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발칸의 어딘가에서 펼쳐진 <운수 좋은 날>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에 초청받아 관람 후 작성한 영화 리뷰입니다.
Fat F***er in the Well
때는 1995년. 장소는 보스니아 내전이 종전으로 치닫고 있는 발칸의 어딘가. 전쟁이나 오염, 가뭄 등으로 급수가 어려운 세계 이곳 저곳으로 출동하는 국제 구호대 대장 맘브루는 어김없이 이곳에도 등장한다.
그리고 한창 구호 활동으로 바쁜 가운데, 한 마을의 유일한 식수원인 <우물>안에 누군가 고의로 시체를 빠뜨려 물을 오염시키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우물 안에서 시체를 꺼내려고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쉽지 않다. 야속하게도 시체를 들어올려야 할 밧줄은 끊어져 버리고 만다. 한 풀 꺾였어도 전쟁은 전쟁이다. 전쟁통에 튼튼한 밧줄을 가진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맘브루는 오래된 동료 B에게 무전을 쳐 밧줄을 구해오라고 하지만, 곳곳이 지뢰밭인 전쟁터에서 밧줄을 구하기란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일터. 게다가 모든 것을 FM으로 해결하려는 열혈 신참 소피와 함께라서 더욱 골치 아픈 B이다.
우여곡절 끝에 현장에 도착한 B와 소피.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시덥잖은 농담을 전달하느라 바쁜 통역사 다미르까지. 이제 맘브루는 개성 강한 세 명의 대원들을 이끌고 반드시 우물 안 시체를 처리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깨끗한 식수를 공급해야만 하는 막중한 임무를 떠 맡게 되었다.
맘브루의 머릿속엔 우물, 시체, 밧줄, 성공적.
일단 밧줄부터 구해야 하는 상황. 그러나 유엔 작전 본부에서는 우물 안 시체를 그대로 두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맘브루는 자칫하면 시체가 부패하여 온 마을에 전염병을 몰고 올 수도 있다는 우려와 함께, 유엔의 명령을 따르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다시 밧줄을 찾아 떠나는 모험이 시작되고, 대원들은 골몰하여 어디서 밧줄을 구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지만 해답은 여전히 오리무중. 여기에 현장분석가 카티야까지 동행하면서, 마치 사공 많은 배가 산으로 올라가듯이, 구불 구불한 산길을 해메며 한계를 맛본다.
유일하게 문을 연 가게에서는 이방인에게는 죽어도 밧줄을 못판다며 펄쩍 뛰고, 다급한 마음에 국기 게양대의 밧줄까지 욕심내 보지만 전쟁통에 국기를 내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이는 곧 목숨과도 직결되는 위험한 행위이다.
이 때, 우연히 길에서 만나 합류하게된 꼬마 니콜라는 자기의 집으로가면 밧줄이 있다며 대원들을 이끌고 가지만, 아이가 말한 밧줄은 바로 미친 개의 목에 묶여져 있다. 아이는 해맑게도 전에 이 개가 자신의 아버지를 물었고, 아버지 또한 복수랍시고 개를 물어뜯어 결국 둘다 병원에 갔다는 웃픈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이어진 어색한 적막감. 이들에게 밧줄이 간절하긴 하지만 밧줄을 구하고자 손을 잃을 수는 없는 법. 곧 대원들은 햄에 안정제를 발라 개에게 먹여보지만, 어찌된게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이 말똥 말똥해지는 미친 개.
그러나 해답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종교 전쟁으로까지 번졌던 보스니아 내전 때문에 무슬림이었던 니콜라의 부모들은 차고 뒷편에서 교수형을 당했던 것이다. 아직 니콜라는 이 사실을 모르고, 부모님이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 줄로만 알고 있다. 안타까운 사연이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해, 맘브루와 B는 니콜라의 부모의 목에 묶여 있었던 밧줄을 풀어 차 뒷편에 싣고, 다시 우물로 향한다.
