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요 Jan 01. 2018

심리학으로 읽는 영화 이야기 #26 스쿨 오브 락

아이들만큼이나 순수한 열정, 듀이 핀의 락 스피릿


내 안에는 아직도 어린 아이가 산다

스쿨 오브 락, 유쾌한 배우 잭 블랙(듀이 핀 역)을 주연으로한 코메디물이다. 동시에 성장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다만 포스터에 잔뜩 등장하는 어린아이들의 성장극이 아니라, 가운데 우뚝 선 성인 남성의 성장을 다룬 다는 점에서 약 특이할 뿐.


주인공 듀이 핀은 세상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 낙오자다. 뚱뚱하고 못생긴데다 촌스럽고, 나이는 들어가는데 특정한 직업도 없이 "락앤롤"을 외치는 철없는 성인. 그러나 그는 락스타가 되고자 하는 순수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다.


별다른 일 없이 기타나 퉁기며 소리만 질러대는 듀이 핀. 그는 속해있던 밴드로부터 쫓겨나 여기저기를 전전하다가, 한 때는 같이 락스타의 꿈을 키워왔던 친구 네드의 집에 신세를 지게 된다. 네드는 누구보다 락스타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결국 보조교사로 직업을 바꾸고, 재미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의 옆을 지키는 한 사람. 바로 네드의 여자친구 페티다.

  

페티는 현실적인 여성으로 꿈과 열정만으로 살아가는 듀이의 삶을 한심하다고 생각하며 무시한다. 네드는 페티와 듀이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만 본다.



그러다가 결국엔 제대로 사고를 치고 마는 듀이 핀. 바로 보조교사 네드의 신분을 훔쳐 호레이스 그린 사립학교에 취업을 해 버린 것이다. 평생을 음악밖에 모르고 살아온 듀이가 학생들에게 역사와 영어, 수학, 과학 등을 가르칠 리는 만무할 터, 그는 수업시간에 분필 대신 기타를 집어 든다.


그런데 듀이가 맡은 학급엔 재주 많은 아이들이 가득하다. 초고음을 낼 수 있는 아이, 스스로 노래를 작곡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기타리스트, 앉은 자리에서 조명 프로그램을 뚝딱 만들어 내는 꼬마, 키보드 신동, 그리고 무대에서 빠질 수 없는 분장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메이크업 아티스트...


듀이는 이 아이들을 데리고 락 컴페티션에 나갈 계획을 세운 뒤 맹연습에 돌입한다. 그러나 이들의 순수한 열정을 가로막는 방해물들이 있었으니, 바로 무뚝뚝한 교장선생님과, 성적밖에 모르는 학부모들, 그리고 남자친구의 경력을 망치려든다며 듀이를 경찰에 신고해버린 페티까지. 과연 이들의 무대는 성공적으로 막을 올릴 수 있을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이른 오후, 점심 시간이 갓 지난 세시 경. 노란 봉고차가 한 무더기의 어린아이들을 한데 실어 어디론가 떠난다. 아이들은 익숙한 듯 캐리어를 한 손에 끌고 피아노 학원, 바둑 학원, 논술 학원, 수학 학원, 바둑 학원 등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확실히 내 시대의 초등학생들의 모습은 아니다. 한국 사교육붐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점점 더 심해지는 느낌이다. 누구를 위한 보습학원 일까. 아이들? 아니면 아이들의 성적? 그것도 아니라면 아이들의 성적으로 자존감을 채우는 부모들을 위한 것일까.


좋은 학벌과 우수한 성적, 다양한 재주와 다개국어에 능통하다는 점은 분명히 고소득 전문직을 위한 필요 조건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다.


바꿔말하면 우리 사회에 SKY 출신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은데도, 모두들 자신의 삶을 훌륭히 살아간다는 것이 그 예외의 증거다. 모두가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행복에 어떠한 전제 조건도 달아서는 안된다. 좋은 학벌과 좋은 가문, 특정 지역 출신이 모든 부와 행복을 독식하는 것에 찬성하는 엘리트 주의를 버리고, 누구나 행복할 수 있고 누구나가 다 가치있는 성숙한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 영화에서도 역시 학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좋은 성적을 받아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좋은 직업을 가져 좋은 가정을 이룰 것을 강요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성적 때문에, 명성 때문에, 돈 때문에 각기 타고난 재능을 포기해 버리고 원치 않게 책상머리에 앉아 시간만 축낸다.


