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이 잘 안 갔습니다. '우리 부모님과 남자친구(현 남편)의 부모님이 한 공간에 있다?'
그 자리에서 어떤 대화가 오갈지 전혀 감이 안 왔습니다. 차라리 남자친구와 함께 식장에 들어가는 제 모습이 더 머릿속에 잘 그려졌죠.
그래도 상견례를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결혼에서 필수불가결한 이 절차를 먼저 치렀던 친구들에게 어땠는지 물어봤습니다.
'처음에 많이 어색하다', '같이 간 형제들은 가면 말 한마디 안 한다', '서로 칭찬 주고받기에 바쁘다' 등등등 대부분 묘사는 비슷했어요. 그리고 많은 사람이 상견례 장소로 코스요리가 나오는 식당을 추천하더라고요. 음식이 빠지고 들어올 때 그나마 숨 쉴 틈이 생긴다는 겁니다.
물론 편안한 분위기에서 상견례를 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저희 삼촌은 사촌이 결혼할 때 상견례를 고깃집에서 진행하시고, 2차로 다 같이 노래방도 가셨다고 해요. 하지만 저희 부모님은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다 낯을 가리시는 편이거든요. 제가 그걸 또 닮은 것 같고요.
하여튼 그래서 저희는 판교에 있는 한 프랜차이즈 한정식집에서 모이기로 했습니다. 접근성 좋고, 주차장 넓고, 룸 많고, 상견례 후기 많고. 안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예약할 때 어떤 음식 코스를 주문할지 정해야 했는데, 당시 선택지가 2가지였습니다. 쉽게 A코스와 B코스로 나누자면, B코스가 만 원 더 비쌌죠. 제 기억엔 고기 메뉴가 더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 저희는 아무래도 어른들을 모시는 자리이니 B코스로 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근데 누가 상견례 후기에 이렇게 써놨더라고요.
'어차피 상견례는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릅니다. 그건 부모님들도 마찬가지고요. 비싼 거 먹어도 기억이 안 나요'
그래서 A코스로 예약했습니다.
그리고 상견례 당일, 저와 남자친구 그리고 제 동생이 먼저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여유있게 도착한 터라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룸 예약 현황판을 보니 대부분 인원이 6~8명 사이더라고요. 딱 봐도 다들 상견례를 하러 온 것 같았습니다.
잠시 후 양가 부모님이 도착하셨고 룸으로 들어갔습니다.
테이블엔 이렇게 상견례다 장식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건 식당을 예약하기 전에 후기들을 봐서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장식까지 하는 건 좀 과한 거 아닌가' 싶었는데, 막상 당일에 실제로 보니 좋더라고요. 이게 있어서 덕분에 대화거리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원앙도 저 신랑신부 인형도 다 귀여워 보이더군요.
잠시 후, 저희 룸을 담당하신 직원분이 들어오셨습니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시더니 저희에게 축하 인사와 덕담을 해주시더라고요. 지금 기억나는 건 이 정도입니다.
'두 분 결혼 축하드린다', '이렇게 좋은 날 저희 식당을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 '신랑신부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역시나 보아하니 양가 부모님을 닮아서 신랑 신부가 이렇게 선남선녀이다', '오늘 드실 코스는 이런저런 코스로 여차차하니 정성껏 준비해드리겠다'
이렇게 말해주는데, 분위기가 안 살 수가 없습니다. 빈말인 걸 알아도 하하호호. 덕분에 아이스 브레이킹이 됐어요.
역시, 사람들이 상견례를 많이 하는 식당은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상견례를 하기 전에 가장 걱정했던 건 이겁니다.
'자꾸 마뜨면 어떡하지?'
근데 대화가 끊길 일은 생각보다 없었습니다. 처음엔 다소 어색하긴 했지만 대화는 계속 잘 이어졌어요. 네, 제가 잊고 있었던 겁니다. 저희 부모님이든 시부모님이든 사회생활 30년 이상의 경험치가 있다는 것을요. 제아무리 낯가림이 있더라도 이런 자리는 충분히 커버가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저와 남편은 중간중간 추임새만 넣고 이야기를 듣는데 집중했습니다. 제 동생은 처음에 인사할 때 빼곤 아무 말도 안 했어요. 형제자매는 머릿수 채우러 가는 거란 말이 딱 맞았습니다.
대화 주제는 무난했습니다. 양가 부모님 연애담, 저희 어릴 때 이야기, 부모님 어릴 때 이야기, 취미생활 등등.
오히려 결혼 준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많이 없었습니다. 굳이 좋은 자리에서 회의를 할 필요는 없다는 분위기였어요. 상견례 전에 이미 조율된 부분도 많았고요. 예를 들면 예물·예단은 하지 않기로 한다든지 말이죠. 그래서 정해진 것들만 간략히 확인하는 정도의 이야기는 오갔습니다.
그리고 두 시간 뒤, 직원분이 디저트를 갖고 오셨습니다. 이제 룸을 비워줘야 할 시간입니다. 그래야 다음 분들이 와서 또 상견례를 하실테니까요.
마지막으로 다 같이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상견례 자리는 마무리되었습니다. 미리 걱정한 게 무색할 정도로 시간도 빨리 가고 분위기도 편안해졌습니다.
헤어지기 전에 주차장에서 양가 부모님이 서로 작은 선물을 교환하셨어요. 마치 사전에 맞춘 것처럼 각 지역의 특산품을 가져오셨습니다.
저희는 따로 부모님들께 드릴 선물을 준비하진 않았습니다. 결혼준비 커뮤니티를 보면 정과, 꽃바구니, 가방 등 부모님 선물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당시 저도 그렇고, 다른 분들도 상견례 선물을 해야 할지 말지 고민을 하시더라고요. 모든 결혼준비가 그러하듯, 상견례 역시 정답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서 각 집마다 편하신 방법대로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