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달걀

by 고야씨

노란 개나리가 탐스럽게 늘어진 담장, 눈을 떼지 못하고 느릿느릿 걸었다. 안 올 것 같은 봄이 매년 다시 시작되는 게 난 잘 믿기지가 않는데, 그런 만큼 봄 풍경이 묻어나는 것들에 쉽게 마음을 빼앗기곤 한다.


개나리는 꽃잎이 네 개라 덜 꽃 같고 귀엽네. 낙서할 때 그리는 꽃은 꽃잎이 다섯 장, 보통의 꽃 같고 예쁜 느낌이지. 만일 개나리와 진달래가 대화를 한다면 개나리는 덜 진지하고 더 엉뚱할 것 같아.


이런 생각을 하면서 길을 걷는데, 그 풍성하던 개나리꽃길이 갑자기 뚝 끊어졌다. 집 근처 교회에 다다른 것이다. 이 담장은 여름이 가까워야 싱그럽다. 아직 회색인 그 벽에 ‘고난주간‘이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그럼 곧 부활절도 오겠구나.


어린이였던 나는 광택이 도는 매끄러운 예배당 나무바닥에 친구들과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우리는 사인펜으로 친구, 동생들에게 나누어줄 부활절 달걀을 꾸몄다. 꽃, 십자가, 교회, 별, 하트, 구름 같은 걸 그렸다. 그러다 성가대 자리에 앉아 혼자 달걀을 꾸미던 고등학생 언니를 보았다. 그 언니는 단순한 기호를 조합해 신비한 패턴을 만들어 달걀을 장식품처럼 보이게 했다. 내가 내일 받은 달걀이 저 언니가 그린 거라면 얼나 좋을까! 아마 다른 애들도 나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다음 날, 나는 솜씨가 별로인 애가 꾸민 달걀을 받았다. 복잡한 그림이 아닌데도 무슨 모양인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달걀을 빙 돌려가며 이게 무슨 그림일까 생각하던 나는 곧 그 달걀이 좋아졌는데, 그림이 열두 가지 색으로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12색 사인펜의 모든 색을 다 담아서 그린 그 마음이 기뻤다. 껍질을 까니 달걀의 탱글한 흰자에도 희미하게 열두 색이 번져있었다. 먹으면 안 될 것 같아 고민하다 내 앞에 앉은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그 애는 고등학생 언니가 꾸민 작품 같은 달걀을 받았는데, 껍질 안 흰자가 파랗고 빨갛고 까맣게 물들어있었다. 거기에 비하면 내 건 맛있어 보였다. 내 옆자리에 앉은 눈치 빠른 s가 주머니에서 라면스프를 꺼냈다. 나와 그 애는 s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s는 먼저 우리 손바닥에 라면스프를 덜어주고 자기 손바닥에도 스프를 덜었다. 우리 셋은 사인펜이 번진 계란에 라면스프를 찍어서 입안에 넣었다. 친구와 라면스프와 함께라면 어떤 그림 달걀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우리는 따지자면 진달래 말고 개나리 같은 느낌인 거지.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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