이런 아이들 앞에 나타난 락 전도사 듀이의 등장은 가히 카타르시스라고 할 수 있겠다. 듀이는 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윽박지르지 않는 유일한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듀이 역시 아무런 편견없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아무런 조건 없이 음악을 즐기는 아이들과 만나면서 지금껏 자신을 억누르고 있었던 '낙오자'라는 타이틀을 떨쳐버릴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은 듀이없이는 자신의 재능을 찾아낼 수 없었을 것이며, 듀이도 아이들 없이는 무대에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스쿨 오브 락의 묘미는 바로 이것에 있다. 순수한 열정을 공통 분모로 둔 개개인들의 합이 그토록 아름다웠던 이유. 아무런 걱정 없이 그 순간을 즐길 수 있는 자들을 위한 무대. 일찍이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캡틴이 그토록 부르짖었던 카르페디엠을 유쾌한 방식으로 깨달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별 다섯개짜리 명작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도 마음 속에 어린 아이를 키우는 성인들에게

성인이 되었지만 딱히 특정한 직업없이 여기 저기를 전전하며 타인에게 의존하는 삶을 사는 듀이 핀. 그는 타인의 눈에 무책임하고 비현실적인 사람으로 비추어 진다. 특히 막연하게 락스타가 되겠다는 허황된 꿈을 품고 사는 몽상가적인 기질 때문에 더욱 이상스런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심리학적으로 이러한 증상을 나타내는 용어가 있다. 바로 피터팬 증후군이다.


피터팬 증후군은 성인이 되어서도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어른으로 인정하지 않은 채, 타인에게 의존하고 싶어하는 심리를 말한다. 이들은 현실을 부정(Denial)하고 스트레스를 이기기 위하여 어린 아이처럼 유치한 행동을 저지르는 유아기적 퇴행(Regression)을 주된 방어기제로 사용한다. 특히 취업이 어려워진 현대사회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심리적 양상으로, 어른으로서 져야할 책임과 의무로부터 도망하여 영원히 어린아이로 남고 싶어한다는 특징이 있다. 네버랜드에서 영원히 어린 아이로 살아가는 피터 팬의 이름을 붙였다.(네이버 발췌)


듀이 핀. 영화 속 캐릭터로 봤을 때는 상당히 엉뚱하고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으로 보여지지만, 만약 우리 주변에 실재하는 인물이라면 아마 주변인들의 속 깨나 썩였을 것이다. 특히나 친구 네드의 신분을 훔쳐 초등학교 교사로 분한 장면은 실질적으로 범죄로 분류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 듯, 동기가 중요하다. 듀이는 왜 사고뭉치가 됐을까?


바로 타고난 것을 억압하는 세상, 생산성이 없으면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 때문이다. 듀이는 음악만 있으면 행복하다. 돈이 없어도, 집이 없어도,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도 노래만 할 수 있으면 즐겁다. 그러나 자신의 타고난 재능과 기호를 따른 삶을 살았다는 이유로 듀이는 '낙오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피터팬과 후크선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

똑같이 락스타의 꿈을 꾸었던 친구 네드는, 마음속 깊은 곳에 그 열정을 숨기고 초등학교 보조교사라는 직업을 택했다. 하지만 전혀 즐겁지 않다. 오히려 하루하루 무기력하고 재미없는 삶을 살아간다. 그렇다면 안정적인 직업이 삶의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는 삶 역시 100% 행복한 삶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도전해봐야 하고 모험해봐야 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 아니면 도인 이 불편한 게임을 즐겨하지 않는다. 단지 성공할 확률이 높은 안정적인 게임만을 원할 뿐이다. 그래서인지 모험하고 도전한 자가 성공을 거두었을때의 보상은 어마어마하다. 기존의 마음고생을 한 번에 날릴 수 있을 정도의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고, 부와 명성이 함께 따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낙오자는 누구일까. 아마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포기한 채 세상이 재단한 기준에 맞추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닐까.


꿈과 낭만 속에 빠져 사는 영원한 어른아이 피터팬을 증오했던 후크선장, 그가 잃어버린 손목에 채워져 있었던 시계는 여전히 현실의 시간을 알려주고 있다. 후크 선장이 성인인데다 선장이라는 지위를 갖고 있으며, 현실적인 인물이라고 해서 행복한, 그리고 성공한 인생을 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과는 다르게 항상 꿈속에서 행복하게 사는 피터팬에게 질투와 증오를 느끼며, 하루 하루 화가난 채 살아가고 있었다.


오히려 그는 사회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강박적으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 어린아이일때 꿨던 소박하고도 아름다웠던 꿈을 스스로 포기해 버린 낙오자였다. 물론 피터팬의 삶을 살 것인지, 혹은 후크선장의 삶을 살 것인지는 개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러나 아무도 어떤 삶을 살 것을 강요받을 권리는 없다.


기성이 다져놓은 넓은 길은 편리하고 안정적이지만, 그 길을 벗어나 다른 길을 만들어나가는 신인류의 모험과 도전정신 또한 배척받지 않기를 바라며. 그리고 소수의 행복 보다는 다수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리뷰를 마친다.



이전 26화 심리학으로 읽는 영화 이야기 #25 사운드 오브 뮤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