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요 Mar 09. 2017

심리학으로 읽는 영화 이야기 #14 판타스틱 Mr.폭스

로알드 달과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자유


이 영화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멋진 여우씨가 주인공인 영화로, 로알드 달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평화로운 삶에 좀이 쑤셔 왕년 대도로 이름을 날렸을 적의 기술(?)을 바탕으로 인간의 것을 조금씩 탐해 온 여우씨. 그런 여우씨를 눈엣가시로 여긴 인간들의 공격으로 인해 굴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모든 동물들이 위험해 진다. 인간의 굴착기보다 한 발 앞서 빠르게 출구를 파내는 것 만이 살 길.

과연 지하 동물 친구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평온함을 견딜 수 없어서 일탈을 꿈꾸는 여우씨
그러나 평온의 선을 넘어버리면 절대 그 전의 평화를 되찾을 수 없다


본인에게는 무료한 삶의 활력소가 됐던 닭서리가 결국 가족의 안전까지 위협한다. 다른 가족들은 일탈의 달콤함을 맛보지도 못했는데 안락한 나무집 대신 하루 아침에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여우씨의 모습은 평범한 인간의 본능을 닮았다. 조직에 순종하면서도 가슴속엔 사직서를 품고 사는 직장인 A, 학교에서는 성적좋은 모범생이나 가끔 새벽에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피우는 고등학생 B, 아버지의 폭력에 장기간 노출되어 온 영혜가 채식주의자가 된 것이나, 어머니와 이모에 휘둘려 좋아하는 수영도 접고 법학도로 살아가며 살인을 저지르는 유진의 충동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은 불안을 기피한다. 그래서 안정을 추구하다가도 안정감이 주는 단조로움과 안락함에서 기인한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일탈을 꿈꾸며 살아간다. 실행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일 뿐 모두가 이러한 혼란을 겪으며 살고 있는 것이다.

딜레마에 처한 우리에게 운명은 두가지 선택지를 내어 보인다: 전쟁과 평화.


안정된 삶에서는 찾을 수 없는 스릴
vs 불안정한 삶에서는 찾을 수 없는 안락함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대결구도는 아래와 같이 나누어 볼 수 있다.

■ 인간
기득권과 통치세력으로 대표되는 집단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약한 세력을 모두 제거해버림으로써, 모든 생명의 공동 소유인 자연으로부터의 풍요를 독식하려고 한다.

여우씨의 도둑질이 결국 인간의 화를 초래했다는 의견도 있지만 자연은 만인의 것이므로 1차적 착취는 인간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다. 여우씨의 도둑질은 사실 훔친 것이라기보다는 되찾은 것에 가깝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기 시작하는 객체화 과정을 통해 대자연의 크기와 힘으로부터 무력감을 느끼고, 그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자연을 정복하려 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므로,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동물들은 공동체의 일원이 아닌 정복 대상의 범주로 인식된다.



■ 동물
자유를 되찾고자하는 소시민, 피지배 계층으로 대변된다. 이들 또한 객체화 과정에서 불안을 느끼기 때문에 어딘가에 소속되어 안정을 보장받고 싶어한다.

때문에 스스로 자유로부터 도피하여 기꺼이 통치와 지배를 받는다. 그러다 대우가 불만족스럽거나 안정된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게되면 자유를 찾아 떠난다. 본래부터 속박될 수 없는 자유에의 본능을 지니고 있으며 선택적으로 자유의 양을 조절해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야생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동물들, 그리고 자유로 회귀할 수 밖에 없는 피지배자들사이에는 상당한 공통점이 있다.

+ 사족이지만, 그 나라의 수준을 보려면 사회적 약자와 동물에 대한 대우가 어떤지 살펴보라는 말이 있다. 여성과 노인, 아이들과 동물들. 약자 모두의 권익을 위해 노력해야 국가의 수준도 올라가고 우리의 인권도 높아진다. 동물 괴롭히지 않기, 노약자 보호하기, 그리고 여성의 피해에 소리를 내어주기 등 사소한 것으로부터의 변화가 대한민국의 발전을 불러올 것이다.



인간은 불안에 노출되면 스스로 자유로부터 도피하여 권력에 붙어 억압을 자처하며 안정을 찾는다. 그러다 슬슬 자유에의 욕구가 피어오르면 불안과 책임을 감수하고서라도 탈출을 시도하는 것이다. 바로 여우씨처럼.

결국 힘의 논리에서 약자에 해당하는 부류라면 시도할 수 밖에 없는 탈출의 미학. 그러나 이 자연스러운 메커니즘을 깨뜨려 버린 것은 인간이다.

인간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면서도 어떠한 보상도 되돌려주지 않았다. 때문에 동물들이 스스로 자유로부터 도피하여 인간이 그어놓은 기준과 제약을 따르면서까지 안정을 찾을만한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자유를 찾으려는 세력의 승리다. 땅굴을 통해 닭과 사과즙을 몰래 꺼내 먹는지도 모르고 여우잡기에만 급급한 욕심많은 세 인간.

