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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Jun 25. 2017

심리학으로 읽는 영화 이야기 #25 사운드 오브 뮤직

국경을 넘어서 자유를 찾다, 진정한 해방의 의미


배경은 2차 대전 초기,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수도원.  자유분방하고 사랑과 흥이 넘치는 왈가닥 수녀 마리아는 착하고 밝지만 노래와 자연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매번 미사에도 늦고 기도 시간도 빼먹는 말썽꾸러기다. 원장 수녀는 얌전히 수도원에서 기도하고 때 맞춰 미사를 드리는 것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신의 뜻을 행할 수도 있다고 믿고, 마리아 수녀를 폰 트랩 대령의 집으로 보내 가정교사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마리아는 자신이 가정교사로서 잘 할 수 있을 지 두려워 하지만, 용기를 내어 수도원을 벗어나 세상 속으로 한 걸음 내딛는다. 사랑스러운 견습 수녀 마리아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즐겁고 신나서 두려움은 잊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한 껏 부풀어 있다.



드디어 폰 트랩가의 대 저택에 당도한 마리아. 그 고압적인 대문을 지나 폰 트랩 대령과 마주하고, 그의 일곱 자녀들과도 첫 대면식을 가진다. 뼛속까지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폰 트랩 대령은 아이들의 이름대신 호각으로 호명한다. 아이들도 호각 소리에 맞추어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는데 마리아의 눈에는 너무나도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아이들은 고유의 이름을 갖고 있는데 왜 군인들처럼 호각 신호에 맞추어 딱딱하게 대답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다.


그러나 폰 트랩 대령은 집안의 분위기에 따라달라고 강요하고 마리아 수녀에게도 호각을 하나 건넨다. 아내와 일찍 사별한 후 일곱 남매를 혼자서 키워야 했던 대령은 아이들을 끔찍히도 사랑하지만 그것을 표현할 방법을 몰라 딱딱하게만 군다. 아이들은 한 창 애교부리고 사랑받아야할 나이에 무서운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아버지의 관심을 끌기위해 일부러 말썽을 부리기도 한다.



마리아 수녀는 무언가 잘못되어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을 되찾아 주기로 결심한다. 아이들은 마리아에게 짓궂게 굴고 괴롭히지만, 마리아는 화내지 않고 다만 사랑으로 보듬어 준다. 천둥과 번개를 무서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고, 아이들에게 도레미송을 가르치며 산으로 들으로 나가 노래하고 춤추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점점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장난 꾸러기, 고집쟁이, 새침떼기, 사춘기 소녀, 아직은 엄마의 사랑이 필요한 막둥이까지, 온통 마음을 닫고 여지를 주지 않았던 아이들이 마리아를 좋아하고 존경하면서 잃어버렸던 어머니의 존재와 의미에 대해 조금씩 깨달음을 얻게 된다.


결국 아버지의 엄격함에 위축되고 소심해져 있었던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밝고 명랑한 '아이다운' 모습을 되찾게 된다. 



폰 트랩 대령도 아이들에게 어머니가 필요할 것 같다고 느껴 한 남작 부인을 만나, 폰 트랩가의 대저택으로 데리고 온다. 잠깐 집을 비운 사이 몰라보게 밝아진 아이들을 보면서 놀랍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다 낡아빠진 커텐 조각으로 만든 옷을 입고 원숭이처럼 가로수에 매달려 휘파람을 불고 웃고 떠드는 아이들의 모습은, 자신이 호각으로 신호를 보내면 정갈하게 옷을 입고 나와 호명에 따 각을 맞춰 대답하던 그 모습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감정은 신선한 낯설음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이 아버지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고 살갑게 대하는 모습에 노여움을 풀고 함께 노래를 하는 것으로 화답하는 아버지.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적 부드럽고 따듯한 아버지로 되돌아간 폰 트랩 대령은 마리아에게 고마움을 전달한다. 그리고 단순한 감사 뿐만 아니라 이성으로서 끌리는 마음때문에 당황해 한다.


마리아도 잠시 대령에게 끌리지만, 하느님의 자식으로서의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는다. 결국 마리아는 자신이 사심을 품었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수도원으로 돌아가 버린다.



뒤늦게 마리아가 떠났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리아 선생님을 찾으러 떠난 아이들. 그러나 수도원에까지 간 보람이 없이 선생님을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온다. 원장 수녀는 아이들도 이토록 마리아를 좋아하는데 되돌아온 이유가 무엇이냐며 물어보고, 신이 준비한 삶이 어떤 것인지 직접 당당히 맞서 쟁취하라고 다독여 준다. 결국 마리아는 폰 트랩가로 돌아가지만, 대령과 남작 부인의 약혼 소식을 듣고 낙담한다.


