 쪽이 길고 덩치는 큰 고양이보다 크고 중간 개 정도의 크기였으며 꼬리는 풍성했다. 살얼음이 쪼개져 미끌 미끌한 주변을 비척거리듯이 잘도 걸으며 이리저리 뭔가 먹을 것을 찾고 있었다. 전에 누군가 달빛공원에 너구리가 살고 있다고 했는데 오늘 드디어 실물을 만난 것이다. 갑자기 사람 쪽으로 달려들어 덤비지 않을까 조금은 겁도 났지만 구경하는 게 신기하고도 재미있었다. 인도 쪽으로 나오려다가 인기척이 나니까 다시 수변 쪽으로 도망치듯 숨는다. 그러면서 초음파 같은 "끼익"하는 울음소리를 낸다.



몇 달 전에 산책하다가 보니 수로 쪽에서 갈대숲 쪽으로 어떤 동물 두 마리가 날쌔게 달려가는 것을 본 적 있는데, 아마 그때도 너구리였었나? 그땐 들개나 멧돼지 새끼 정도로 알고 무서운 생각이 들었었는데, 도심 주변에서 야생동물이 살고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은 겁도 나기도 한다. 인간에게 해는 끼치지 말았으면...


송도 달빛공원 너구리


들에게 너구리 동영상을 보내며, 엄마아빠는 산책 중이라고 말하니 큰딸에게서 너구리가 사람을 물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톡이 왔다. 어떻게 기 도심까지 너구리가 와서 살지? 하며 의아해했더니, 딸이 하는 말이 간혹 애완용으로 기르다가 싫증이 나거나 병이 나면 밖에 슬그머니 버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에효..., 가까운 청량산에서 혹시나 내려왔을까 하고 생각했지, 그런 생각은 못해봤는데 비양심적인 사람들 때문에 자기 너구리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한번 키우기로 마음먹었으면 끝까지 책임질 줄 알아야지, 이뻐할 땐 들이고 밉다고 버리다니..., 지각없는 사람들의 가벼운 행동 때문에 가엾은 동물들이 힘들어지고 생태계에도 문제가  것 같다. 아파트 정원이나 가까운 공원 내에도 버려진 고양이나 애완견이었던 개들이 떠돌고 다니는 걸 보면 마음이 짠하다.



송도 달빛공원 내의 " 물 빠짐 위험" 경고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수심 1.5m밖에 안 되는 수로의 수변 가드에 걸려있는 "물 빠짐 위험"  플래카드를 보며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떠오르기도 하는 밤이다. 아마도 이태원 참사 이후에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잘해보자는 취지로 걸어놓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참사가 있기 전에 조금 더 신경 썼더라면 그렇게 많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으련만......,

아무 영문도 모르게 무참히 쓰러져 세상을 떠난 젊은 영혼들에게 삼가 명복을 빈다. 무서움과 아픔이 없는 그곳에서는 평안하게 안식하기를...!


그래도 우리 인천시는 공원관리나  시정관리를  잘하고 있는 걸로 보여 다행이라 생각된다. " 공원 내 바닥 미끄럼 주의!"  안내 플래카드까지 설치되어 있다. 눈이 안 녹은 응달진 경사로가 미끄럽긴 하다. 이젠 넘어지면 큰 사고다. 주의! 아무리 급해도 무작정 뛰지 말고, 잘 살펴서 안전하게!!

송도 달빛공원 내의 "미끄럼 주의" 안전 플래카드


PS:  2주 후에 다시 산책 길에 보니 '연수구청 환경보전과'에서 설치한  "너구리 등 야생동물 주의" 안전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걸 봤다.  와우 요즘은 안전 대책이 잘 되어가고 있는 듯......!!


저 멀리 1교 ,국제도시교가 보인다


2교: 컨벤시아대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