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문 - 비슈다 차크라
사춘기 즈음, 딸이 쓴 편지를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가슴에 품고 사는 아빠의 모습을 그린 소설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모습이 인상에 남아 나도 예쁜 편지지에 볼펜을 꾹꾹 눌러 정성스레 편지를 써서 아빠에게 건넸습니다.
편지를 받고 기뻐할 아빠의 모습을 상상하며 입꼬리가 계속 씰룩거렸습니다. 퇴근 한 아빠에게 편지를 건네자 아빠는 "작은딸, 고맙다." 하며 방으로 들고 들어갔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그 편지가 아빠품으로 들어가 하루를 보내겠지 기대하며, 안방문을 열어보니 편지는 화장대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오늘은 놓고 갔지만, 내일부터는 소중히 어딘가에 둘 거야.'
그렇게 마음을 다독였고 한참 뒤 안방을 빼꼼히 들여다보았지만, 편지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었습니다. 방치된 편지가 나를 향한 아빠의 마음인 것만 같아 아빠가 없을 때 편지를 다시 가지고 왔습니다.
애초에 편지를 준 적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죠.
'아빠가 내 편지를 찾았을까? 아마 없어진 줄도 모르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점점 가라앉았습니다. 그렇게 나는 아빠와 멀어지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아빠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는데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만 갔습니다.
어느덧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공개수업이 있던 날 아이는 통통 튀며 우리를 어린이집으로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집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자 뒷걸음치며 점점 뚱한 표정으로 변해갔습니다.
점점 움츠러 들더니 공개수업은 참여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1층으로 내려와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아이를 달랬습니다.
"왜 그래? 엄마아빠와 함께 와서 신났었잖아."
"집에 가고 싶어."
아이는 계속 집에 가고 싶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낯선 사람들이 몰려드는 그런 환경이 아이에게는 두려웠겠지요. 아이가 어리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과 다르게 아이의 나이가 한 살씩 더해가면서 뚱한 표정에 담긴 마음을 읽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아들은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이 더욱 알고 싶어 계속해서 아이를 다그쳤습니다.
"왜 그래?"
그렇게 물으면 아이는 대답했습니다.
"몰라."
어른들은 아이에게 종종 묻곤 했습니다.
"너는 왜 화가 나 있어? 왜 인사를 안 하니?"
아이는 화가 나있지 않았고, 수줍어서 인사를 안 했을 뿐이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알기 힘들어했고, 표현하기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사람들은 자꾸만 물었습니다.
"네 마음을 말해야 엄마가 알아."
결국 나도 타인처럼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아이가 커가면서 나는 아이의 모습에서 자꾸만 아빠가 보였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르고 외부에 뚱하게 반응하는 그 모습이, 자신의 중심에서 생각하는 그 마음이 내가 미워하는 아빠의 모습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마음을 끄집어내어 속 시원해지고 싶다는 마음에 사로잡혔는지 모릅니다.
"왜 또 뚱해졌어."
비난을 하면 아이는 더 움츠러드는데도 그렇게 아이를 몰고 갔습니다.
"말을 왜 그런 식으로 해?"
그저 쉬운 아이가 아니라며 자꾸만 아이 탓을 했습니다.
아이가 어느 날 엉엉 울면서 말했습니다.
"엄마는 나도 모르겠는데 왜 자꾸 말하라고 해?"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며칠 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요. 아이의 마음에 대해. 내 마음에 대해. 내 욕구에 대해서. 내가 원하는 반응을 아이에게 강요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받지 못한 아빠의 답장을 아이에게서 찾고 있었던 걸까요.
소통에 대해 환상을 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주었으니 받아야 한다고 믿었고, 마음은 꺼내어놓기만 하면 전해질 거라고 생각했죠.
누군가를 떠보듯 툭 건넨 편지. 툭 던진 질문들.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아빠를 탓하며 흐릿해진 렌즈를 끼고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진짜 마음을 알지 못했던 거예요.
"엄마!"
"응?"
"... 아니야."
고학년이 된 아이의 말줄임표가 늘어갈수록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왜 그래? 말 좀 해.'라는 말 대신 "왜 아닐까 너무 궁금하지만 이야기하고 싶을 때 해."라고 말해보기로 했습니다. 내 마음은 먼저 꺼내놓지만 아이의 대답은 기다려주기로 스스로에게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어느 날 부모님을 뵈러 고향에 내려갔습니다.
아빠는 새벽같이 나가 파크골프를 치고 오후 늦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생각해 보니 아빠는 그 에너지로 옛날 차가 없던 시절에도 텐트를 매고 아이 셋을 데리고 캠프를 다녔습니다. 그저 말없이 가족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바로 그의 언어였던 것 같습니다.
