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문 - 아즈마 차크라(제3의 눈)
사람들이 줄을 지어 바다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물이 빠진 때 잘 왔다며 한 어르신이 손으로 작은 섬을 가리켰습니다. 그곳은 간월도의 작은 암자 간월암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발을 들인 그곳은 물이 차오르면 길이 사라져 깊은 바다에 고립되고, 물이 빠지면 다시 길이 드러나는 작은 사찰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절을 둘러본 뒤 작은 섬에 갇히지 않기 위해 물이 차오르기 전 하나둘씩 육지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때 도보여행 책에서 보았던 문장을 떠올렸습니다. 저자는 도보여행을 하며 절에서 자주 묵었다고 적어두었고, 나는 그 문장을 옮기듯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여기서 하룻밤 묵어도 되나요?"
"안 됩니다."
스님이 망설임 없이 답했습니다. 절에서는 방황하는 이들을 모두 품어주는 곳이라 생각했던지라 그 단호한 거절에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바다 위에 떠서 하룻밤 잠들고 싶다는 바람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용기라 믿고 건넨 말에 차갑게 돌아온 대답에 마음이 움츠러들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뒤를 쫓아 물길이 닫히기 전 서둘러 절을 빠져나왔습니다.
한국 땅의 가장 서쪽에서, 선을 그리듯 땅을 밟아 남쪽을 거쳐 동쪽으로 이어 제자리로 돌아오리라 결심하고,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섰습니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방향이 있는지 답을 찾고 싶어 걷고 또 걸었습니다.
해가 질 무렵 차 한 대가 계속 걷고 있는 나를 여러 번 목격하고는 클락션을 눌러 나를 불렀습니다.
"학생, 어디를 그렇게 가요?"
운전석에 앉은 아저씨가 운전석 창문을 내리고 물었습니다.
"도보여행 중이에요."
내 말에 조수석에 앉아있던 여인이 말을 이어받았습니다.
"해가 지고 있는데 이 근처에 숙박시설이 없어요. 잘 곳이 없으면 저랑 같이 가요."
'낯선 자들. 그들을 따라가도 될까?' 고민이 되었지만, 정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던 나는 부름에 응해 차에 올라탔습니다. 도착한 곳은 안면도 끝자락의 바닷가, 허름한 시골 다방이었습니다. 방 하나에 몇몇 이모들이 화투를 치고 있었고, 내가 닿은 이곳이 삶의 끝자락처럼 느껴졌습니다.
짐을 풀고 구석에 앉아있는데 누군가 들어와 큰소리를 냈습니다. 다방이모의 되받아치는 목소리가 들렸고 실랑이는 한참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두려움에 지갑과 핸드폰을 챙겨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습니다.
땅거미가 내려앉아 보이는 것은 달빛에 비친 방파재뿐이었습니다. 그곳에 서서 짙은 어둠만 남은 바다를 한참동안 바라보았습니다. 그곳에 어둠을 밝혀주는 빛은 다방밖에 없었고, 그렇게 나는 다방이모가 차려주는 밥을 먹으며 이틀을 묵었습니다. 나를 태워주었던 운전사 아저씨는 젊은 20대의 여성이 궁금한지 매일 다방을 찾아와 점심을 사주었습니다.
"안면도 바다에 기름이 가득해 고기를 잡을 수가 없어. 몇 개월째 수입을 못 내고 있다니까."
고기를 잡지 못하는 아저씨와 돈 때문에 멱살을 잡던 다방 이모를 보며, 내가 그동안 힘들다고 여겼던 일들이 정말 힘든 일들이 맞는지 돌아보았습니다. 이제는 다시 번호표가 있는 국도를 따라서 걸어야 할 때라는 생각에 다방이모에게 작별을 구했습니다.
이모가 떠나는 나를 보고 말했어요.
"남자는 어린애들부터 늙은이까지 다 조심해야 돼. 옆자리에 내가 있어서 아무 일 없었던 거지. 앞으로는 모르는 사람 차는 절대 타지 말어."
다방이모가 떠나는 내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거칠고 자글자글한 주름이 새겨진 그녀의 손을 맞잡고 그녀의 마음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안면도에서 벗어나 국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 밭을 일구는 농부들, 소박한 식당에서 먹은 된장찌개, 빨갛게 물들어가는 일몰을 눈에 담았습니다. 지도를 들고 걷는 그 길은 끊김 없이 이어졌고 고요하며 아름다웠습니다. 그저 다음 목적지만을 정해놓고 지도를 따라 걷는 것이 방향을 잃은 내게 위로가 되어주었습니다.
속리산 법주사를 가기 위해 산길을 힘겹게 올라오니 이미 늦은 오후였습니다.