이번엔 성공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포로를 붙잡아서 길 한가운데에서 진을 치고 있는 보스니아군 때문에, 우물이 있는 곳으로 직행하지 못하고 머나 먼 길을 돌아가야만 한다. 한시가 바쁜 상황에서 만난 예상 외의 복병이다. 일단 눈을 붙이고, 아침해가 떠오르기만을 기다리는 대원들.
아침을 알리는 소 울음 소리에 잠이 깬 그들은 그 무서운 지뢰밭을 잘도 피해 걸어가는 소 떼를 따라 천천히 운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대망의 우물 앞으로 1보 전진.
맘브루는 앞장서 우물 안으로 내려가 시체에 밧줄을 두르고, 그것을 차에 연결하여 끌어 올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유엔군의 등장으로 곧 저지 당하고 만다. 싹둑 잘려버린 밧줄. 시체는 다시 우물 속으로 빠지고, 대원들 또한 좌절하고 만다.
과연 시체는 우물 바깥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인가...
전쟁이 사람들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
흔히 전쟁을 특수 상황이라고 말한다. 전쟁은 국가대 국가로 행해지는 극대화된 폭력이므로, 전쟁이 오래갈수록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트라우마에 노출되게 된다. 또한 사람들에게 행해지는 억압과 통제는 사람들의 마음을 나약하게 만들고, 사이 좋았던 이웃들과의 관계도 불신과 오해로 얼룩지게 만든다. 결국 사람들의 마음속에 쌓인 미움과 증오는 더욱 약한 자들에게로 흐르고, 더이상은 지배받고 싶지 않기에 외부에서 온 이방인들을 침임자로 간주, 극도로 폐쇄적으로 굴도록 만들어 버린다.
<어 퍼펙트 데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마을의 사람들은 우물 안에서 시체가 발견됐다는 소식에도 놀라기는 커녕 오히려 시체를 대상으로 농을 치는 기괴한 유머로 점철되어 있다. 마치 우울증의 방어기제로 조증이 발생되는 것 처럼, 그들은 마을 전체를 뒤덮고 있는 전운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있는 힘껏 쥐어 짜낸 유우머로 하루 하루를 연명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강자가 약자를 지배한다는 무서운 힘의 논리를 깨우친 아이들은 어른들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기 시작한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약한 자에게서 갈취하고, 이를 저지하려는 자가 있으면 총구를 들이대는 전쟁의 법칙. 이들에게 가장 우선하는 가치는 단연 힘이다. 누구에게도 지배당하지 않도록 강한 힘.
그리고 하나 더. 이들은 이들 사회를 움직이는 것이 양심이나 정의가 아니라 돈이라고 굳게 믿는다. 전쟁 전에는 오락이나 유희밖에 몰랐던 아이들이, 그 아끼던 공을 단돈 10달러에 팔아버리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 것인지는 몰라도, 전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어른의 방식을 그대로 취하게 된다.
이 영화에는 외부인에 민감한 전쟁터의 사람들의 심리 역시 드러나 있다. 대원들은 마을에서 유일하게 운영되는 점포에서 밧줄을 발견하지만, 가게 주인은 외부인에게 절대 밧줄을 팔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밧줄은 무슬림들을 처벌하는 수단이다.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적을 처단하는 수단. 전쟁터가 아닌 곳에서는 단돈 몇 만원이면 평생 쓰고 남을 정도의 밧줄을 쉽게 구매할 수 있지만, 전쟁터에서는 밧줄이 곧 총이요, 칼이다. 그리고 그 총 칼은 니콜라의 부모에게로 향한다.
