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마당 마루에 짤순이가 있었다.
짤순이는 빨래를 탈수해 주는 기계다.
지금은 세탁기가 집집마다 있지만,
그때 우리 동네에서는 빨래는 손빨래, 탈수는 짤순이였다.
짤순이는 참 재밌는 기계.
뚜껑을 열고 젖은 빨래를 담은 뒤,
동그란 플라스틱 덮개로 빨래를 눌러준다.
(그 덮개로는 원반 던지기 놀이도 했다.)
뚜껑을 닫고 타이머를 원하는 위치로 돌린다.
빨래가 담긴 통이 점점 빨리 빙빙 돈다.
짤순이 아래 달린 호스에서 시원하게 물이 쏟아진다.
짤순이 뚜껑 가운데는 투명한 플라스틱이라 빨래가 돌아가는 모습이 다 보였다.
속도가 점점 느려질 때가 제일 보는 맛이 있었다.
옷이 빙빙 돌며 그리는 동그라미의 색이 점점 선명해진다.
처음보다 더 맑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매직!
어느 날부터 짤순이가 탈수할 때 심하게 흔들렸다.
엄마는 나에게 짤순이를 좀 잡고 있으라고 했다.
좋아하는 심부름이 있다면 바로 이거지.
덜컹거리는 짤순이에 매달리면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재밌었다.
TV 속 연예인들이 흔들리는 장난감 말에 타고
누가 오래 버티는지 겨루는 로데오게임처럼,
나도 짤순이를 꼭 붙잡고 버텼다.
가끔 “아~~~” 하고 소리를 내면
내 목소리가 짤순이의 진동에 맞춰 흔들렸다.
그게 웃겨서 깔깔 웃으면, 웃음소리도 이리저리 튕겨 나와서, 웃으면서 동시에 떨어지지 않으려 배다 다 아팠다.
어쩌다 이럴 때 친구가 놀러 오면 그 애는 나를 보고 마루를 구르며 웃고, 나는 짤순이에 걸쳐서, 그 애는 마루에 누워서 웃다 웃다 지쳐 숨을 고르는 거다.
탈수가 끝나면 빨래를 꺼내 대야에 담고,
슬리퍼를 신고 마당으로 내려간다.
길게 이어진 빨랫줄에 빨래를 하나씩 넌다.
햇빛에 비친 빨래의 그림자가 나붓나붓 흔들린다.
그 사이를 걸으면 시원한 빨래가 가볍게 나를 스친다.
내 기억에서는 더 노랗고 밝은 햇빛,
그 쨍함이 빨래를 알맞게 구워준다.
해가 지기 전에 빨래를 걷어야지.
바싹 마른빨래를 어깨에 하나씩 걸쳐 올릴 때마다
햇빛 냄새가 포근하게 나에게 묻는다.
따뜻하게 마른빨래에서는 시원한 냄새가 나는 게 신기해 킁킁 자꾸 숨을 들이쉰다.
내일도 짤순이가 돌아갈 거고, 난 짤순이가 마루에서 떨어지지 않게 로데오 선수처럼 짤순이를 길들이는 아이.
짤순이,
그 촌스러운 이름이 내 친구처럼 여전히 정겹다.
짤순아, 지금은 내가 널 못 탈 것 같은데, 나에겐 너에게서 떨어지지 않을 아이가 하나 있으니, 덜컹덜컹 흔들리다 마루에서 떨어질까 혹시나 걱정하지 않아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