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운 삶을 살고 싶다

행복을 찾고 싶다

by 햇살아래

“나 다운 삶을 살고 싶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품어봤을 꿈이다. 매일 아침 억지로 몸을 일으켜 출근하는 대신, 나만의 삶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정작 ‘나 다운 삶’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선뜻 답하기 어렵다. 그것은 마치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햇수로 16년 차 기계 설계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스무 살 무렵부터 엔지니어를 꿈꿨고, 그 꿈을 이뤘지만, 현실은 달랐다. 꿈과 현실의 괴리는 생각보다 컸고, 어느새 나는 직장인의 삶에 갇혀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엔지니어에게 야근은 숙명이라는 말이 있다. 마감 기한은 정해져 있고, 그 기한을 맞추기 위해 시간을 갈아 넣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설계가 어느 날 갑자기 뚝딱 나오는 일일까? 야근은 필연적이고, 때로는 밤을 새우기도 한다. 요즘도 밤 9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거의 없다. 하루에 고작 1~2시간의 여유를 가지며 “이게 맞는 삶일까?”라는 의문을 품곤 한다. 물론, 이 일을 놓지 못한 이유는 보람과 재미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은 회사의 노예가 된 듯한 기분이 들고, 이제는 진정으로 ‘나 다운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이 커진다.


‘저녁이 있는 삶’은 왜 어려운가

한때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말이 유행했고, 유명 정치인의 캐치프레이즈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을 둘러싸고 노동시간 연장이 논의되면서, ‘야근 없는 삶’은 더 멀어진 듯하다. 세계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야근은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 잡았다.


몇 년 전 폴란드 출장을 갔을 때다. 매일 저녁은 햄버거로 간신히 끼니를 때워야 했다. 대부분의 식당이 저녁 7시만 넘으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문을 연 곳은 패스트푸드점이 유일했고, 그마저 8시가 넘으면 문을 닫았다. 너무 늦게 퇴근 한 날은 문을 연 식당을 찾다가 간신히 늦게까지 문을 연 패스트푸드점을 발견했는데, 그날부터 매일 이곳을 찾았다. 늦은 시각까지 문을 여는 유일한 식당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이 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해서 어떻게 먹고살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유럽의 노동 문화는 우리와 근본적으로 달랐다. 심지어 폴란드는 주말 특근을 하면 평일 하루를 반드시 쉬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고 했다. 여가를 철저히 지키는 모습이 부러웠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는 비단 유럽뿐만이 아니었다. 중국이나 베트남에서도 늦은 시각까지 일하는 사람은 오직 한국인뿐이었다. 해외출장을 간다고 하면 부러워하는 이들이 많지만, 해외는 시간이 한정적이므로 그 기간 안에 모든 일을 끝마쳐야 하고 그럴수록 더 많은 시간을 일에 할애할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먹고사는 게 뭔가 싶었다. 일은 행복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지만, 내가 내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일을 위한 삶을 사는 게 아닌가 싶어 졌기 때문이다. 어느덧 주객이 전도되어 일이 목적이 돼 버린 건 아닐까.


꿈과 노동, 그리고 자본주의

우리나라에서는 야근을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이유로 자진해서 야근하는 경우도 많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오히려 생계를 어렵게 만든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야근을 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회라면,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정책의 문제 아닐까? 이런 현실 속에서 꿈은 사라지고 돈만 남는다.


역사 강사 최태성은 “명사적 꿈은 꿈이 아니다. 꿈은 동사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단순히 ‘어떤 직업’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그 직업을 통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직업적 목표를 이룬 이후, 오랫동안 새로운 꿈을 찾지 못했다.


일을 하는 이유는 자아실현과 생계를 위함이라지만, 꿈이 사라진 뒤론 전자가 희미해진 듯하다. 이전에는 돈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나도 이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돈은 필수라 믿는다. 나 또한 경제적 자유를 꿈꾸며 재테크와 자산 증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서른 이전까지 복권 한 장도 사지 않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돈이 있어야 ‘나 다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꿈이 사리진 대신 돈이 들어찼다.


노동에 대한 관점도 변했다. 과거에는 실력을 키우면 돈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한 회사에 오래 머물며 관리자가 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후회도 든다. 16년이 지나도 여전히 실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부담은 더 커지기만 했다.


행복을 미루지 않기 위해

그렇지만 가장 크게 변한 것이 있다면 바로 행복에 대한 관점이다. 돈을 모으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이는 당연하다. 돈은 모으지 않으면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미래의 나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네 삶의 최대 목표는 결국 '행복'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행복을 미래로 미룬다. 은퇴 후의 삶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번 지나간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은퇴 후에는 정말 해피라이프를 누릴 수 있을까? 또한,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죽음에는 위아래가 없다는 말처럼, 우리는 언제까지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행복을 뒤로 미루기만 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현재를 즐기지 못한 채 미래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그리하여 요즘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나 다운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필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비록 부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소박한 삶 속에서 나답게 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행복 아닐까.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작은 오두막에서 자연과 함께 살았듯, 부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한다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기다리지 않을까.


신현림 시인의 시 <나의 싸움>을 좋아한다.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 망가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한다.”


나는 소박한 삶을 꿈꾼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겠다는 뜻은 아니다. 시인의 시처럼 적당한 일과 사회적 활동은 필요하다. 다만,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꿈꾸고 계획하는 삶.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소박함 속에서 찾는 행복. 그것이야말로 ‘나 다운 삶’이 아닐까.


물론, 이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꿈꾸지만 섣불리 실행하지 못하는 일이다. 꿈은 달콤하지만 과정은 늘 어렵고 힘들다. 그래서 나 다운 삶도 환상 속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제는 부디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고 싶다.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데 나는 왜 삶을 즐기고 있지 못할까. 즐기며 살아가고 싶다. 그것이 나의 가장 커다란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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