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와 주변인의 관계
맥스 퍼킨스, 토마스 울프를 천재로 만들다
스크리브너스 출판사 앞. 비오는 거리에서 초조하게 발을 움직이는 남자. 이 남자는 출판사와의 계약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는 작가다. 이미 뉴욕의 여러 출판사로부터 고사를 당하고 마지막 희망으로 스크리브너스사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사무실 안에서 두꺼운 원고를 꼼꼼히 살피는 남자. 그의 이름은 맥스 퍼킨스. 그는 잘나가는 편집자이며, 이미 헤밍웨이나 스콧 피츠제럴드 등 유명한 작가와 호흡을 맞춘 바 있는 배태랑이다.
그리고 약간 지리하지만 소용돌이와도 같이 독창적이고 열정이 가득한 토마스 울프의 원고를 읽고나서 또 한 명의 유명 작가를 배출해 내 보기로 결심한다.
거듭된 성공, 톰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출판사와 계약을 한 뒤, 원고를 다시 수정하는 작업에 착수한 토마스 울프. 피, 땀, 눈물으로 쓴 원고를 부분적으로 수정하고 삭제하는 일이란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통을 자아낸다. 그래도 소설이 성공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편집자를 믿고 의지하며 겨우겨우 작업을 완수한다. 마지막 관문은 소설의 제목을 선정하는 일이다.
기존의 가제는 그다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할 것이라고 본 맥스 퍼킨스는 토마스에게 주제를 관통하는 제목을 찾아 보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천사여 고향을 보라>라는 새로운 제목을 단 톰의 소설은 그야말로 날개돋친 듯 팔려 나간다. 1년 전만해도 모든 출판사로부터 버림받은 비운의 천재였던 토마스 울프는 이제 새로운 스타 작가로 한 층 업그레이드된 삶을 산다. 소설 덕분에 인기와 명예와 부를 얻게 된 토마스 울프.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곧바로 <때와 흐름에 대하여>라는 5,000페이지 분량의 새로운 원고를 쓰기 시작한다. 첫 번째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둔 후 토마스를 사랑하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그의 천재성이 1회성으로 끝나버리지는 않을까 의심하는 부류들도 생겨났다.
또 다시 천재성을 증명해야 하는 천재의 숙명대로 토마스는 자신의 작품에 빠져 우울하고 외로운 천재들의 삶을 견뎌낸다.
결국 두 번째 소설 역시 엄청난 극찬을 받으며, 토마스 울프는 다시 한 번 천재 작가로서의 자리를 공고히 다진다.
맥스는 그의 고독을 너무나 잘 안다. 일찍이 다른 천재들과도 교류를 지속해온 탓이다. 그를 자유롭게 풀어 줘야 할 때와 다시 고삐를 잡아 죄어야 할 때를 잘 알기에 뒤에서 든든하게 지원군의 역할을 다한다.
그러나 그의 성공에 불안함을 느끼는 앨린 번스타인. 그녀는 토마스 울프가 무명 작가였을때부터 거두어 먹이며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준 여자 친구다. 토마스를 위해 가정을 포기하고 그에게만 메달린 탓일까.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특히 맥스와 가까이 지내는 것에 대해 질투하고 시기한다.
Dear. Max,
첫 번째 소설에 이어 두 번째 소설까지 성공한 뒤 그야말로 부러울 것 없는 상태에 도달한 토마스 울프. 그러나 그의 내면은 복잡하기 그지없다. 여자친구 앨린은 그에게 너무 집착하고, 신실했던 편집자이자 친구인 맥스와도 자꾸만 갈등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어 모든 것으로부터 달아난 천재는 어느 해변가에 쓰러지고, 병원에 실려간다.
이미 뇌는 종양으로 수놓여 소생불가능한 상태.
모두가 슬퍼하는 가운데 잠깐 정신이 든 톰은 펜과 종이를 찾아 맥스에게 편지를 쓴다.
천재의 숙명과 그를 바라보는 주변인들
천재는 끊임없이 그 천재성을 증명해야 하므로 고독하고 우울하다.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나르시스트의 특성을 지녀서 이기도 하지만, 천재를 향한 시기 질투 때문이다.
주변인들도 마찬가지다. 자기만의 공간을 필요로 하는 천재들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다른 관계에 질투를 느끼고 그로 인한 상실감 때문에 상처받기도한다.
그러나 천재의 주변에는 그를 묵묵히 지원해주는 페이스메이커도 있다. 대부분 극과 극인 경우가 궁합이 잘 맞다.
