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드레스투어'는 드레스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드레스'샵'을 정하기 위한 절차입니다.
내가 스튜디오 촬영과 결혼식 당일에 입을 드레스를 어느 샵에서 고를 건지를 보는 거죠.
처음부터 드레스샵 한 곳을 찜해둔 게 있다면 굳이 투어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여러 후보를 두고 그 사이에서 고민하기 때문에 투어를 하게 됩니다.
저는 하루에 몰아서 총 3곳을 투어했습니다. 다른 분은 4곳까지 하는 것도 봤어요. 참고로 전 3개도 체력적으로 매우 힘들었답니다...
하여튼, 처음에 투어를 어디어디를 가볼지 정하는 것부터 고민이었습니다. 예쁜 곳이 워낙 많아야 말이죠. 처음엔 이 샵을 넣었다가, 저 샵을 넣었다가 왔다갔다 했습니다.
그러다 이렇게 해서는 결정을 못 할 것 같아서 아래와 같이 기준을 확실히 잡고 3곳을 추려보았습니다.
- 어두운 홀이니 비즈감 쩌는 화려한 것을 입겠다
- 공주공주한 스타일은 피하겠다
- 동시예식이기 때문에 2부 드레스도 괜찮은 샵이어야 한다
- 금액별로 상-중상-중, 이렇게 차등을 둬서 후보 샵을 하나씩 골라보자
그렇게 해서 후보 3개를 정하고 난 뒤 플래너님께 카톡으로 알려드렸습니다. 투어를 희망하는 날짜를 말씀드리면 그날에 맞춰 플래너님이 알아서 일정을 잡아주세요. '2시 A샵, 5시 B샵, 7시 C샵' 이런 식으로요.
그럼 투어 날까지 기다리면 됩니다.
투어 전에 각 샵의 화보를 보면서 어떤 드레스를 입어보고 싶은지, 어떤 스타일을 피하고 싶은지 대략적으로 생각해 가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당일에 명확하게 취향을 드레스샵에 말할 수 있거든요.
저는 샵마다 원하는 드레스 디자인을 몇 개 골라서 인쇄한 뒤에, 샵에 갈 때마다 보여드렸습니다.
투어에는 여동생도 데리고 갔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있는 게 투어에서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드레스투어의 가장 치명적인 부분은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겁니다.
보통 한 샵에서 4벌 정도를 입어보는데, 3개 샵을 가면 12벌을 입는 겁니다. 그 12벌의 드레스를 오로지 기억에만 의지해 판단해야 하는 거죠.
사실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공공연한 명분은 '디자인 유출 방지'인데, 납득은 잘 안 됩니다. 이미 드레스 화보와 실착 사진이 SNS와 사이트에 다 퍼져있는데 무슨 유출 방지를 한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냥 지금 제 추측으로는,
① 사진을 못 찍게 해서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겁니다. 사진이 있으면 다른 샵들의 드레스와 대놓고 비교가 될 테니까요.
② 모델의 드레스핏과 일반인의 드레스핏이 다를 수밖에 없으니, 일반인의 사진이 유포가 안 되게끔 막는 건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일반 옷을 살 때도, 상세페이지만 보면 옷이 다 괜찮아 보였는데 리뷰를 보면 짜게 식는 경우가 있잖아요.
걍 이 정도로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하여튼 그래서, 드레스투어 때 필요한 공력이 있습니다. 바로 그림을 그리는 거죠.
사진만큼 정확하진 않더라도, 그 느낌이나 눈에 들어오는 디테일 등은 그림과 글로 어느 정도 기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드레스를 입고 나올 때마다 남편과 여동생이 그림을 각자 그려줬어요.
아래 그림은 제가 투어에서 최종 결정했던 샵에서 남편과 여동생이 각각 그린 스케치입니다.
똑같은 드레스를 보고 그린 건데 각자 눈에 담는 건 좀 다르죠?ㅎㅎ 그래서 둘 이상 동행자와 같이 가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최대한 많은 부분을 기록할 수 있고, 의견도 다양하게 들을 수 있어서요.
저런 도안은 결혼준비 커뮤니티나 블로그 등을 통해 많이 공유되고 있습니다. 덕분에 저도 큰 도움이 되었어요.
투어를 했던 드레스샵들은 모두 청담동에 있었습니다. 다 거리가 가까워서 도보로 이동했어요.
첫 번째 샵은 가기 전부터 유력 후보였습니다.
화보를 봤을 때 예쁜 드레스도 많았고, 가격이 낮진 않았지만 그렇게 높지도 않았거든요.