정작 절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내려가야 했습니다. 꿈을 향해 달렸지만, 매번 뒤처지는 것만 같던 여행 전의 나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도보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주위사람들이 놀리며 말했습니다.
"기차도 있고 버스도 있는데 왜 걸어?"
그냥 걷고 싶어서라고 말했던 나의 대답을 떠올렸습니다. 나는 그냥 걷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결국 마지막 버스는 떠났고 지는 해를 두렵게 바라보며 올라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내려갔습니다. 무성하게 우거진 나무는 높은 장벽 같았고, 내려가는 길은 끝없는 삶의 내리막처럼 느껴졌습니다.
언제나 어둠에 잠식될까 두려워, 밝은 순간에도 하루를 끝내기 위해 애썼습니다.
숲에 갇혀버리는 걸까 두려워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날개를 장대하게 뻗은 독수리 한 마리가 머리 위를 날고 있었습니다. 독수리의 빛나는 눈은 나를 관통하는 것처럼 매서웠고, 주춤거리며 딴생각하지 말고 그냥 달리라고 내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온 힘을 다해 빠르게 달려 캄캄해지기 전 산을 내려왔습니다.
나는 늘 길 위에 있었지만, 독수리처럼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본 적은 없었습니다.
지도를 들고 있었지만 모든 방향을 알지 못했고, 갈 곳을 빨간펜으로 동그라미 쳐두고도 길을 잃곤 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필요했던 것은, 독수리의 눈처럼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었을까요.
하루 종일 걷고 나면 반드시 일몰이 찾아왔습니다. 지는 해가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장면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 참 행복했습니다. 길 위에서 마주한 모든 풍경과 만남, 예상치 못한 고비와 선택이 나를 조금씩 바꾸고 있었고 과거의 나를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이제 나는 내리막을 두려워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지는 해처럼 그것 또한 새로운 시작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단순히 길을 걸었을 뿐이지만,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익숙한 생각과 감정 속에 갇혀 있던 것에서 한 걸음 물러나자,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시선이 열렸습니다. 그 새로운 눈은 사소한 일에 버둥대던 나를 보여주었고, 동시에 작은 것에도 기쁨을 느끼는 나의 모습 또한 비추어 주었습니다.
독수리의 눈처럼 위에서 내려다보며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
길을 잃은 순간에도 지금 내가 서 있는 지점을 알아보고, 가야 할 방향을 다시 찾아내는 지혜.
이러한 지혜와 통찰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사고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스스로 방향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내면의 감각이었습니다.
요가에서는 이 감각을 이마 중앙에 위치한 제3의 눈을 통해 인식되는 에너지로 설명하며, 이를 아즈나 차크라(Ajna Chakra)라고 부릅니다. 아즈나 차크라는 외부의 기준과 혼란에 휘둘리지 않고, 내면의 중심에서 자신과 상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지혜의 자리입니다. 그것은 길을 잃지 않는 능력이 아니라, 길을 잃더라도 다시 자신의 방향을 알아볼 수 있게 하는 내면의 시선입니다.
★ 아즈나 차크라(Ajna Chakra) 알아보기
아즈나(Ajna)는 ‘명령하다’, ‘알아차리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여기서의 명령이란 누군가를 통제하는 지시가 아니라, 혼란 속에서도 스스로에게 분명하게 방향을 내리는 내적 인식을 말합니다. 생각이 많아 멈추는 상태가 아니라,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알아차림의 힘입니다.
아즈나 차크라는 이마 중앙, 두 눈 사이에 위치하며
‘통찰’, ‘직관’, ‘판단을 넘어선 인식’, 그리고 전체를 조망하는 시선을 관장합니다.
이곳은 감정과 사고, 경험과 기억이 한 지점으로 모여 지금의 상황을 한 장면으로 읽어내는 자리입니다.
아즈나 차크라의 에너지가 조화로울 때, 우리는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빠르게 알아차리고 자책보다 방향 전환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맞는지를 애써 증명하지 않아도 지금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한 감각이 또렷해집니다.
아즈나 차크라의 에너지가 흐려질 때 생각은 많아지지만 결정은 늦어지고 타인의 말과 외부의 기준에 쉽게 흔들리게 됩니다. 앞을 보고 있으면서도 전체를 보지 못해 같은 자리를 맴돌거나 이미 지난 길을 반복해서 걷게 됩니다. 그러나 이 시선이 맑아질수록 선택은 줄어들고, 방향은 분명해집니다.
아즈나 차크라는 빛(Light)의 원소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빛은 대상을 만들어내지 않지만,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드러나게 합니다.