그러나 교수형에 사용됐든, 국기게양대에 사용됐든, 혹은 미친개를 묶었든 결국 밧줄은 밧줄일 뿐이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쥐어진 특권이 아니다. 밧줄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전지전능해 지는 것이 아니며, 밧줄은 누군가를 처단할 권리 따위로 갈음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다 영화의 말미에서 밧줄은 밧줄 본연의 의미를 되찾는다. 무언가를 묶어 끌어 올리는 것.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이의 소망을 실은 밧줄은 유엔군의 커터칼에 무참히 잘려나가고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채 수거되고 만다. 결국 우리는 밧줄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은 사람이며, 밧줄은 그 스스로 일탈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전쟁터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외부의 압력에 의해 수동적으로 본연의 의지를 잃어버리는 것 처럼 말이다.
발칸의 땅에도 비는 오는가
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결국 맘브루가 이끄는 구호 단체는 사람들에게 깨끗한 식수를 보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므로, 생명을 수호하려는 신성한 목표를 가진 것이다. 모든 우물이 오염된 발칸의 마을은 곧 그 생명이 끝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마을에 있는 세 곳의 우물 중 두 곳엔 지뢰가, 나머지 한 곳엔 시체가 들어 있다. 모두 오염되어 버린 마을의 생명수를 구하기 위한 맘브루의 노력은 이를 저지하려는 유엔과, 당국 군대, 그리고 폐쇄적인 마을 사람들로 인해 실패로 돌아간다.
마을의 우물이 모두 못쓰게 되었음에도, 누군가는 이득을 얻는다. 바로 물 한 동이에 6달러를 받고 파는 세력들. 혹시 이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검은 돈이라도 바친 것일까? 맘브루 일행들을 뺀 나머지는 믿을 수 없다. 영화를 따라가다보면 나 역시도 불신과 오해, 그리고 전쟁의 폐쇄성에 찌들어 버리고 만다.
결국은 전쟁이 모든 문제점을 야기한다. 전쟁은 스크린 너머의 관객들에게 까지도 그 세력을 뻗쳐 온다. 영화 속 대원들의 길을 막아선 포로들도, 길바닥 위에 죽은 소들도, 우물안 시체도, 오염된 물도. 전쟁 때문에 희생된 불쌍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영화의 끝, 그 마지막 5분. 마치 전쟁의 종식을 알리기라도 하는 듯, 세차게 내린 비는 상처입은 모두의 목마름을 해갈시켜 준다. 대원들의 얼굴에도, 전쟁에 시달리며 굳어진 사람들의 얼굴에도 드디어 미소가 번진다. 관객들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패악스러운 전쟁이라 할지라도 희망은 있다. 결국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 법이니까.
베네치오 델 토로는 그지꼴을 하고도 섹시하고, <쇼생크 탈출>의 팀 로빈스 역시 건재하다.
카티야(올가 쿠릴렌코)나 소피(멜라니 티에리) 등 여성 캐릭터들은 다소 실망스럽다. 껄끄러운 점은 일하는 현장에서도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지 못하고,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에서 벗어나는 사랑 투정으로 시간을 소비하거나, 전문가의 타이틀을 달고서도 시체를 보고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사랑에 미친 여자나 새내기의 성장 스토리는 전쟁터의 블랙 코미디와는 어울리지 않고 스크린을 겉돈다.
그러나 통역사 다미르 역할을 맡았던 배우 페자 스투칸은 쟁쟁한 주연들 사이에서도 빛을 발하며 톡톡히 매력을 발산한다. 영어를 쓰는 대원들과 마을 사람들의 소통을 돕는 약방의 감초같은 존재. 또한 당돌한 꼬마아이 니콜라 역의 엘다 로지도빅 역시 어른들에 묻히지 않고 씬 스틸러의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어 퍼펙트 데이>는 전쟁이 망쳐놓은 마을의 일상이, 전쟁이 끝남으로서 모두 제자리를 찾는다는 반전 메세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전쟁을 논하면서도 마냥 무겁지만은 않고, 시종일관 재치있는 유머로 유쾌한 웃음을 선사하는 블랙 코미디 물이다. 한 마디로 보고나면 뭔가 하나는 얻을 수 있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