나는 아빠에게 원하는 바를 제대로 말한 적이 있었던가 돌이켜 생각해 보았습니다. 편지를 건네고 답장을 못 받은 날 나는 일방적으로 마음을 닫았습니다. 아빠에게 제대로 "답장을 왜 안 줘요" 하고 따져 물었거나, "가슴에 내 편지를 왜 안 품고 다니냐"며 아빠에게 섭섭했던 마음을 솔직하게 얘기했다면, 나는 좀 더 자유로웠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아빠의 행동 때문이 아니라 내가 내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계의 문이 닫혔던 게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렇게 말로 꺼내지 못한 마음이 늘 내 목 언저리에 머물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삼키지도, 내뱉지도 못한 채로.
아빠의 그림자를 지우고 아이를 마주했습니다.
"엄마는 사실 꺼내놓지 않으면 모르는 게 많아. 그래서 자꾸 너한테 왜냐고 묻고 말하라고 다그쳤나 봐. 미안해. 엄마가 많이 궁금해서 그랬어."
나의 고백에 아이의 목 언저리에 머물러 있던 감정이 끝내 터져 나와, 아이는 한참을 울었습니다.
"나는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 난 왜 그렇게 뚱해지는 걸까?"
눈물을 닦으며 아이가 말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는 마음, 그런 혼란스러움이 그렇게 드러나는 건 아닐까?"
아이가 끄덕였습니다.
"그런가 봐."
"엄마도 똑같아. 그런 불안한 마음이 너를 닥달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 우리 그렇게 마음이 불안해지면 서로 시간을 주자."
아이가 씩 미소 지었습니다.
아이와 제대로 된 소통에 마음이 포근해졌습니다.
'모르겠다고 하면 그냥 그렇다고 알 것. 그러고 나서 함께 이야기 나눠 볼 것.'
그렇게 노트에 적었습니다. 아이가 뚱해지면 한 걸음 물러났습니다.
"엄마, 내가 생각해 봤는데..."
그러면 아이도 한참 뒤에 생각을 정리하고 나와 이렇게 내게 마음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언제나 소통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내 마음과 다른 말이 툭 뱉어질 때, 차마 말하지 못하고 침묵할 때, 그 언어가 목구멍에 남아 꾹꾹 숨을 틀어막곤 했습니다.
서로 한걸음 물러나는 작은 여유로 서로의 공을 놓치지 않고 다시 건네는 일. 그것이 바로 소통이라는 것을 나는 아이를 통해 배웠습니다.
소통은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진실한 소통은 상대의 마음을 해치지 않으면서 내 이야기를 숨기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내 목에 필터를 하나 장착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불필요한 말은 걸러내고, 진짜 말은 막히지 않고 유유히 흐르도록 말입니다.
요가에서는 이런 에너지를 목 주변에 위치한 비슈다 차크라로 설명합니다.
이 차크라는 단순히 말을 잘하게 만드는 곳이 아니라, 내 말이 내 마음을 얼마나 진실하게 담고 있는지, 또한 상대가 내 앞에서 얼마나 안전하게 자신의 말을 꺼낼 수 있는지를 다루는 지점입니다.
우리는 종종 내 의도와 다르게 말이 전달되고, 상대의 말을 오해하며 상처를 쌓아갑니다.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될까요.
말을 건네기 전에 그 말이 어디까지 가 닿을 수 있을지 생각하기보다, 그 말이 내게 어떤 방식으로 돌아오기를 먼저 기대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말을 유창하게 하는 사람도 있고, 말을 꺼내는 일이 늘 어려운 사람도 있습니다.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고, 말을 무조건 아낀다고 해서 옳은 것도 아니겠지요.
그 말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말을 들을 수 있는 상태인지 그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슈다 차크라는 말이 머무르고 지나갈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 줍니다. 그 여백에는 내 진심과 상대의 진심이 물들어 서로를 공명할 거예요.
마시며 진심을 찾고, 잠시 멈추어 진심을 담은 뒤,
내시며 진심을 드러내고, 다시 멈추어 진심이 스며든 공간을 바라보게 하는 것, 그것이 비슈다 차크라의 에너지입니다.
내 말에 진심이 담겨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제대로 스며들기를.
그들의 진심이 담긴 말이 내게 스며들기를.
★ 비슈다 차크라(Vishuddha Chakra) 알아보기
비슈다(Vishuddha)는 ‘정화된’, ‘맑아진’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여기서의 정화란, 꾸며내거나 억누르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거칠게 쏟아내지도, 삼켜버리지도 않은 말.
마음과 말이 같은 방향을 바라볼 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진실한 표현의 울림을 상징합니다.
비슈다 차크라는 목과 쇄골 주변, 즉 소리가 지나가는 길목에 위치하며
‘소통’, ‘표현’, ‘경청’, 그리고 침묵까지 포함한 말의 균형을 관장합니다.
이곳은 생각과 감정이 말로 바뀌는 통로이자, 타인의 말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관문이기도 합니다.
