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우리 담임 별명이었다.
성이 허라서 허수아비, 지푸라기를 넉넉하게 넣은 퉁퉁한 허수아비.
하얀 머리가 별명과 잘 어울렸다.
허수아비는 잘 웃고 잘 화냈다.
기분이 좋을 땐 아이들을 업어주었다.
허수아비가 할아버지라서 나는 한 번도 업히지 않았지만,
창문에서 노란빛이 들어와 허수아비의 하얀 머리카락이 지푸라기처럼 노랗게 변한 순간,
허수아비 등 위에 있던 내 친구 K의 해사한 웃음이 여태 사진처럼 남아있다.
이 기억에서 그 웃음이 꼭 내 웃음 같다.
허수아비는 잘 웃고 잘 화냈다.
싸늘한 눈빛이 안경 너머로 불어올 때면 잘게 갈라진 목소리가 더 여러 겹으로 크르렁거렸지만,
그런 건 아홉 살의 나에게도 별일 아니었다.
좋은 날엔 깔깔 즐겁다가도 아닌 날엔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조심하는 거지.
참새 같은 우리, 저기 칠판 앞 창가에 허수아비를 조심해! 그 정도의 일이니까.
딱 한 번, 허수아비는 우리에게 지독한 장난을 쳤다.
쉬는 시간에 떠들었다는, 아무렇게나 만들어 붙일 수 있는 죄목으로 끔찍한 벌을 내렸다.
허수아비는 반 아이들을 나란히 자기 앞에 마주 보게 세워놓았다.
히쭉거리다 그 표정을 엄하게 지우고, 전달식 싸대기, 하고 말했다.
싸대기가 뭔지도 모르는 우리에게 허수아비는 직접 시범을 보였다.
왼쪽 제일 끝 아이에게 다가가서 차렷 자세를 시키고 아이의 뺨을 후려갈겼다.
아이는 휘청이다 넘어졌는데 허수아비의 불호령에 얼른 일어났다.
울어서도 안 됐다.
이제 왼쪽으로 네가 맞은 것처럼 똑같이 싸대기를 전달하면 된다고 했다.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울음을 꾹 참고 있던 1번 순서에게 허수아비가 말했다.
"빨리 안 때리면 또 맞아. 전달할 때까지 맞는 거야. 살살 때리면 또 맞아. 세게 때릴 때까지 맞는 거야."
난 그 아이가 걱정이 됐고, 그 아이가 때릴 다음번 아이가 걱정이 됐고,
그러다 나를 때릴 내 친구가 걱정이 됐고, 진짜 내 얼굴을 친구가 때리려나, 세게 때리려나, 얼마나 아프려나, 무서웠다.
그다음엔 내가 오른쪽 친구를 때려야 하는데? 어떻게 때릴 수 있나, 세게라니 얼마나, 어떻게 세게, 내가 친구를?
난처함과 두려움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맞았는지, 어떻게 때렸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이들이 줄줄이 휘청거렸으니 나 역시 그랬을 거다.
맞는 순간에도, 때리는 순간에도 눈을 꼭 감았을 거다.
허수아비는 화난 척 무서운 표정을 짓다가도 피식피식 웃었다.
2학년, 아홉 살.
그땐 우리가 얼마나 작고 어린지 몰랐다.
아홉 살끼리 있을 땐 그저 다 알맞게 큰 것 같았다.
수치심 같기도 하고 죄책감 같기도 하고 부끄러움 같기도 하고 화 같기도 한, 고개를 들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화끈거리는 뺨과 손바닥과 마음, 눈과 코와 입.
어떻게 친구와 눈을 마주쳐야 하나, 용서는 누구에게 받아야 하나.
아홉 살이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네모난 교실에서 어색하게 견디다 집으로 갔다.
아빠에게도 엄마에게도 삼촌에게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누구도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맞은 것도, 내가 때린 것도, 휘청거린 것도, 화끈거린 것도.
다음 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었다.
허수아비도 그랬다.
전달식 싸대기, 잊을 수도 없는 그 단어를, 모르는 척,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척.
그렇게 열 살이 되고 열한 살이 되고 열두 살이 되고…
학교에서 교사에게 폭력을 배운 80년대 어느 산골 학교의 풍경은 서서히 사라져 갔다.
그러다 내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아홉 살이 됐을 때 이 일이 떠올랐다.
뒤늦은 화가 밀려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허수아비는.
그 어른은, 고작 아홉 살 어린이들에게.
그때 내가 맞은 뺨과 내가 때린 뺨.
산산조각 난 영혼의 한 부분, 그걸 붙이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