너무 들떴을때 잡아주고, 우울해 할 때 띄워주며, 작품의 방향성을 객관적으로 그려주고, 덜어내고 덧붙일 것을 조언해 줄 수 있는.
천재는 그야말로 광기에 사로잡혀있는 사람으로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 비범한 사람을 봤을 때 천재 아니면 바보라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주변 상황이나 일상 생활에서 기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항상 자신의 분야에만 집중하는 천재의 특성 때문이다.
게다가 자존심이 세고 자기 중심적인 면이 있어서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경우도 많다. 이 영화에서도 토마스는 퍼킨슨의 부인이 희극을 쓰고 있다는 소리를 듣자 마자 작가로서의 경쟁심이 발동했는지, 희극은 결핍된 시라고 폄하하며 퍼킨슨 부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또한 스콧 피츠제럴드와 조우했을 때도 단편 소설은 장편 소설보다 쉽다는 식으로 말해 퍼킨슨으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기도 한다.
이처럼 천재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고립시키는 특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 사회적 기능이 떨어지며 인간 관계를 제대로 맺을 줄 모르고 안하무인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유약하고 예민한 천재들에게 주변인의 영향은 아주 크다고 할 수 있다. 고흐에게는 동생 테오도르가 있었고, 르누아르에게는 오르세가 있었듯이 천재를 감정적, 재정적, 정서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지원군들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들처럼 아주 희생정신이 크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닌 경우, 천재들의 주변인들은 상처를 입고 떠나버린다.
Amazing Grace, 천재가 영감을 얻는 방식
감정적이고 유연하면서도 섬세한 감성을 가진 토마스 울프와 어딘가 딱딱하고 고지식하며 융통성 없어 보이는 맥스 퍼킨스. 어쩌면 이 둘은 상극으로 보일 법도 하다. 그러나 맥스는 어디로 튀어나갈지 모르는 천재들의 개성을 감당하기 위한 그릇으로는 꼭 맞춘 듯 적당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스콧 피츠제럴드나 헤밍웨이와도 깊은 관계를 지속했을 수도 있다.
영화 <지니어스> 중반부에서는 이 둘의 차이점을 극명히 드러내 주는 장면이 하나 등장한다. 바로 토마스의 첫 번째 작품이 흥행한 뒤 5,000페이지 분량의 새로운 원고를 써서 내놓은 시기 쯤이다.
톰은 어느 날 불쑥 맥스를 재즈바로 데려간다. 그리고 자신의 영감의 원천은 재즈로부터 나온다고 말하며, 이어서 재즈는 예술가들의 틀없는 재창조 활동이라고 정의내린다. 자신이 글 쓰는 방식과 같다고 덧붙이며.
퍼킨스는 편집자로서 이렇게 자유분방한 작가의 개성과 창조력을 고치고 수정하면서 초안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바꿔버리는 것에 대하여 항상 걱정한다. 자신이 천재성을 재단하고 또 그것을 제한할까봐 그렇다.
그런 그에게 톰은 리듬과 음악에 귀기울이면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며, 딱딱한 편집자 맥스의 삶에 운율을 선사해 준다.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맥스 역시 처음으로 리듬을 타며 가공되기 전의 예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또한 톰은 맥스의 우려와는 달리 오히려 편집자로서의 퍼킨스의 역할을 존중해준다. 자신이 정리하지못한 과잉감정과 장황한 수식어들을 정곡을 찌르는 깔끔한 문장으로 바꾸어주는 그를 보며 존경심을 느끼기까지 하고, 나아가 세상이 그를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두 번째 작품을 그에게 헌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맥스 퍼킨스는 편집자는 익명으로 남아야 한다며, 절대 자신을 대중 앞에 내세우려 하지 않는다.
이 때 재즈바에서 흘러나온 흥겨운 음악은 어메이징 그레이스. 엄숙하고 숙연한 장소나 상황에서만 울려퍼졌던 미국인의 소울 음악이 흥겨운 스타일로 재편곡되어 만인의 어깨를 들썩거리게 만든다. 이처럼 딱딱한 음악일지라도 얼마든지 형식만 바꾸면 다른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다. 마치 예술가들의 창조력이 다양성을 갖는 것 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다시 한 번 등장하는 순간이 또 있는데, 바로 토마스 울프의 장례식에서다. 이 때는 본래의 음악적 성격 그대로 장엄한 분위기로 스크린을 뒤덮고, 영화의 여운을 훨씬 깊이있게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