>> 비슈다 차크라의 에너지가 조화로울 때,
우리는 말로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필요한 말은 담담하게 나오고, 모를 때는 모른다고 말할 수 있으며, 말하지 않는 선택 앞에서도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 비슈다 차크라의 에너지가 막히면,
하지 못한 말은 목에 걸린 채 남아 긴장과 답답함이 되고, 말은 했지만 마음과 어긋나 있을 때 후회와 오해가 반복됩니다. 그러나 이 통로가 맑아질수록 말은 설득이 아닌 전달이 되고, 소통은 요구가 아닌 교환이 됩니다.
비슈다 차크라는 공간(Ether)의 원소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공간은 보이지 않지만, 소리가 울릴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줍니다.
<요약>
- 공간(Ether)의 원소와 연결된 에너지
- 소통, 표현, 진실성, 경청, 침묵의 균형을 상징
- 하늘색 또는 푸른빛으로 표현
목 언저리에서 머뭇대던 내 진심이 나올 수 있도록 사자처럼 포효해 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갇혀있던 마음이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잠시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의미: Simha는 ‘사자’, Asana는 ‘자세’를 뜻해요.
사자가 포효하기 직전, 몸의 중심을 단단히 세우고 숨을 모으는 모습처럼, 이 자세는 삼켜왔던 말과 감정을 안전하게 밖으로 내보내는 연습입니다.
크게 말하기 위함이 아니라, 말이 막히는 지점을 있는 그대로 느끼기 위한 자세예요.
편안히 무릎을 꿇고 앉습니다.
(발목이나 무릎이 불편하다면 엉덩이 아래 방석이나 블록을 받쳐 앉아주세요)
엉덩이는 발꿈치 위 또는 발꿈치 사이에 내려놓고 척추는 자연스럽게 세웁니다.
손바닥은 무릎 위에 가볍게 올립니다.
눈을 감고 어깨, 턱, 목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지 잠시 살펴봅니다.
숨을 한 번 길게 내쉽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입을 크게 벌리고 혀를 최대한 길게 아래로 내밉니다.
이때 ‘아—’ 소리를 내도 되고 소리 없이 숨만 내보내도 괜찮습니다.
목을 통과하지 못하고 남아 있던 긴장이 숨과 함께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도록 둡니다.
눈은 위를 향하거나 편하다면 감아도 됩니다.
목이 느슨해질수록 말은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흘러갈 준비를 합니다.
호흡을 마친 뒤
입을 닫고 혀를 부드럽게 입안으로 되돌립니다.
턱과 목, 귀 뒤쪽의 감각을 잠시 느껴봅니다.
!! 주의))
3~5회 호흡과 함께 반복
소리가 부담스럽다면 소리 없이 진행
어지럼함이 느껴지면 즉시 중단
턱관절 통증이 심한 경우 혀를 짧게 내밀어 조절하세요
진실한 소통의 에너지 - 비슈다 차크라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봤습니다.
우리는 관계를 맺고 늘 소통하면서 살아갑니다.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기도 하죠.
말을 한다는 것은 제대로 소통하기 위해서입니다. 거짓과 비난, 핑계로 가득한 말들 사이에서 진실을 찾기가 상당히 힘이 듭니다. 그래서 요가는 언제나 나에게서 시작합니다. 나의 진심이 드러나 공명하길.
진심의 말들이 공간에서 만나 서로에게 물들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아름다워질 것 같습니다.
우리는 땅에서 태어나, 물처럼 흘러가고, 불처럼 살아 있습니다. 그러다 공기처럼 가벼워지고, 공간처럼 넓어져, 마침내 빛으로 돌아가게 될 겁니다.
삶의 여정의 지도를 펼치고 내가 갈 길의 경로를 알고 간다면 조금 덜 두렵겠지요. 차크라의 에너지가 당신의 '삶의 지도'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는 진실을 말하고 표현하는 여섯 번째 차크라 - 아즈나 차크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삶의 여정의 지도 - 차크라 7단계>
첫 번째는 물라다라 차크라(뿌리) - ‘나는 여기 존재한다’는 안정의 자리입니다.
두 번째는 스와디스타나 차크라(성골) - 감정과 창조의 흐름이 피어나는 곳입니다
세 번째는 마니푸라 차크라(태양신경총) - 나의 의지와 힘이 깨어나는 중심입니다.
네 번째는 아나하타 차크라(심장) - 사랑의 에너지입니다.
다섯 번째는 비슈다차크라(목) — 진실을 말하고 표현하는 통로입니다.
여섯 번째는 아즈나 차크라(제3의 눈) — 내면의 통찰과 지혜의 눈입니다.
일곱 번째는 사하스라라 차크라(정수리) — 모든 것을 하나로 연결하는 빛의 자리입니다.
다음 이야기 예고
여섯 번째 차크라 - 아즈나 차크라(제3의 눈) - 내면의 통찰과 지혜
*** 이미지 - chatgpt, Gemini 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