분위기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드레스를 갈아입고 나올 때마다 직원분들이 리액션을 엄청 잘해주셨어요.
설령 그것이 자본주의 리액션이라 하더라도, 정말 고마울 만큼 밝고 친절하셨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처음 들린 샵이라서 그런지, 입는 것마다 다 예쁘고 마음에 들었습니다.
당시는 다이어트도 하기 전으로... 드레스가 안 어울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코르셋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없는 허리도 만들어주더라고요.
드레스샵 직원분들 겉모습은 여리여리해도 체력이 엄청나실 것 같아요. 무거운 드레스를 번쩍번쩍 들고 다니시고, 끈으로 허리 꽉꽉 조이고...
아무튼 그래서 첫 번째부터 기분 좋게 드레스 투어를 마쳤습니다. 나머지 두 개 샵이 그저 그렇거나 비슷하다면, 선택은 무조건 첫 번째 샵이라고 생각했죠.
※ 샵 모두 피팅비는 5만원이었는데 계좌이체로 냈습니다.
그런데 그 확신은 두 번째 샵에서 무너졌습니다. 이곳 드레스가 정말 화려하고 맘에 들었습니다.
두 번째 샵은 가격이 쎈 축에 속했는데, 화보가 맘에 들어서 '입어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넣었던 곳입니다.
그런데 기대 이상으로 드레스가 너무 예쁜 겁니다. 첫 번째 샵이 잊혀질 정도로... 남편과 동생 반응도 제일 좋았고요.
그래서 그런가... 여기 직원분들은 프라이드가 엄청 났어요.
친절하시긴 한데, 말 곳곳에 프라이드가 심어져 있어서 '읭? 그정도라고?' 싶을 때도 가~끔 있었습니다ㅎㅎ
근데 그건 그냥 넘길 만큼 드레스가 마음에 들었기에 그냥 이 샵에 마음을 주고 말았습니다.
혹자는 이렇게도 말합니다.
'어차피 손님은 드레스가 얼마짜린지 모르는데, 너무 비싸게 할 필요 없는 거 아니야?'
맞는 말입니다. 손님들은 모를 수도 있어요.
근데 드레스투어를 다녀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확실히 비싼게 예뻤다는 의견이 대다수였어요.
한 번 예쁜 걸 입어보면 쉽게 마음을 내려놓기 어렵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드레스에 적잖은 돈을 쓰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 샵에서 드레스 4벌을 다 입어보고 난 뒤, 샵에서 당일 지정 혜택을 설명해줬습니다.
투어를 갔던 드레스샵 모두 그랬어요. 오늘 내로 해당 샵을 선택하면 추가적인 혜택을 더 준다는 건데, 그 내용은 다들 대동소이 합니다.
투어날 입어봤던 드레스 중 일부는 추가금 없이 진행하게 해준다든가, 나중에 추가금을 할인해 준다든가, 2부 드레스를 무료로 해준다든가 등등…
그렇게 두 번째 투어를 마치고 저희 일행은 카페로 갔습니다.
이때쯤 되면 체력이 많이 고갈됩니다. 드레스 8벌을 입었다 벗었다 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정확히 말하면 '입는다'보다 '들어간다'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아요. 분명 저는 가만히 있고 직원분들이 다 알아서 입혀주고 조여주는데, 그것이 무척이나 힘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카페인 충전을 하고 마지막 샵을 갔습니다. 그런데 여긴 살짝 기대 이하였어요.
아무래도 직전에 봤던 드레스들이 매우 맘에 들어서 그랬는지, 세 번째 샵에서는 큰 인상을 받긴 어렵더라고요. (투어 순서가 달랐다면 생각도 달라졌을까...) 그래서 세 번째 투어는 빠르게 끝이 났습니다.
세 곳을 다녀오고 나니 저는 물론이고 남편과 동생도 지친 상태였습니다.
무조건 저녁은 고기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근처에 있던 찜닭집을 들어갔습니다.
길게 고민 안 하고 저는 두 번째 샵으로 결정했고, 그렇게 플래너에게 전달했습니다.
앞으로 스튜디오 촬영 드레스나 본식 드레스는 두 번째 샵에서 하게 되는 겁니다.
꼭 모든 드레스를 다 한 샵에서만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촬영 드레스와 본식 드레스를 각각 다른 샵에서 하는 경우도 봤습니다.
드레스투어를 앞두신 분들은 투어 전에 화보 많이 봐두시고, 끝나고 나면 꼭 체력 보충하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