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하나. 클림트가 그린 유디트 그림

알고 보면 전혀 로맨틱하지 않은 그림

by 고요
클림트의 유디트에 대하여


적막한 밤, 적군의 침소로 향하는 한 여인. 그리고 그 곁을 따라가시녀는 음식 자루를 손에 말아쥐고 있다.


이것은 역사다. 단순히 남녀간의 꽃놀음 따위가 아니라 조국을 침략한 적장을 무찌른 값진 투쟁인 것이다.


바로 조국인 베툴리아가 아시리아의 공격을 받아 멸망해가는 것을 막은 여인, 유디트의 이야기다.


지금까지 유디트는 아름다운 얼굴과 하얀 가슴, 몽롱한 눈빛으로 남성을 유혹하는, 흡사 아프로디테와 같이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소비되어 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유디트의 신비로운 눈빛과 아름다운 젖가슴에 현혹되어, 그녀의 손끝에 매달린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보지 못한다.


클림트는 표현했다. 화려한 배경 앞에서 화려한 악세사리를 목에 두르고, 과장되게 머리를 부풀린 한 여인의 모습을 말이다.


목숨을 걸고 적장의 목을 벤 유디트의 결기는 하단에 아주 조금 드러났을 뿐이다. 단지 클림트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유디트의 아름다움에만 매몰되어, 그림의 하단부에 홀로페르소스의 모가지가 그려져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로맨틱한 작품 한 점으로 감상하는데 그친다.



클림트가 그린 두 번째 유디트 그림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그녀의 유혹적인 눈빛마저 드러나지 않고, 노골적으로 신체부위를 노출한 채 마치 클러치처럼 홀로페르소스의 머리가 든 자루를 손에 그러쥔 유디트의 모습이 보인다.


자칫 성적으로만 소비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 마저 배제하지 않은 이 그림의 부제는 살로메이다. 둘다 남성의 목을 벤 여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혁혁한 공을 세우고도 이 여인들이 그저 섹슈얼리티 자체로써, 고작 한 점의 눈요기거리로 전락해 버린다면 이 얼마나 비통한 일이란 말인가.


작품 속에서 아무리 성녀와 창녀의 경계가 무너져 버린다하더라도 역사는 변하지 않는다. 유디트와 살로메의 역사는 아직까지도 세상에 남아서 변방의 누군가에게 거세공포증을 선사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명백한 증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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