보이지 않던 흐름, 겹쳐 있던 상황, 숨겨진 갈림길이 이 빛 아래에서 선명하게 본질을 드러냅니다.
<요약>
- 빛(Light)의 원소와 연결된 에너지
- 통찰, 직관, 방향 인식, 전체를 바라보는 시선을 상징
- 남색 또는 인디고 블루로 표현
독수리는 높이 날아오르기 전, 몸을 단단히 모아 균형을 잡습니다.
흩어진 에너지를 한 지점으로 모아 흔들림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감각을 깨우는 독수리 자세를 함께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정확히 느끼고 멀리 떨어져 나를 제대로 바라보게 하는 자세입니다.
의미: Garuda는 ‘독수리’, Asana는 ‘자세’를 뜻합니다. 즉 독수리 자세라고 부릅니다.
편안히 서서 두 발에 체중을 고르게 싣습니다.
시선은 정면, 또는 한 점을 부드럽게 바라봅니다.
오른발로 중심을 잡고 왼쪽 다리를 들어 올려 오른쪽 다리 위에 감싸듯 교차합니다.
가능하다면 발등을 종아리 뒤에 가볍게 걸어둡니다.
양팔을 앞으로 뻗은 뒤
오른팔 아래로 왼팔을 감아올려 팔꿈치를 교차합니다.
손목도 교차하여 손바닥을 마주합니다.
손바닥이 닿지 않는다면 손등을 마주 보게 하세요.
어깨는 힘을 빼고, 척추를 위로 길게 세웁니다.
눈을 감거나 시선을 고정한 채 흔들리는 지점을 바라봅니다.
흔들림을 멈추려 애쓰기보다 중심이 어디로 쏠리는지만 관찰합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척추를 위로 길게 세우고,
내쉴 때마다 팔과 다리가 몸의 중심으로 더 깊이 감기는 것을 느껴봅니다.
이 자세에서의 균형은 불필요한 긴장을 내려놓을 때 찾아옵니다.
호흡을 마친 뒤 천천히 팔다리를 풀고 반대쪽도 같은 방법으로 반복합니다.
두 발로 다시 서서 발바닥과 시선의 변화를 잠시 느껴봅니다.
!! 주의))
- 3~5회 호흡 유지
- 균형이 어려우면 발을 바닥에 가볍게 대고 진행
- 무릎 통증이 있다면 다리 교차를 느슨하게 조절
- 어지럼함이 느껴지면 즉시 풀고 휴식
우리는 길 위에 서 있으면서도 종종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 채 움직입니다. 본다는 것은 단순히 앞을 바라보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의 나를, 내가 서 있는 위치를, 그리고 이 선택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를 함께 보는 일입니다. 아즈나 차크라는 그 시선을 가능하게 합니다.
요가는 언제나 나 자신에게서 시작합니다. 답을 밖에서 찾기보다 한 걸음 물러나 나를 바라볼 수 있을 때, 길은 스스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자신을 만날 수 있다면 혼란은 방향으로 바뀌고, 방황은 더 이상 두려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깨어난 통찰이 여러분의 삶을 이끌어갈 거예요.
지혜와 통찰의 에너지 - 아즈나 차크라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봤습니다.
우리는 땅에서 태어나, 물처럼 흘러가고, 불처럼 살아 있습니다. 그러다 공기처럼 가벼워지고, 공간처럼 넓어져, 마침내 빛으로 돌아가게 될 겁니다.
삶의 여정의 지도를 펼치고 내가 갈 길을 알고 있다면, 그 길은 더 이상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차크라의 에너지가 당신의 '삶의 지도'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는 마지막 차크라인 일곱 번째 차크라 - 사하스라라 차크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삶의 여정의 지도 - 차크라 7단계>
첫 번째는 물라다라 차크라(뿌리) - ‘나는 여기 존재한다’는 안정의 자리입니다.
두 번째는 스와디스타나 차크라(성골) - 감정과 창조의 흐름이 피어나는 곳입니다
세 번째는 마니푸라 차크라(태양신경총) - 나의 의지와 힘이 깨어나는 중심입니다.
네 번째는 아나하타 차크라(심장) - 사랑의 에너지입니다.
다섯 번째는 비슈다 차크라(목) — 진실을 말하고 표현하는 통로입니다.
여섯 번째는 아즈나 차크라(제3의 눈) — 내면의 통찰과 지혜의 눈입니다.
일곱 번째는 사하스라라 차크라(정수리) — 모든 것을 하나로 연결하는 빛의 자리입니다.
다음 이야기 예고
일곱 번째 차크라 - 사하스라라 차크라(정수리) - 모든 것을 하나로 연결하는 빛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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