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등을 바라보며

by 햇살아래

어린 시절 아버지는 무서운 존재였다. 한 번도 매를 들지 않으셨지만,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권위와 위엄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아버지가 무서운 존재였던 것은 아니다. 아주 어린 시절에는 희미하지만, 아버지와 즐겁게 놀았던 기억이 있다.


"이제부터 아빠라 부르지 말고, 아버지라고 불러야 해."


어느 날 어머니는 갑자기 아빠를 아버지라 부르고, 존댓말을 쓰라고 하셨다. 아무런 준비도 없었기에 어색함이 생겼고, 갑작스럽게 변한 관계는 거리감을 만들었다.


물론, 아버지는 그 시절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가부장적인 면이 강했다. 한번 화를 내시면 몹시 무서웠다. 아버지는 목소리도 컸고 낮고 강한 톤을 지니고 있었다.


아버지는 늘 바빴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농사까지 지으셨고, 교대근무였으므로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하거나 주무시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나날이 이어질수록 거리감은 더 깊어졌다. 동생과 신나게 놀다가도 아버지가 들어오시면 조용해졌고, 우리는 슬금슬금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아버지는 잔소리를 하지도, 매를 들지도 않으셨다. 그런데 왜 내게 아버지는 무서운 존재로 각인되었을까.


어느 날, 아버지는 잔뜩 술에 취해 들어오셨다. 그리곤 동생과 나를 부르더니 맥주 한잔을 하자고 하셨다.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말리려 했지만, 아버지는 완강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잔뜩 취한 채 한참을 말이 없으시더니 뜻밖의 말을 꺼냈다.


"미안하다. 이만큼 잘 자라줘서 고맙다."


아버지는 내 손을 붙잡곤 그 말을 반복했고, 자신은 우리보다 아는 게 없어서 하고 싶어도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그 순간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참으려 해도 참을 없는 감정이 복받쳐 왔다. 아버지는 무섭고 권위적이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다. 무표정한 모습 뒤에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었음을 그제야 이해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오랜 세월의 흐름을 뛰어넘을 순 없다. 아버지와의 대화는 여전히 짧고 서툴다. 아버지에게 전화하면 '잘있냐?', '밥은 먹었냐?'란 말이 전부고 곧장 어머니에게 전화를 넘기신다. 그래도 요즘은 집에 내려갈 일이 생길 때마다 아버지 곁에 있으려 애쓴다. 서로 간 대화는 없어도, 서로의 존재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거리감은 좁혀지니 말이다.


설 명절을 맞아 오래간만에 집에 내려갔다. 우리 집은 올해부터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했다. 덕분에 큰 집에 갈 일이 사라졌다. 그렇지만 집 가까운 곳에는 종중산이 있다. 제사는 지내지 않기로 했지만, 성묘는 하기로 했다. 그래서 아버지와 단둘이 산소엘 가게 되었다.


종중산에는 납골묘가 있고, 윗대부터 할머니까지 들어가 계신다. 아버지는 가까이 살기에 자주 산소를 돌보신다. 벌초도 혼자 도맡아 하시니 늘 죄송한 마음이 남는다. 그런데 납골묘에서 성묘를 마친 뒤 납골묘 주위를 돌아보다 아버지는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이 근처만 돌보면 된다. 벌초하기 불편할까 봐 꽃나무며 소나무도 심었다. 봄에는 예쁘게 진달래가 피고, 핑크뮬리도 심어서 가을에는 볼만할 거다. 허전해서 소나무도 심었다."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니 꽃나무며 소나무가 심있었다. 아버지는 정원을 가꾸는 취미가 있다. 하지만, 정원이라고 해서 틀이 짜여진 정원에 식물들을 반듯이 키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일단 심으시지만, 제멋대로 크도록 놓아둔다. 그래서 집 앞 화단은 마치 밀림 같다.


종중산 주위에 심어진 꽃나무며 소나무도 배열을 갖추진 않았지만, 아버지의 말을 듣고 몹시 서글퍼졌다. 아버지의 나이가 실감이 났기 때문이다. 어느덧 아버지는 70대 노인이 되어 있었다. 위엄 있던 목소리는 사라졌고 옅어졌다. 아버지가 언제 이렇게 늙었을까.


아버지의 말을 듣는 순간, 이제 그곳을 돌봐야 할 사람이 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신이 땅으로 돌아갔을 때 고생 할 자식들을 위해 일부러 꽃나무를 심은 모습을 바라보며 몹시 서글퍼졌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아버지가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자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 깨닫게 되었다.


어머니와는 정서적 유대가 깊지만, 아버지와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된 뒤로 아버지에게 애틋함이 생긴다. 고모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에서도 나는 계속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버지는 얼마나 외로울까 싶었다.


요즘은 집에 내려갈 때마다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려 애쓴다. 좋은 곳을 보여드리고 싶고, 좋은 추억을 쌓고 싶다. 그런데 아버지는 어머니와 둘이 갔다 오라고 할 때가 많다.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 아버지를 잡아끈다. 그러면 아버지도 못 이긴 척 따라나서신다. 아버지와 팔짱을 끼고 걷고 싶지만 아직은 쑥스러워하지 못했다.


연휴의 마지막 날, 나는 갑자기 아버지를 안아드리고 싶었다. 물론, 예전부터 생각했던 일이다. 아버지는 얼른 가라고 손짓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아버지를 안아드렸다.


"다녀오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전화했더니 이번에도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넘겼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차 안전한데 잘 대놓고 따시게 입고 다니라.'는 말이 들렸다. 아버지는 늘 이런 식이다. 마치 츤데레처럼 겉으로는 잘 표현하지 않으신다.


언젠가부터 아버지는 애틋한 존재가 되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이상하게 코 끝이 찡해진다. 아마도 이런 게 아버지를 이해했다는 것 아닐까 싶다. 이제야 조금,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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