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짝사랑했다.
텅 빈 시간을 물들이는 이야기를.
텅 빈 시간은 둘로 나뉜다.
밝고 텅 빈 시간과 어둡고 텅 빈 시간.
밝고 텅 빈 시간에는 책을 읽는다.
해가 기울고 글자가 침침해지면 불을 켜고 마저.
잠을 자야 하는데 잠이 안 오는 어둡고 텅 빈 시간은 상상의 시간, 책의 뒷이야기를 이어서 쓰곤 했다.
우리 동네에는 서점도 도서관도 없었다.
학교에 가면 교실에 책장이 하나 있었는데
작고 작은 책장에 오래된 시리즈 책들이 겨우 두 칸 정도 채워져 있었다.
그때, SF시리즈 책을 보고 또 보았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을 처음 읽고 그 논리가 무척 인상적이고 마음에 들어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되새겨보았다.
’ 난 로봇이라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하는 로봇의 독백이 더 뭉클해 내가 대신 울기도 했다.
(몇 년 전 클리라와 태양을 읽고 마음이 저릿해 운 걸 보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책을 짝사랑했다.
책이 좋은데 책이 없었다.
방학에는 어디서 책을 읽나, 긴긴 시간에.
엄마에게 책을 사달라고 했는데, 어쩌다가 한 권, 내 기대에 못 미치는 책.
버스를 타고 20분 가면 큰집이 있었다.
큰집에는 대학생 언니가 둘 있었는데, 외지로 나갔기 때문에 언니들은 없고, 언니들이 읽던 책은 있었다.
명절에 큰집에 가면 책장 유리문을 조심스레 밀고 책을 꺼내 읽었다.
(책 읽어도 돼요, 하고 허락도 맡았다.)
이사도라 던컨, 꿈의 해석, 유토피아 같은 유혹적인 제목의 책들이 가득했다.
그 생각이 나서 버스를 타고 큰집에 갔다, 무작정.
책을 보러 왔다고 했는데, 두 번째 가던 날 큰엄마가,
이거 언니가 아끼는 책들이야, 아무도 못 보게 하는데 네가 와서 본 거 알면 언니가 화내, 했다.
어린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그냥 알았다.
큰엄마의 말투와 표정과 몸짓과 숨에서 그냥 느꼈다.
나와서 다시 버스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책에, 그다음에 뭐라고 쓰여있을까 궁금했다.
내가 모르는 어떤 단어가 또 등장해 저 까만 세상을 밝혀줄까 궁금했다.
영영 알 수는 없겠지만.
그런 책은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어디에 말해야 하는지, 나는 여기 산골짜기 어린이라 아무것도 모르고,
책을 짝사랑만 했다.
그날의 일은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다음 해 여름방학에 수원에서 친척 언니가 놀러 왔다.
그 언니는 출판사에 다닌다고 했다.
엄마가 내가 책을 좋아한다고 언니에게 말했다고 한다.
언니는 책을 한가득 싸가지고 버스를 타고 왔다.
종이박스를 열었는데, 동화책이 한가득.
내가 기대한 엄청난 책들은 아니었지만
아주 웃기고 재밌는 이야기들도 많아서
그중 두 권은 두고두고 읽었다.
지금도 친정 책장에 그 책이 있는데,
이번 추석에 내려가면 가지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