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그네 타는 법

by 고야씨


지금은 사라진, 내가 다닌 초등학교에, 운동장을 건너 오른쪽 제일 끝에 라일락 나무가 있었다.

그 옆에는 칠이 군데군데 벗겨져 몇 번을 덧칠한 정다운 그네가 있었다. 쇠로 된 그네틀을 만지면 오돌토돌 덮인 몇 겹 페인트의 느낌이 손바닥에 닿았다. 아이들이 하도 만져서 맨질맨질 광택이 도는 질감이 좋아 틀을 잡고 빙빙 돌기도 했다. 그네 의자는 오래된 나무, 손잡이는 쇠사슬 고리였다. 그네를 많이 타면 손에서 쇠 냄새가 났고, 손바닥이 뻐근하게 아프기도 했지만, 그런 건 별 문제가 안 되었다. 그네는 너무너무 신나는 거니까.


손잡이 사슬을 두 손으로 잡고 최대한 뒤로 많이 걸어간다. 그러곤 앞으로 빠르게 달려가며 의자에 뛰어앉는다. 무릎을 구부리며 힘차게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가, 그네의 방향이 바뀔 때 다리를 쭉 뻗으며 배에 힘을 주고 뒤로 눕는다. 휙휙 내 몸이 높이 오르내릴 때까지 반복한다.

그때 눈을 감거나 하늘을 보는 것도 짜릿한 묘미였다.

그네에서 내릴 땐, 그네가 앞으로 간 순간에 손잡이를 놓고 뛰어내려 착지한다.

그때 스스로가 얼마나 멋지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이렇게 재밌는 그네이니 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좋았을 수밖에.

쉬는 시간 그네를 향해 달려가곤 했다.


두 개의 그네를 전교생이 함께 쓰면서도 다툼이 생기지 않았던 건, 우리들이 놀면서 자연스레 깨친, 진짜 그네 타는 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짜 그네 타는 법은 대략 이런 식이었다.


1. 그네는 먼저 온 사람 두 명이 먼저 탄다. 단, 제일 먼저 그네를 타는 건 하루에 한 번 만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달리기가 빨라도 계속 처음으로 그네를 타진 않는 거다.


2. 그네를 정말 많이 탄 사람은 다음번엔 다른 놀이를 한다. 단, 그네 타는 사람이 적으면 맘대로.


3. 그네를 타기 전, 절대 넘어오면 안 되는 곳에 금을 긋는다. 그네가 오가는 범위의 땅을 둥글게 표시하는 거다. 기다리면서 서로서로 다치지 않게 봐준다.


4. 그네 타는 횟수를 같이 정한다. 쉬는 시간과 줄 서 있는 아이들의 수에 따라서 횟수가 달라지곤 하는데 보통 20회 정도로 정해서, 기다리는 사람이 지루하지 않게 빠르게 돌아가는 흐름을 만든다.


5. 그네 타는 사람이 밀어주길 원하면 바로 뒷사람이 밀어준다. 밀어주는 강도는 살살로 시작해 서로 조율하며 올린다. 뒷사람이 저학년 동생이라 밀어주기 힘들 땐 뒷에 줄 서 있는 아이가 도와준다.


6. 한참 탔는데 새로운 아이가 줄을 서러 오면, 그 아이는 깍두기로 제일 앞에 끼워준다. 쉬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은 시간에 따라 늦게 온 아이가 계속 탈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7. 저학년 아이들이 우르르 그네를 타러 오면 고학년 아이들은 다른 곳으로 간다. 저학년은 수업이 일찍 끝나기 때문에, 동생들이 간 다음 쉬는 시간에 고학년끼리 그네를 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하는 아이는 동생들이 그네 타는 걸 도와주기도 하는데 그게 또 기분이 좋다.


글로 쓰니 거창한 느낌도 들지만, 매일매일 밖에 나가 노는 게 일이었으니 자연스럽게 배우고 깨친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같이 노는 법을 배우느라 그렇게 종일 어울려 놀았던 것 같다.



내가 엄마가 돼 아이를 키우면서, 이 세상에 그네 타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걸 알았다. 그네가 있는 놀이터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다 보면, 그네 문제로 일어나는 다툼을 종종 보게 된다.


한 번은 보호자 두 명이 각자의 아이를 그네에 태우곤, 아이들이 내리기 싫어한다는 이유로 한 시간 가까이 그네를 독점했다. 줄 서서 기다리던 아이들이 그네를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가는 일이 반복됐다. 처음엔 줄 선 아이들이 다른 게 재밌어서 가는 건 줄 알고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내 옆을 지나가던 아이의 말이 들렸다. 동생이 내리기 싫어한다고, 안 내릴 거니까 기다리지 말라고 했다는 거다.

그네에 관심을 기울였다. 어른인 내가 안 갈 수가 없었다.

다른 아이들이 그네를 타려고 오래 기다렸다고, 더 타고 싶어하는 마음도 이해하지만, 자녀들에게도 규칙을 가르쳐주는 게 좋지 않겠냐고 조심스럽게 말을 했는데,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보호자들이 나를 노려보면서, 그네가 내 거냐고 묻는 거다. 먼저 왔으면 임자인 거지, 자기 그네도 아니면서 남의 일에 참견을 한다고 했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당황해서 ‘잠시 멈춤’ 상태가 되었는데, 줄을 서 있던 아이들이 그제야 한 마디씩 했다.


난 40분 기다렸어요.

아까 왔는데 동생들이 안 내린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거 하다가 왔는데 아직도 타요.

오래 탈 거라고 다른 거 하라고 했어요.


다른 어른들도 무슨 일인가 하나 둘 모여들었다.


분위기가 이상하다 느꼈는지 그 보호자들은 아이들을 안아서 그네에서 내린 후 놀이터를 재빨리 벗어났다. 그러면서도 놀이터가 자기 거냐고 구시렁거렸다.


...



그때 오래 기다렸던 아이들에게 그네 타는 법 중 하나를 알려주었다. 이제 횟수를 정해서 딱 그만큼만 타고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자고, 그러면 또 금방 내 순서가 되고, 다른 놀이를 하다가 와도 금방 그네에 앉을 수 있다고.




요즘은 아이들도 어른들도 너무 바빠서 그네 타는 법을 알아갈 시간이 없는 것 같다.

‘위험하고 다툼이 잦다고’ 놀이터에서 그네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지저분한’ 모래 바닥과 함께.

아이들은 놀이터에서도 손에 쥔 스크린을 각자 본다.

놀이터는 이제 와이파이존.


뭐가 뭔지 잘 모르겠는 요즘, 어른으로 아이들에게 참 미안하단 생각도 든다.

진짜 그네 타는 법을 자연스레 깨칠 수 있는, 그 길고 느슨한 시간 모두의 시간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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