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잔놀이 같은

by 고야씨

가끔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요즘 같으면 뉴스 사회면에나 나올 법한 위험천만한 일들이 그때 우리에겐 일상이고 놀이였다.

우리가 '놀이터'라 부르던 공터는 사실 낭떠러지 끝에 맞닿아 있었다. 발밑 3미터 아래로는 단단한 돌덩이들이 가득했고, 그 옆으로 차가운 개울물이 흘렀다.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돌배나무 한 그루가 살짝 기울어진 채 자라고 있었다. 동네 오빠들은 그 나무 가장 튼튼한 가지에 까맣고 두꺼운 고무끈을 매달았다. 화물차 짐칸에서나 보던 아주 질긴 탄력바였다. 고무끈 아래, 높이가 다른 세 개의 매듭을 묶었다. '타잔놀이'의 시작이었다.


타잔놀이. 방법은 단순했다. 끈을 두 손으로 높이 맞잡고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최대한 뒤로 물러난다. 팽팽해진 끈의 탄력을 이용해 낭떠러지를 향해 전력 질주하다가, 땅이 끝나는 지점에서 허공으로 몸을 날린다. 동시에 두 발을 매듭 위에 겹쳐 올리고 그네를 타듯 무릎을 굽혀 허공을 가른다. 낭떠러지 아래의 돌밭과 내가 서 있던 땅 사이, 허공을 오가는 그 아찔한 놀이에 푹 빠졌었다. 다친 아이도 없었고, 타잔놀이가 위험하다고 꾸짖는 어른도 없었다. 오히려 삼촌은 나무 위의 끈을 더 단단히 조여주곤 했다.


나는 떨어진 적이 있다. 타잔놀이 낭떠러지보다 더 높은 곳에서. 공터 옆, 도까촌으로 들어가는 좁은 다리 위였다. 울타리도 없이 벽돌 한 장 높이의 턱만 간신히 있던 그 낡은 다리 위를 우리는 서커스 단원처럼 걷곤 했다. 처음엔 서로 손을 잡아주었지만, 점차 익숙해진 우리는 혼자서도 제법 균형을 잘 잡았다. 사고가 난 날도 나는 그 좁은 턱 위를 걷고 있었다. 건너편에서 도까촌에 살던 개구쟁이 동생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두 손을 내밀고 나를 향해 달려왔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엄마의 품에 안겨 있었다. 나를 안고 다리를 건너던 엄마의 굳은 얼굴, 그리고 곁에서 00이가 밀었어요 외치던 내 친구의 목소리. 나는 상황을 파악하고서 쓸쓸하고 처연하게 물었다.

"엄마, 그럼 나 이제 죽는 거야?"

내 캐릭터 때문일까. 눈물을 참고 걷던 엄마가 피식 웃어버렸다. 죽긴 왜 죽어, 안 죽어 하면서. 보건소에 가보니 신기하게도 멍 한 군데 든 곳이 없었다. 위험한 돌밭을 피해 폭신한 흙과 풀 위로 떨어진 덕분이었다. 운이 참 좋았다고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아이가 정말 나를 밀었는지 확실치 않다. 달려오는 기세에 당황해 내가 발을 헛디뎠을 것 같다. 밀린 감각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친구들의 말을 듣고 그 애를 원망했지만, 지금의 나라면 그 아이를 위해 조금 더 논리적인 변호를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어려서 그다음 일까지 생각을 못 했을 거야, 놀라게 하려고만 했지, 나를 밀 생각은 없었을 거야. 놀라서 내가 먼저 휘청인 거 같아. 물론 그래도 그 아이는 많이 혼이 났을 테지만.


겨울이면 얇은 얼음을 깨서 뗏목처럼 타고 놀고, 겁도 없이 뱀을 잡으러 산을 헤매던 아이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기 짝이 없는 풍경들이다. 그 거친 시절 속에서도 큰 사고 없이 자라날 수 있었던 게 기적 같다.

다리에서 떨어지고 느꼈던 그 포근하고 느릿한 감각을 기억한다. 어쩌면 그때 낭떠러지 끝에서도 우리를 보호해 주던 보이지 않는 날개 같은 것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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