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잔뜩 내려앉았다.
마을 어딘가에서 산처럼 커다란 솥을 열고 찐빵을 꺼내는 것 같았다.
안개에 폭 파묻혀 걷는 등굣길이 좋았다.
두 걸음 앞을 모호하게 보려면 서둘러 나와야 했다.
해가 펼쳐지면 안개는 밀려나니까.
안갯속을 안개과 함께 걸었다.
희고 흐리게 넘실대는 안개는 물로 만든 아지랑이 가닥 같았다.
사방이 가려진 순간에만 안개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눈을 감으면 안개를 만질 수도 있었다.
두 팔을 벌리고 서 있으면 안개가 나를 스쳤다.
늦잠을 잔 친구가 안갯속에서 나를 부르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야, 갈림길! 소리치고서 그 애가 선명해지길 기다렸다.
누군가 안개 뭉치 사이로 또렸해질 때 그게 꼭 내 친구가 아닐 수 있다는 게 안개 낀 날의 묘미였다.
발소리를 듣는 편이 더 잘 보였다.
또 다리가 스치는 바지 소리, 걸음마다 흔들리는 가방과 가방 속 달그락 필통소리, 가방끈이 어깨에서 흘러내려 주기적으로 어깨를 들썩여 끈을 다시 제 위치로 바로 잡는 소리...
모호할 때 잘 보이는 건 그 모호함이었다.
흐릿할 때 잘 알아채는 방법은 선명한 세상에선 덜 중요했던 감각을 꺼내 기억 속에서 헤엄치게 두는 것이었다.
그 알쏭달쏭함이 마음을 끌었다.
안갯속에서 내 친구가 나왔다.
한껏 반가워 손을 맞잡고 빙빙 돌았다.
우리는 개굴! 하고 소리를 냈다.
곧 안개 속애서 개굴! 개굴! 대답이 들렸다.
살금살금, 안개에 몸을 숨겨 제일 가까운 개굴 소리로 다가갔다.
몸이 드러나지 않을 만큼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갔다.
그러다 단번에 튀어나와 놀라게 하는 게 안개 짙은 날의 또 다른 재미였다.
네 걸음 앞까지 따라잡고 이제 놀래주려 튀어나가려는 순간,
웍!!
우리 뒤에서 누군가 튀어나왔다.
놀라서 소리를 지르다 우리가 되려 당한 걸 알고 배를 잡고 웃었다.
안갯속 우리에게로 달려오는 발소리들, 웃음소리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개 낀 날의 감각으로 이미 다 알아채고서.
그래, 안 보여도 다 보이니까.
학교가 저기 앞에 있네.
안개는 성글어지다 노란 햇빛에 놀라 숨어들고.
헤어짐이 아쉬운 건 짧은 만남 때문일 거야.
두렵지 않은 건 선명한 햇빛이 기다렸기 때문일 거야.
그러니 이제는 노랗고 쨍한 이 시간을 즐거워해야지.
스름스름 함께 놀던 안개를 잔뜩 묻히고 온 우리는
안개의 친구나 안개의 집은 아닐까?
내 엉뚱한 이야기를 좋아하던 짝꿍이 이 기억 속 그 길에서 늘 나와 함께 걷는다.
안개와 나와 그 애, 꿈결 같고 소중한 가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