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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Jun 15. 2018

심리학으로 읽는 영화 이야기 #13 디아더스

우리와 그들, 그리고 우리도 그들도 아닌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

아무도 찾지 않는 저택의
문을 두드리는 누군가.

전쟁 때문에 남편과 떨어져 아이들과 홀로 살아가야 하는 여자, 그레이스.


그런데 이 집에 세 명의 하인이 찾아온다. 그레이스는 이들을 받아들이며, 이 집에 머물기 위해서 지켜야 할 규칙에 대해 설명한다. 바로 이 집의 아이들은 햇빛알레르기가 있어서 항상 어둡고 두꺼운 커텐을 쳐놓아야 하는 것.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집은 커텐 덕분에 더욱더 음산한 기운을 뿜어낼 뿐이다. 그러나 하인들은 예전에도 이 저택에서 일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우연히 이 곳으로 돌아왔다고 말하며, 이 집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다른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그레이스를 안심시킨다.


제 3의 존재

어느 날 갑자기, 딸 앤은 누군가의 울음소리,  목소리, 그리고 빅터라는 한 아이의 유령과 무서운 할머니 귀신을 본다는 둥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다. 그레이스는 항상 딸을 나무랄 뿐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엄마의 귀에도 제 3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녀역시 아무도 없는 방에서 누군가의 걸음소리, 물건을 옮기거나 떨어뜨리는 소리, 그리고 피아노 소리를을 듣게 된 것이다.


그런가하면 집안의 물건들이 하나 둘 사라지기도 한다. 햇빛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들 때문에 필수품이 돼버린 커텐이 모조리 뜯겨져 나가는 충격적인 사건까지 일어나자, 그레이스는 분노한다.


그런 와중에 전쟁터로 나갔던 아버지의 귀환으로 잠시동안 저택에는 행복한 기운이 감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아버지는 어느날 새벽 소리 소문없이 사라져 버리고 만다.



점점 더 이상한 현상이 늘어나자 아이들은 방 구석으로 내몰려 두려움에 떤다. 게다가 모든 긴장과 불안, 스트레스를 하인들에게 푸는 엄마 그레이스까지 더해져, 이 집에서는 안정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온갖 히스테리로 넘쳐나는 집안의 분위기를 보며, 하인들은 결심했다는 듯 의미심장한 눈초리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마당 한 구석에 가려놓았던 묘비를 드러내 놓는데, 묘비에는 하인들 각각의 이름이 쓰여져 있다.


같은 시각, 이전에 이 집에 살았던 이미 고인이된 사람들의 모습을 찍어두었다는 앨범에서 하인 세 명의 사진을 확인한 엄마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총을 꺼내든다.


하인들과 어머니 사이에 총구만이 존재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딸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엄마는 아이를 위해 돌아선다. 그리고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방 문을 열어제낀 엄마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딸아이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제 3의 존재. 그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만 것이다.


The Others...

영화에서 말하는 TheOthers란 누구일까.


자신이 영혼이 되었다는 것을 알든 모르든 일단 살아있지 않은 존재들을 모두 '나머지'라는 카테고리로 묶은 것일까?


아니면 영혼의 집에 침범한 살아있는 자들을 지칭하는 것일까.


지금껏 Some이나 Others로만 대치되어온 산 자와 죽은 자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이 영화속에서 보여지는 그들의 경계는 차라리 모호함에 가깝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영화속에서는 그레이스나 그의 아이들이 살아있는 영매보다는 확실히 덜 무섭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면 의문이 들 정도다.


도대체 누가 귀신이야?

우리가 아닌 다른 존재들은 언제나 불안과 긴장, 두려움 등 기분나쁜 감정을 몰고 온다. 빅터네 식구들처럼, 그레이스네 역시 자신과는 다른 존재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


이것은 상대방이 사람이든 유령이든 상관없이 공통된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가 아닌 이방인들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품기 때문이다.


그레이스의 입장에서보면 자신이 살아가는 집을 침범해온 그들이 The Others가 된다.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인과도 같은 그들은 불쑥불쑥 나타나고, 소리를 내고, 집안의 물건들을 옮기고 밀어넘어뜨리며 그레이스와 아이들을 두렵게 만든다.


흡사 홀터가이스트 현상과도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그렇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The Others...


빅터네 식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눈에 비춰진 유령들은 너무도 무서워서 결국 이사를 갈 정도다.


서로 너무나 달라 병존할 수 없는 존재들.


가끔 생각해 본다. 우리가 유령이라고 지칭하고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존재들에게는 어쩌면 우리들 역시 무서운 존재가 아닐까 하는 것을.


또는 우리가 외계인이라고 부르는 존재들에게는 어쩌면 우리가 외계인일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생각을 말이다.


이처럼 영화<디아더스>는 우리와 그들을 바라보는 관점의 다양성을 선사한다. "도대체 누가 귀신이야?"라는 엉뚱한 질문은 덤이다.


죄책감이 불러온 기억상실, 해리성 장애

그레이스를 두고 아이들은 말한다. 엄만 미쳤다고. 엄마가 우리를 해쳤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레이스에게는 자신이 아이들을 극진히 보살폈던 기억밖에 남아있지 않다.


전쟁이 시작되고 남편은 군에 차출된 채, 독일군이 점령해버린 섬에서 아이들을 지키며 살아가는 한 여인의 이야기. 얼마나 힘들었을 지 상상하기 조차 어렵다.


어떠한 이유로든 그레이스는 아이들에게 위해를 가했다. 그러나 당시의 두려움과 불안, 그로인해 촉발된 히스테리와 아이들을 해쳤다는 죄책감은 죽어서까지 그레이스의 마음에 남게 되었다.


상황과 사건으로 얼룩진 트라우마는 그레이스에게 기억상실증을 야기했다. 실제로 심리학에서는 외부의 충격으로 인해 선택적, 부분적으로 기억을 상실한 사람들의 사례를 해리성 장애의 일부로 보고 있다.


해리성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위해서 '해리'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하는데, 자신의 인격을 분리시켜 그 충격을 서로 나누는 것이다. 이것은 부분적 기억상실로 그칠수도 있지만 심화되면 아예 다른 다수의 인격을 갖는 다중인격장애, 자신의 정체감을 완전히 상실하여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해리성 둔주 등의 정신질환을 앓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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