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 버스를 내려 회사로 걸어가는 길에 버스가 멈추며 푸~ 하고 내려앉듯 심장이 가라앉는다.
하~ 한숨을 내뱉고 매일 아침 들르는 커피숍으로 들어와 앉는다. 갈 곳 있으나 갈 곳 잃은 것 마냥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과 싸운다.
일상은 너무 반복적이라 일부러 멈춰 한숨 뱉고 다시 들이마시며 그 틈새를 벌려야 한다. 그리고 그 틈새 속에서 잊어버렸던 기억이나 놓쳤던 순간들을 찾아내 음미한다. 오늘은 카페라테 한 모금을 넘기며 어젯저녁 엄마와의 통화를 떠올린다.
"너희 언니는 집 근처로 이사 와서 신났다. 도시락도 싸 달라고 하고 자기들끼리 나가 밥 사 먹으면 될 것을 삼겹살 사 가지고 와서 같이 먹자며 집을 안 가고 꼭 우리 집으로 와서 먹고 쉬다 간다. 집에 가라 이제! 네가 가야 나도 쉬지 하면서 쫓아내야 간다."
무언가 그녀를 귀찮게 하는 존재가 있어 불만을 늘어놓는 목소리에서 그녀의 힘이 느껴진다. 어른들이 툴툴대는 것은 어찌 보면 다행이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을 미치게 할지도 모르니까.
무슨 일이든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살게 되는 것이다.
엄마라는 이름은 늘 짠하고 과거를 소환한다.
데레사 씨는 지금이야 소소한 불만을 나누고 딸로서 조언도 하고 한다지만 나 어릴 적 엄마는 커다란 존재였고 무엇이든 해결하는 해결사였다. 어릴 때부터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묻는다면 나는 단언컨대 데레사 씨라고 말하겠다. 그녀의 카리스마는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발성 좋은 목소리로 할 말은 다 하면서도 촌데레처럼 주변 사람을 살뜰히 챙기는 그 따뜻함이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빨간 대문의 낡은 주택에 살고 있던 데레사 씨는 아직도 빨간 대문의 낡은 주택에 살고 있는데, 대구로 시집와 처음으로 살게 된 집에 아직도 살고 있는 것이다.
넓게 포진되어 있던 포도밭이 사라지고 집 위에 고가도로가 생기고 건너편에 월드컵 경기장과 야구장이 들어섰다.
어느 날부터는 그린벨트가 풀리고 법원과 미술관과 법원까지 들어서더니 동네에 있던 집들이 한 집 두 집 철거가 되어 사라지고 넓은 도로가 생겼다. 넓은 도로의 사거리 모서리 한 귀퉁이의 애매하게 남은 땅덩어리에 녹이 슬어 올라가다 부서질 것 같은 옥상 계단이 있는 빨간 대문의 낡은 주택에서 데레사 씨는 자그마치 45년 세월을 살고 있다.
데레사 씨와 함께 살고 있는 한 남자, 데레사 씨의 남편이자 나의 아버지는 그 집에서 데레사 씨가 시집오기도 전부터 살았으니 빨간 대문 낡은 주택의 나이가 자그마치 60살은 된 것 같다.
아버지는 비 오는 날이 되면 주방 천장에서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져 바닥이 흥건해질까 봐 빈 김치통이나 세숫대야를 가져다 주방 곳곳에 놓아둔다.
얼마 전에는 70대 아버지가 비 오는 날, 비 새는 천장을 손보겠다고 지붕에 올라갔다 미끄러져 떨어졌다.
"이제 이사 좀 가세요. 이제는 좀 깨끗하고 편한 집에 엄마 좀 살게 해 줘요."
답답해 한 마디 던져본다.
"지금 집 내놓으면 헐값에 팔려 안 된다. 더 기다려야 된다."
늘 한결같은 대답을 내놓은 아버지다.
모든 집들이 사라지는 가운데 홀로 고가도로 아래 사거리 모서리 귀퉁이에 남아 쓰러져가는 빨간 대문의 낡은 주택은 언젠가는 팔려 철거가 되긴 할 것이다.
엄마 살아생전에 빨간 대문과 정말 이별하고 새집으로 들어가는 날이 와야 할 텐데, 기다리다 기다리다 한평생 빨간 대문 안에 갇혀버릴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