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삶은 이어진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를 보며

by 햇살아래

누군가 내게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캐스트 어웨이>를 꼽을 것이다. 고전 영화지만, 네 번이나 이 영화를 볼 만큼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 영화를 볼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문장이 있다.


“그럼에도 삶은 이어진다.”


영화의 주인공 척 놀랜드는 시간 개념이 철저한 페덱스 직원이다. 늘 시간에 쫓기며,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산다. 일이 우선인 그는 연인과 크리스마스조차 온전히 함께하지 못한다. 그러던 중, 그가 탑승한 페덱스 전용기는 말레이시아로 향하던 중 폭풍우를 만나 추락한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그는 무인도로 떠밀려오게 되지만, 곧바로 무력감과 마주한다. 살아남은 건 자신 뿐이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갈증과 배고픔이 몰려왔지만, 코코넛 열매 하나 따먹는 일조차 버거웠다. 문명과 완전히 단절된 삶은 그야말로 악전고투였다.


놀랜드는 살아남기 위해 불을 지피려 애쓴다. 그러나 불을 피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문명의 도구라고는 아무것도 없었고, 원시적인 방법으로 불을 피우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열심히 불을 지피려 애쓰지만, 손에 큰 상처를 입게 되고 홧김에 옆에 있던 배구공을 던지게 된다. 배구공에는 그의 피 묻은 손자국이 선명히 남는다. 그는 이 배구공을 ‘윌슨’이라 이름 붙인다. 바로 그 유명한 윌슨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인간에게 외로움과 고독만큼 괴로운 일은 없을 것이다. 깊은 외로움 속에서는 혼잣말이 늘어나고, 감정의 기복이 거세진다. 나 역시 놀랜드 처럼은 아니지만, 객지생활 속에서 깊은 고독과 외로움을 느낀 적이 있었다. 혼자가 되는 일이 일상이 되면서 말수가 줄었고, 감정 표현도 점점 사라졌다. 어느 순간엔 살아야 할 이유마저 흔들렸다. 그 시간을 통해, 인간에게 외로움과 고독이 얼마나 깊은 절망을 불러오는지를 절감했다. 그래서 놀랜드의 상황과 감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외로움의 크기를 알기에, 그의 고통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 영화는 대개 무인도 탈출기로 기억되지만, 이 영화의 진짜 백미는 단순히 무인도에 있지 않다. 삶의 의지를 잃을 뻔했던 놀랜드는 결국 4년을 버텨낸다. 그리고 섬을 둘러싼 파도를 넘을 방법을 찾아낸다. 뗏목을 만들고 필사적인 탈출을 시도한 끝에 구조된다.

하지만 그에게 또 하나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실종된 지 4년, 그는 이미 세상에선 ‘죽은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사랑하던 여인 켈리는 다른 사람과 결혼해 버렸다. 그토록 갈망하고 그리워했던 사람은 이제 닿을 수 없는 이가 되어 있었다. 놀랜드가 무인도에서 버틸 수 있었던 유일한 힘이 켈리에 대한 그리움이었지만, 이제 그 희망마저 지워져 버리고 말았다. 자신을 붙들고 있던 희망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다. 그렇지만 그는 삶의 의지를 놓지 않는다.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요.
계속 숨을 쉬어야 해요.
왜냐하면 내일은 해가 뜰 테니까요.
파도가 무엇을 가져올지는 아무도 모르잖아요.


놀랜드가 섬을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날 파도에 떠밀려온 이동식 화장실 문짝 덕분이었다. 겉보기엔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던 그 플라스틱 조각이, 뗏목의 돛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그의 마음에 다시 희망을 불어넣었다. 그는 돛을 상상했고, 뗏목을 만들었고, 마침내 섬을 벗어났다.


그래서 “내일 파도가 무엇을 가져다줄지 모른다”는 말은 이 영화에서 아주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 돛이 없었다면, 탈출은 불가능했을 테니 말이다.


그 순간,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파도에 떠밀려온 문짝이 구원이 되어주었듯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피어난다. 삶이 지치고 힘들수록 사소한 일들이 크게 다가오고, 별것 아닌 일에도 쉽게 상처받고 쓰러지곤 한다. 남들이 보기엔 아무 일 아닌 것들이, 나 자신에겐 너무도 깊은 고통으로 다가온다. 때로는 울고, 고함을 지르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화를 억누르지 못하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그럼에도 살아있기에, 또 다른 가능성을 꿈꾸게 된다. 파도는 또 무엇을 실어다 줄지 알 수 없다. 어쩌면 그 무엇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구원이 될지도 모른다. 살아있다면, 희망은 언제든 다가올 수 있다.


놀랜드는 파도에 실려온 페덱스 물품들 중 단 하나의 택배 상자만은 끝내 열지 않는다. 그 상자는 섬에서 그가 버티는 힘이 되어주었다. 비록 켈리와의 아름다운 미래는 사라졌지만, 그는 마지막 택배를 전하며 인생의 갈림길에서 새로운 방향을 찾아 나선다.


비하인드 스토리지만, 그 상자 안에 뭐가 들었냐는 질문에 감독은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태양열로 충전되는 위성 전화기.”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지만, 삶이란 본디 그런 것이다.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주기도 하고,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것들이 구원이 되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살아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삶이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살아 있어야 희망을 만날 수 있다. 물론 그런 기억과 감정은 이내 잊히겠지만, 꺼내보면 힘이 되는 사진처럼, 마음속 어딘가에는 분명 남아 있다.


“나아가라. 앞으로.”


나아가야만 인생이 있고, 걸어야만 삶과 마주할 수 있다. 그렇다. 삶은 이어진다. 나아가지 않으면, 삶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다. 살아있다면 또 다른 파도를 만나게 될 것이고, 그 파도는 어쩌면 또 무엇인가를 실어다 줄지도 모른다. 그 부질없는 희망이, 결국은 살아가는 원동력이다.


이 영화와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 있다. 은희경의 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속, 진희의 마지막 독백이다.


“나는 취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끈다. 삶은 마치 농담 같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되고, 또 다른 길로 나를 이끌지도 모른다.


그래서, 삶은 또다시 이어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오늘, 자본과 노동을 생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