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디슨과 내 동생

by 고야씨


동생에게 미안한 일들이 많다.

동생은 어리니까 하지 않는 일들을, 난 동생보다 더 어릴 때에도 당연하게 해 왔다.

어쩐지 불공평하단 생각이 들 만큼 자랐을 때,

왜 쟤는 안 해? 왜 나만 집에 있어? 왜 나만 다녀와야 해? 나는 더 어릴 때도 다 했는데 왜 쟤는 못 해?

이런 질문을 하고 되려 혼이 날 때면 동생이 더 얄밉게 보였다.

아이가 엄마를 미워할 수 없으니 그 뾰족한 마음이 다 동생에게로 향했던 것 같다.

나는 나대로, 동생은 동생대로 억울했겠지.

그래서 엄마 아빠가 집에 없으면 싸울 때가,

아니 동생이 어릴 때는 싸움이라기보다는 내가 잡고 골리는 것이었으니,

부딪칠 때가 많았다.


어릴 때 내 별명은 못난이였다.

동생은 나랑 닮았지만 예쁘게 생긴 남자애였다.

막내에, 얼굴도 예쁘고 또 남자애니까 엄마도 동생을 더 좋아했는데, 그게 느껴지는 만큼 내 가시는 더 촘촘해졌다.

난 말을 조잘조잘 잘했는데, 놀릴 때 반응이 재밌다고 동네 사람들이 오며 가며 날 툭툭 건드리곤 했다.


못난이, 너네 엄마는 이쁜데 너는 왜 그렇게 못생겼니?

너네 아빠도 잘생겼는데 너는 왜 못생겼니?

동생도 이쁜데 너는 왜 못난이니?


아, 지금 생각하면 어른들 참 나빴다. 악에 차서 맞받아치는 반응이 웃기다고 동네 유행처럼 놀려댔으니.

어린 나는 센척하곤 몰래 숨어서 우는 자존심이 센 어린이였다.

숨어서 몰래 우는 게 맏이들의 특징이라는 말을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말이 진짜라면 참 서러운 일인 것 같다.


많고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오늘 생각난 건 이디슨 사건.

동생이 한글에 관심이 생겨서 자기 이름 쓰는 법을 배우고, 엄마한테 이게 무슨 글자냐 자주 물어보던 때의 일이다.

얼마나 귀여웠을까.


뒷마당에 빨래를 널어 장대로 빨랫줄을 높이 들어 올리고 우리 집 강아지 깜이랑 놀고 있었다.

동생이 뒷마루로 나와 걸터앉더니,

누나, 전구를 발명한 사람이 우리 친척이지? 했다.

난 아니라고 했다.

동생은, 우리 친적이 맞다고, 책에서 봤다고 했다.

절대 아니라고 다시 말했더니 동생이 방에서 책 한 권을 가지고 나왔다.

표지에 에디슨이라고 쓰여있었다.

동생은, 이거 봐, 우리 친척 맞잖아, 하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에디슨이 어떻게 우리 친척이냐, 미국 사람인데, 했는데,

동생은 바득바득 친척이라고, 이디슨이라고 우겼다.

같은 이 씨니까 친척 맞다고, 여기, 이디슨이라고.


지금 생각하면 너무 귀여운 상황인데 그때 나는 마음속 꽁꽁, 얼음이 단단해서 귀여움을 볼 따뜻함이 없었다.

멍청아, 이거 ‘에‘라는 글자거든! 왜 자꾸 우기는 거야! 미국 사람이라고, 에디슨! 하면서,

별 것도 아닌 일로 동생에게 화를 냈다.


동생은 엉엉 울었고, 나는 엄마에게 혼이 났고, 아무도 없는 데를 찾아 몰래 울었고, 또 미움을 뭉쳐 얼렸고.


이런 일들이 내 기억 속에 미안한 감정으로 잔뜩 모여있는 걸 보면 그때 내 진심은 미안함이었던 것 같다.


온갖 감정들, 모순적인 상황들, 어쩔 수 없는 일들, 알 수 없는 것들까지 한데 얽힌 것이 삶이라서,

몇 개의 이야기들로 무언가를 정의할 순 없다.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나도 우리 강아지도 고야나무도 내 친구들과 이웃들도.

저녁이면 울던 부엉이도, 혀를 물고 쭉 뻗은 개구리도.


다만, 사라지기 전에 기억을 담아 기록하는 일이 여태 얼어있던 오래된 얼음을 차츰 녹인다는 건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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