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어린이가 알다시피, 12월에는 착한 일을 해야 한다.
크리스마스를 잊고 지내다가도 11월쯤 되면 슬슬 크리스마스라는 단어가 들려오고,
그제야 한 해 동안의 선행을 돌아보게 된다.
친구들과 그동안 한 착한 일을 적어보기로 했다.
누군가 하늘에서 듣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고, 우리는 돌아가며 주장하듯 착한 일을 말했다.
강아지 밥을 줬어, 언니 과자 심부름 했어, 신발을 정리했어, 지우개를 빌려줬어, 연필을 깎아줬어, 쓰레기를 주웠어, 장작을 부엌에 옮겨뒀어, 여덟 시에 잤어, 일곱 시에 일어났어, 구슬 딴 거 반 돌려줬어, 방을 쓸었어…
친구의 착한 일을 듣는 것도 중요했다.
깜빡 잊고 있던 내 착한 일을 더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개운하지 않았던 건,
착한 일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나쁜 일을 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생이랑 싸운 일, 심부름시키면 입을 비쭉 내밀고 마지못해 간 일, 곶감을 몰래 하나 더 먹은 일, 알면서 모른 척한 일…
착한 일을 하면 그런 일들이 조금은 지워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12월이 되면 서로 도와주지 못해 안달이었는지도.
착한 일 몇 번으로 지워져서는 안 되는 일도 있다.
개구리를 죽인 일 같은 것.
동네 아이 두 명이 개울 건너에서 쪼그려 앉아 놀고 있었다.
같이 놀려고 복술을 건너 그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친구 ㄱ이 말했다.
“쟤네 개구리를 괴롭히고 있어.”
그리고 차마 여기 적을 수 없는 방법.
웃고 있던 그 애들 얼굴이 무서워, 나는 엄마가 부른다는 거짓말을 하고 집으로 달려갔다.
그래, 더 어릴 때의 나는 잠자리 날개를 찢었었다.
어른들에게 배운 방식이었다.
잠자리를 잡아 날개를 찢어 마루에 두면 날아가지 못하니까.
잠자리를 키우고 싶은 마음에 진딧물 붙은 코스모스 줄기를 가지고 뛰던 발걸음은 그때 가벼웠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래선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자리 날개를 찢은 기억이 괴로워 울던 밤, 순간순간 떠올라 몸서리던 날.
그때의 나도 어린이였고, 개구리를 잔혹하게 괴롭히던 그 애들도 어린이였다.
착한 일 몇 개로 그런 일이 사라질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 애들은 언제쯤, 후회하고 괴로웠을까...
12월에는 바지런히 착한 일을 해야 한다.
착한 일이란 게 뭘까 생각하다가 산책길에 쓰레기라도 줍게 되는 게 잠자리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잠자리를 보면 사과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