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이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장강명 <먼저 온 미래>를 읽으며 든 생각들

by 햇살아래

챗GPT를 자주 애용한다. 글을 쓴 뒤 퇴고할 때 가장 많이 쓴다. GPT에게 초고의 평가와 퇴고를 맡기면 문장을 제안하거나 보충할 부분을 알려주기도 한다. 또한 맞춤법 검사 시간을 비약적으로 줄일 수 있다. 글을 쓰다가 생각이 막힐 때, 녀석과 대화하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얼마 전 강원국 교수님의 강연에 간 적이 있다. 강연에서 교수님도 GPT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다. 최근 발간한 신간의 목차를 GPT에게 맡겼다고 한다. 그러면서 호기심에 GPT에게 자신의 신간 내용을 설명하고 글을 쓰게 했더니, 자신의 글과 매우 흡사하게 써서 놀랐다는 일화를 들려주셨다. GPT가 문체를 학습해 자신의 글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해졌다는 이야기였다.


이제 챗GPT와 같은 언어 모델은 우리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뉴스 요약, 날씨 정보, 맛집 검색, 심지어 코딩, 보고서, 논문 작성까지 GPT와 같은 인공지능 모델은 자연스럽게 우리 삶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다. 아직은 강인공지능(범용인공지능)이 등장하기 전이지만, GPT와 같은 언어 모델은 이미 그 역할을 상당 부분 수행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GPT는 거짓 정보를 사실처럼 말하기도 하기에 반드시 검토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인공지능이 우리 삶에 얼마나 깊숙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는가를 생각하면 놀라울 따름이다.


최근에는 유튜버 심통봇이 8월 31일 발표한 <고스타그램>이라는 노래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노래는 100% 인공지능이 작사·작곡한 곡으로, 보컬조차 인공지능이다. AI가 만든 노래임에도 멜로디가 2010년대 감성을 잘 살렸고, 가사도 재기 발랄하다. 세상을 뜨지 못하고 이승에 머무는 처녀귀신과, 그런 처녀귀신을 성불시키려는 저승사자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인을 위로하는 독특한 곡이다. 이처럼 센스 있는 가사와 멜로디 덕에 큰 화제를 모았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 이후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세상을 강타했고, 인공지능에 대한 우려 속에서 관련 서적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많은 책이 공통으로 강조한 것이 있다면 ‘인간다움’이었다. 기계는 질문하지 못하므로 창의성은 여전히 인간만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만의 영역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제는 이런 질문을 던질 만하다. 인공지능은 과연 창의적이지 않은가?


우리는 흔히 창의성을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일로 착각한다. 하지만 창의성은 기존 개념을 조합해 새로운 생각이나 개념을 발견하는 것에 가깝다.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반드시 지식의 토대가 필요하다. 그것 없이는 창의성도 없다. 인공지능은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는 없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심지어 예술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지식이 절대적인 전문 직업들이 가장 먼저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판사의 판결, 의사의 진단, 주가 예측 같은 영역이 그렇다.


장강명의 <먼저 온 미래>를 읽고 있다. 이 책은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 이후 급격히 변한 바둑계의 이야기를 다룬다.


바둑에는 ‘기보’라는 것이 있다. 컴퓨터 게임으로 치면 ‘리플레이’에 해당한다. 대국에서 두었던 바둑돌의 행마를 기록한 것이다. 프로기사들은 이 기보를 보며 바둑을 공부한다. 또, 바둑판에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은 초반에 종반전의 싸움이나 집 차지에 유리하도록 초반 돌을 배치하는 것을 ‘포석’이라 한다. 바둑은 역사가 긴 만큼 수많은 포석이 존재하고, ‘정석’으로 불리는 포석도 있다. 하지만 알파고 등장 이후 인간의 포석은 무의미해졌다. 대신 AI 포석이 새로운 정석이 되었다. 이제 프로기사들이 좋은 성적을 내려면 AI가 두는 수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이 필수가 되었다.


이세돌 9단은 “바둑은 단순한 승부가 아닌 예술”이라고 배웠다고 말했지만, 이제 바둑은 예술이라기보다 승부의 게임이 되었다. 더 무서운 점은 아직도 AI의 수를 인간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프로기사들은 그 수를 이해하려 애쓰지만, 완전히 해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제아무리 인공지능 시대가 되어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인공지능 관련 서적에서 늘 등장하는 말이지만, 이제는 이 말이 공허하게 들린다. 인간다운, 인간만의 바둑은 사라졌다. <먼저 온 미래>라는 책 제목이 이해가 간다. 바둑계는 인공지능 등장 이후 완전히 변했고, 생태계 자체가 재편되었다.


1.인공지능을 거부한다.

2.인공지능을 적극 활용한다.

3.인공지능을 활용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든다.


바둑계의 변화는 이 세 가지 선택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까마득히 높은 수준에 있기 때문에, 인간은 이유를 알지 못해도 인공지능의 수를 신뢰한다. 이 격차는 바둑계뿐 아니라 다른 산업으로도 빠르게 확산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지점은 ‘기술적 특이점’이다. 인공지능이 자신보다 더 뛰어난 인공지능을 만들고, 그 일을 반복한다면 인간은 더 이상 인공지능을 이해하거나 통제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그때가 되면 인공지능을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곧 도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바둑계는 이미 ‘특이점’을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AI가 두는 바둑은 이제껏 세상에 없던 바둑이다. 알파고는 인간의 기보를 학습했지만, 그 후속 모델 알파제로는 인간의 기보가 아닌 ‘자기 학습’으로 바둑을 익혔다. 그리고 알파고를 압도했다. 인간은 여전히 그 수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너무 압도적이기에 그것이 곧 법칙이 되었다. 인간만이 둘 수 있는 바둑, 인간만의 창의력은 무참히 깨져버린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의 오랜 지식과 창의력이 AI 앞에서 무력해지는 순간, 앞으로 모든 분야는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것을 ‘정석’으로 받아들이며 나아가게 되지 않을까? 앞으로 인간의 선택지도 바둑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1.인공지능을 거부한다 – 도태된다.

2.인공지능을 자신의 분야에 적극 활용하고 공존한다.

3.인공지능을 활용해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한다.


이 외에 다른 길은 없을지도 모른다. 인간에게는 창의성이 있고, 인공지능은 그것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방심하는 사이, 인공지능은 인간만의 영역을 무참히 허물 준비를 하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디스토피아일지 모른다. 인간이 내리는 모든 판단은 비효율적이고 잘못된 판단으로 여겨지고, 오직 AI의 판단만이 절대적 진리가 되는 시대. 소설 속에서나 등장할 것 같던 일이 현실에서 벌어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인공지능의 발전을 막을 수 없고, 그 흐름을 거역할 수도 없다면 이제는 정말로 인간다운 것이 무엇인지, 인간만의 영역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때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하나다.


인간다운 것은 무엇이며, 우리는 그것을 지켜낼 준비가 되어 있는가?

매거진의 이전글밤이 깊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