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의 소설 『사랑의 생애』는 사랑을 매우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는 사랑을 일종의 열병에 비유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저절로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바이러스처럼 우리 안으로 침입해 우리를 숙주로 삼는다는 것이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사랑을 바이러스에 비유한 이 서술은 쉽게 공감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고, 사랑에 대해 생각할 때면 이 소설이 자주 떠올랐다. 사랑만큼 정의 내리기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감정도 드물다. 마음은 정의 내릴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그저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편의적 수단으로 '사랑'이란 단어가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사랑의 방식은 저마다 다르고, 받아들이는 방식도 천차만별이다.
최근,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만나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사랑에 대해 자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랑에는 책임이 따르고, 그것을 지킬 마음이 없다면 쉽게 내뱉어서는 안 된다고 느낀다. 그것은 내게 일종의 신조와도 같다. 하지만 그 사람과 함께할 미래를 꿈꾸며, 마침내 사랑이란 말을 꺼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금 『사랑의 생애』가 떠올랐다. 처음엔 낯설기만 했던 소설 속 비유가, 이번에는 묘하게 와닿았다. 사랑에 빠진 지금의 나는, 마치 그 열병의 숙주가 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마침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순간부터 사랑은 점점 깊어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만큼 즐거운 것이 없다. 내가 즐기던 여러 취미마저 시들해질 만큼 말이다. 좋아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사랑이 되고, 사랑이 깊어지면 그 사람이 내 삶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오는 게 아닐까.
그녀를 떠올리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자꾸만 얼굴이 떠오르고, 함께 보낸 시간들이 생각난다. 그저 얼른 보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바이러스가 몸속에 침입하면 전조 증상이 나타나고, 병은 점차 깊어지듯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그와 한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속에 영원히 머물고 싶다. 만일 사랑이 열병이라면, 사랑만큼 강렬하고 행복한 열병이 또 있을까. 병마는 이겨내야만 하지만, 사랑은 이겨낼 필요가 없다. 그저 기꺼이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물론, 영원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랑은 언제나 식기 마련이고, 바이러스도 결국은 또 다른 숙주를 찾아 떠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랑에는 시련이 따라오고, 위기가 찾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정말로 영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의 이 마음과 감정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면, 사랑의 숙주로 영원히 남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사랑하는 마음이 식어가는 과정이 늘 이해되지 않았다. 왜 좋아하는 마음에는 유효기간이 존재할 수밖에 없을까. 이렇게나 서로를 아끼고 바라는 애틋한 마음이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고, 익숙해지며 이내 식어갈까 하고 말이다. 가족 간의 사랑은 아무리 위기가 찾아와도 굳건하지만 왜 연인 간의 사랑은 그것과 다를 수밖에 없을까. 피로 이어진 인연이 아니어서일까? 나는 늘 그에 의문을 갖곤 했다.
우리는 애틋한 사랑을 키워가고 있지만, 언젠가 다가올 그날을 인지하고 있다. 언젠가는 지금의 이 커다란 마음이 식어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일 그때가 다가온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요즘은 더욱 사랑에 대해 자주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생각들을 글로 남기고 싶어졌다.
이 세상에 기록만큼 신비로운 것도 없다. 오래전 쓴 일기장을 펼치면, 나도 몰랐던 내가 새롭게 다가온다. 잊고 있던 감정이나 생각이 되살아난다. 이 흔적들을 남긴다면, 만일 사랑의 온도가 조금 낮아지더라도 다시금 감정을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의 생애』에서 이승우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한다고 말할 때 마침내 사랑이 침입해 그를 숙주로 삼는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사랑에게 나를 기꺼이 내어주고 싶다. 오늘도 말하고 싶다. 사랑한다고. 사랑의 숙주로 오래도록 머물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