이제 동물들은 지하세계에서 새로운 자유를 즐기며 풍족한 먹거리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채식동물의 취향까지 저격하는 여우씨의 민주적 통치로 인해 동물들은 평화를 되찾았다.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는 개인의 자유 수호를 위한 투쟁과 기득권의 억압, 물질에 대한 욕심으로 타인의 자유까지 침해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을 담은 이야기다.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사회심리학, 자유로부터의 도피


거대한 자연, 명렬한 야생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해 줄 사회적 인프라가 전무했던 시절,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지켜내야만 했다. 척박한 땅을 일구어 곡식을 심고, 날카로운 무기를 만들어 들짐승을 사냥했으며, 불을 피워 더욱 진보한 삶을 살아왔다. 그때는 철저히 능력제였다. 짐승을 잡으면 배불리 먹고, 그렇지 않으면 굶는.


그래도 어떻게든 먹을 것을 구해 먹으며 배를 채우게 되자, 좋은 집, 아름다운 배우자, 육체 노동을 떠 넘길 노예 등등이 필요해 졌다. 자신의 자유를 위해 남의 자유를 빼앗는, 비교적 모던한 삶의 방식을 배우게 된 것이다. 마을에서 부자가 된 사람이 더 큰 부를 축적하여 시에서 알아주는 부자가 되고, 또 전국에서 손 꼽히는 부자가 되면서 자연히 권력도 따라오게 되었다.


한 개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부하들이 생겨났고, 권력자는 그들을 책임져야할 의무를 떠맡게 되었다. 그리하야 권력자의 영토를 둘러 높다란 성벽이 세워지게 된 것이다. 일단 성벽 안으로 들어오면, 연약한 개인으로써 감당해야하는 위험과 책임은 모두 권력자에게 위임되며, 조금은 게을러 져도 될 특권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무위도식의 삶은 단연 공짜가 아니었다. 안전을 보장받는 댓가로 한 가지 단서가 붙었다. 자유로부터 도피할 것!


성벽 안으로 들어오면 자기 생각과 의지없이 권력자의 수족이 되어야만 했다. 시키는 대로 충성할 조건으로 적당한 노동만 하면 돈도 벌고, 권력의 보호막 아래에서 악천후와 들짐승에 대한 걱정 없이 살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언제, 도대체 왜 이렇게나 나약한 인간이 자유를 되찾으려 투쟁하게 되는 것일까?


바로 억압당할 때다. 안전과 보호를 보장받는 댓가로 자유를 지불한 인간과, 보이지 않는 충성의 서약을 담보삼아 보호자로서의 임무를 이행하는 권력자 사이에는 도덕과 윤리가 있어야 한다. 권력자를 위해 노동을 한 인간에게는 제대로 된 임금이 분배되어야 하고,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져버리고 권력자를 따르는 인간에게는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인간이 원하는 것은 최소한의 윤리와 최소한의 인권이다. 그러나 권력자가 탐욕에 찌들고 부패하게 되면 인권을 유린하고 사회 질서를 파괴한다. 최소한의 권리만이라도 보장해달라는 작은 목소리를 묵살해 버리고 억압과 통치로 맞선다.


이때 자유로부터 도피해 성벽 안으로 들어온 인간들은 다시 한 번 도피를 결심하게 된다. 이번에는 억압으로부터의 도피다.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이자, 목숨을 건 도전이다. 나약한 인간들이 없으면 권력자는 다리가 부러진 새나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축적한 부로 날갯짓이야 할 수는 있겠지만 착지를 하기 위해선 고통을 감내해야 하고, 맨 땅에 긁히고 찢긴 상처는 곪아서 결국은 목숨을 위협할 것이다.


*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 그래서 상생하기 위해 제약과 규칙, 질서등을 정립하여 윤리적으로 약속을 하며 살아간다. 이처럼 인간은 직간접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살아가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행동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사회 심리학이다.


멋진 여우씨와 그의 이웃들 사이에서도 사회 심리학을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의 농장에서 닭을 훔쳐먹으며 무위도식하던 동물들은 인간의 보복이 시작되자 자유를 찾기위해 땅굴을 파 도망친다. 애초에 동물들이 살던 땅에 경작을 하고 울타리를 쳐 동물들의 생존권을 위협한 것은 인간이다. 그러나 닭 한 두마리 없어지는 꼴을 못봐서 동물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바람에 소모적인 싸움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인간의 억압을 피하고자 서로 뭉쳐 땅굴을 파는 동물들, 이들의 집단 행동에 왜? 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회 심리학. 웨스 앤더슨의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와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수호 의지를 각각 다른 시선에서 조명하고 있다.


우리 역시 무엇을 위해 자유로부터 도피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유를 위해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절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인생에서 꼭 필요한 과정임에는 틀림없다.



이전 14화 심리학으로 읽는 영화 이야기 #13 디아더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