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잉넛의 <밤이 깊었네>를 들으며 든 생각
밤이 깊었네 방황하며 춤을 추는 불빛들 이 밤에 취해 흔들리고 있네요
크라잉넛의 대표 곡 중 하나인 <밤이 깊었네>의 가사다. 크라잉넛은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록밴드이고 이 곡은 너무 유명해서 TV나 라디오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노래다. 그렇지만 지금까지도 크라잉넛의 곡에는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이 곡을 다시 듣게 되었을 때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간 알지 못한 매력에 이끌린 것이다.
<밤이 깊었네>가 이전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 이유는 가사가 마치 ‘청춘이여 가지마오’라고 부르짖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청춘의 이미지가 그대로 담긴 곡이지만, 반대로 청춘이여 가지 말라는 절규로 들렸달까.
젊은 시절 패기 넘치던 록밴드 크라잉넛도 나이를 먹었고, 나도 나이를 먹었다. 크라잉넛의 청춘도, 나의 청춘도 이미 오래전에 지나버렸고 이제는 젊다고 할 수 없다. 사전적 의미의 청춘은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에 걸치는 젊은 시절을 뜻한다. ‘푸를청, 봄춘’ 인생에 있어 가장 푸르른 시기다. 그렇지만 청춘은 지나치게 짧고, 지나간 시간은 늘 그리움을 남긴다.
나이를 먹고 보면 참 우스운 말이지만, 갓 서른이 되는 이들에겐 서른이 가진 압박이 너무 커서 '서른 증후군'이란 말이 있다. 아직 서른이 될 준비조차 갖추지 않았는데 인생의 전성기가 끝나고 내리막을 향해 가는 느낌, 또는 더 이상 자신이 젊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면서 오는 불안과 공포를 의미한다. 모르긴 몰라도 사전적 의미의 청춘이 끝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끼기에 찾아오는 증후군은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청춘이 지났다고해서 진심으로 자신이 늙고 초라하다고 느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살아있는 한 인생의 전성기에 유효기간은 없을테니 말이다.
우리나라는 나이에 대한 집착이 강한 나라다. 한 살, 한 살의 의미를 지나치게 부여하다보니 나이에 따른 서열 관계도 명확하고 서른 증후군과 같이 ‘이제는 늙었어’ 라는 말을 달고 살며 스스로의 가능성을 차단해버리는 경우도 많다. 사회적 관습과 통념, 주변의 시선도 마찬가지다. ‘이제 너도 젊지 않아’라며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위축시키며 의지를 꺾어 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인생의 여정은 길다.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있다.
나이를 떠올리면 늘 대학 시절이 떠오른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한 우리에게 같은 학번을 지닌 이십대 중반의 형은 무척이나 큰 사람이었다. 고작 몇 살 되지도 않는 나이차가 그땐 왜 그리도 커 보였을까. 우스갯소리로 친구들은 그를 향해 ‘노친네’라 불렀고 그도 그 별명을 웃으며 받아주었다. 그리고 한 살, 한 살 먹어갈 때마다 나도 그가 먹었던 나이에 도달하고 있다. 그러다보면 누구나 늙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지나치게 늙었다며 한탄 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해서 사회적 통념과 관습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기엔 두렵고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며, 이제는 젊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하기에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도 당연해진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보단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게 되고 주변의 시선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
가끔은 가장 푸르른 청춘이 살아 숨쉬는 이십대로 돌아가고 싶다. 요즘 세상에 청춘을 청춘답게 즐겼다가는 큰일이 난다지만, 제대로 된 청춘을 맛보고 즐기고 싶어서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사회적 통념과 관습보단 나다운 것을 찾고, 나다운 것을 위해 자유롭게 살고 싶다. 물론, 지금도 마음만 먹는다면 가능할테지만, 이십대 그 푸르른 시기에만 가질 수 있는 패기가 지금의 내겐 없다. 그러나 안다. 지금의 이 시기조차 세월이 흐르고 나면 청춘의 느낌으로 남을 것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로 말이다.
늘 시간에 쫓겨살지만, 바쁨이 미덕이란 말에서 벗어나고 싶다. 시간에 쫓겨 살다보면 내가 없다. 바쁨이 미덕이 되고 그 흐름에만 몸을 맡겨 살아가게 되니 말이다. 늘 직장인의 삶으로 뭉뚱그려져서는 일 속에 종속되고 지나간 나날을 후회하곤 한다. 현대인은 시간에 쫓겨산다지만, 오히려 시간에 굴복 당해 휘둘리며 사는 것은 아닐까.
청춘은 낭만적이지만, 청춘이 처한 현실도 그리 녹록치 않다. 그러니 젊음이란 무기를 빼고 나면, 청춘 같은 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청춘이란 말은 따스하고 아름답다. 젊고 푸른 이미지가 절로 돋아난다.
다시 듣게 된 <밤이 깊었네>는 청춘이 진하게 묻어났다. 청춘은 한때지만, 청춘이 이십대에서 끝난다고 여기지 않는다. 인생의 유효기간은 여전히 남아있다. 방황하는 것이 청춘이라면, 고민과 방황도 당연하다. 무의미하게 늙고 싶지 않다.
나는 아직 청춘이다. 그러니 청춘이여 가지마오. 나의 시간이여 부디 오래도록 남아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