그러나 남작과 대령은 정치관과 조국애가 완전히 상반되어 서로 맞지 않다는 것을 알아 챈다. 그리고 곧 약혼을 파기한 대령은 마리아에게 자신의 옆에 있어달라고 부탁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대령과 마리아는 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린다



다시 완벽히 하나가 된 가족들. 엄마가 있어야 할 자리엔 엄마가, 아빠가 있어야 할 자리엔 아빠가, 그리고 아이들은 아이들의 자리에서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즐거운 나날들을 보낸다.


그러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점점 오스트리아에까지 손을 뻗치는 나치의 세력. 나치 독일에 합병될 자신의 조국을 생각하면, 대령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그리고 결국 나치를 피해 국경을 넘는 폰 트랩 대령의 가족들. 그들의 앞에는 새로운 시작만이 놓여 있다. 아버지는 맨 앞에서 막내딸을 등에 업고 가족을 이끌고, 어머니는 제일 뒤에서 아이들을 격려하며 진정한 가족이 되어 고지를 넘어간다.



강박증으로부터 벗어나기


한 치의 오차도 허용않는 엄격함. 자식들을 호루라기로 호명하고 군인 다루듯 하는 태도. 규칙, 규제, 정리, 정돈.


이러한 강박증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일종의 <의식>이다. 정신병이라기보다는 신경증이다. 흔히 말하는 노이로제, 그것이 바로 강박증이다. 폰 트랩 대령은 아내를 잃고 나서, 부드럽고 상냥하고 인자한 아버지에서 무섭고 엄격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로 변해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더는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서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우려고 노력하다보니 마음이랑은 다르게 아이들에게 엄격하게 굴게 되었다.


이렇게 불안을 촉발하는 어떤 사건이나 사고를 겪게 되면, 방어기제로 같은 생각이나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그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강박증의 종류는 여러가지다. 문을 제대로 잠갔는지, 가스불은 끄고 나왔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는 확인 강박, 오염이나 지저분한 것들을 참지 못하는 청결 강박, 무언가를 쌓아두고 버리지 못하는 저장 강박, 행동 및 생각 강박, 물건들을 각맞추고 색깔별로 완벽히 정리하려는 정렬 강박 등 이미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물론 이러한 강박 행동을 보인다고 해서 모두 강박증 환자라는 것은 아니다. 현실과 비현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자신이 강박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어렵지만 통제할 수 있는 경우 개선의 여지가 많다. 또한 행동치료를 통해 극복할 수 있는 일종의 징크스 수준일 경우가 많다.


스스로 강박적 행동이나 사고를 반복하고 있음을 인지하는 순간 상담을 받거나 통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 행동 교정, 심리 상담, 약물 치료 등으로 불편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강박증으로부터 벗어난다면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인들의 생활 또한 개선될 수 있다. 본인이 강박증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타인에게도 큰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국경을 넘어서 자유를 찾다, 진정한 해방의 의미


아내를 잃고 상실감에 빠져있었던 폰 트랩 대령. 토끼같은 일곱 아이들은 전적으로 그를 의지하고 있고, 고위직의 군인으로써 나라를 지켜야 할 무거운 의무를 지고 있었다. 그 또한 위로받아야 할 상황인데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한 채 너무나 많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마리아는 성모마리아처럼 그의 인생을 구원해 주었다. 딱딱하고 엄격한 규칙이나 규제만이 아이들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노래와 춤, 그리고 사랑으로 어여쁜 아이들을 더 어여쁘게 키울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한 남자로서 다시 사랑하고 또 다시 결혼을 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려도 아이들의 행복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그의 행복은 더욱 커진다는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가 국경을 넘어서 찾은 것은 비단 자유뿐만이 아니었다. 죽은 아내로부터의 해방, 비정상적인 국수주의로부터의 해방, 강박에 가깝게 완벽한 아버지가 되려고했던 비현실적인 이상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아내의 죽음으로 스스로 행복을 누릴 자유마저 억압하면서 마음속에 슬픔을 눌러담고 있었던 폰 트랩 대령은 우울한 마음으로부터 벗어나는 순간 진정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아이들과, 그리고 마리아와 함께 국경을 넘어 맛 본 진정한 의미의 자유 그리고 해방. 그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변화했기 때문에 쟁취한 행복이었다.


지금 불안과 강박으로 행복을 놓치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면, 자신의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어떠한 국경을 넘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라. 폰 트랩 대령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상심에 빠져 있다가 또 다른 사랑을 만나 치유했듯이 지금 본인을 괴롭히는 불안은 또 다른 행위로 인해 우연히 치유될 수 있는 것이다. 우연한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일생 일대의 기회가 당신을 찾아 올지, 또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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