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죄 없는 자만이 그녀들에게 돌을 던지라
그녀들의 이야기,
지켜주지 못한 꽃들을
더럽다고 하지 마라
부산에서 잘나가는 국제여행사 여사장 문정숙. 그녀는 여성경제인연합회에 들어 꾸준히 기부를 하고, 여성의 권익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여장부다.
남편과 이혼한 후, 16년 동안 집안 살림을 도맡아 준 가사도우미 배정길 덕분에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해 왔고, 사업을 탄탄히 키워올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정숙의 딸은 일하는 어머니의 사랑이 고파 자꾸 삐뚤어져만 간다.
당시 김학순 할머님의 위안부로서의 삶에 대한 최초의 고백이 있어, 온 사회의 이목이 위안부라은 이슈에 집중돼 있던 터라, 문정숙은 그를 빗대어 "잘못된 선택을 해서, 잘못된 인생을 사는 저런 사람들"처럼 되려고 하냐며 딸을 질책한다. 그리고 배정길은 그날부로 갑자기 일을 그만 둔다.
문정숙은 힘들게 배정길을 찾아가보지만, 배정길은 그의 아들에게 얻어맞아 산송장같은 몰골을 하고 있다. 문정숙은 병원엘 가자며 배정길을 잡아 끄는데, 그새 아들은 또 한 번 난동을 부리고, 배정길은 문정숙에게 빨리 도망치라며 떠민다.
불행은 겹쳐 온다고 했던가. 배정길이 일을 그만두고 나서, 새로운 도우미들을 고용해 보았지만, 문정숙의 딸은 더욱 짜증만 늘어갈 뿐이다. 게다가 문정숙 몰래 기생관광을 코스로 유치해 왔던 직원 때문에 국제여행사는 영업정지 처분을 받고 만다. 안팎으로 시끄러운 나날들을 보내는 문정숙.
그렇다고 여성경제인연합에서 사회적으로 어려운 여성들을 돕는 활동까지 게을리 할 수는 없다. 하루는 위안부, 정신대 할머니들을 위해 힘쓰고 있는 단체에 기금을 전달하러 갔다가, 열악한 환경에 기함한다. 그리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영업정지 기간동안, 부산 지역의 위안부할머니들을 지원하기 위해 사무실 한 구석을 빌려주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드문 드문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한다. 그동안 감추고 숨기기에만 급급했던 위안부 시절의 한을 처음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말 할 용기가 생긴 할머니들이 속속들이 전화를 걸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6학년 때 정신대로 끌려간 서귀순 할머니, 아들은 대를 이어야 한다며 꽃신 하나 덜렁 사들려 위안부로 떠밀려 보내진 이옥주 할머니, 어린 나이에 영문도 모르고 끌려가 모진 수모를 겪어 더이상 아이를 갖지 못하게 된 박순녀 할머니까지...
그간 음지에만 머물러 있었던 피해자들이 하나 둘 용기를 갖고 문의 사무실을 찾는다.
그리고 문정숙은 사무실로 들어오는 한 피해자를 보고 다리에 힘이 풀려버릴 정도로 놀라고 만다. 그가 바로 배정길 할머니였기 때문이었다. 16년 간 딸처럼 자신을 보살펴주었던 배정길이 왜 갑자기 일을 그만 두었는지 깨달은 문정숙은 후회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빈다.
피해자가 왜 피해 사실을 증명해야 하나
가해자가 사과하면 끝날 일을
평생 이기는 싸움만 해왔던 박정숙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시모노세키(관)와 부산(부)을 오가는 힘겨운 재판을 해보기로 결심한다. 이름하야 관부재판. 게다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고 무료 변론을 해주겠다는 변호사도 등장한다. 바로 교포2세 이상길 변호사다. 그는 이길 수 있는 재판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일단 위안부와 정신대에 대한 차별과 불합리를 세상 밖으로 꺼낼 필요는 있다고 천천히 가보자고 한다. 자신 역시 재일교포로서 많은 차별과 불합리에 시달려 왔다며.
할머니들의 증언을 수집하고, 법론을 뒤져가며 수일간 밤을 샌 끝에 일본 정부를 고발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낸 이상길 변호사. 그는 일본정부의, 도의적 책임뒤에 숨은 비겁함을 긁기로 결심한다. 마치 문정숙이 직원의 기생관광에 대해 몰랐더라도, 사장이기 때문에 영업정지라는 도의적 책임을 졌던 것 처럼, 일본 정부 역시 그간의 만행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이 재판, 결코 쉽지 않다. 일본의 극성 우익들은 공판날마다 몰려와 훼방을 놓고, 일본정부의 변호인들은 할머니들의 눈물겨운 증언에 대하여 지겨우리만치 무대응으로 버틴다. 왜 피해자가 힘겹게 아픈 과거를 들추며 피해 사실을 증명해야 하나. 가해자가 인정하고 사과하면 끝날 일을.
일본군의 만행은 꽃다운 나이였던 어린 소녀들의 등에, 배에 칼자국을 남겼고, 상습적 구타로 치매를 앓게 만들었으며, 매독균을 옮겨 후대에 까지 피해를 입혔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분주히 계산기를 돌린 끝에, 마지못해 두당 300만원 씩의 보상만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할 뿐, 진정성있는 사과와 반성은 뒷전이다.
독자분들의 혈관 건강을 위하여 본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결국 관부재판은 첫번째 공판일로부터 수년이 지난 후에야 일부 승소로 막을 내린다.
약자 혐오,
약자가 되기싫은 약자들의 거짓 혐오
영화 <허스토리>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 영화 속에는 명확히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 외에도 자기 스스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종범국가인 일본과, 배정길의 아들이 바로 그들이다.
일본 우익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힘겹게 증언을 이어가는 공판장에서 외친다. 자신들 역시 패전국이고 원폭까지 맞았으니 피해자라고 말이다. 배정길의 아들 역시 마찬가지다. 위안부였던 어머니때문에 매독균에 감염되어 괴로운 삶을 살고 있다며, 자신 역시 피해자라고 길길이 날뛴다.
그러면서도 원폭을 날린 미국이 아니라, 매독균을 옮긴 일본군이 아니라, 각각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혐오감을 드러낸다. 왜 분노는 항상 약자에게로 흐르는가.
누군가 피해나 폭력을 당해 피해자가 되면 피학적 성격을 가지기 쉽다. 매맞는 것에 익숙해지고 욕설에 적응이 된 피학적 삶에 길들여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분노는 여러 갈래로 흐른다. 그중 하나의 도착지점이 바로 '약자'인 것.
그들은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한다. 그 증오심은 가해자가 아니라 자신과 같이 똑같은 약자인 또 다른 피해자에게로 향한다. 가해자에게 대항할 힘과 용기는 없고, 자신이 피해자의 위치에 서는 것 역시 싫으니, 자신보다 힘이 없는 약자를 괴롭히며 스스로 가해자의 위치에 서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피해자였을 때 자신이 당했던 수모와 고초, 스트레스를 약자에게 남김없이 퍼붓어 댄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도 피해자라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하는 것이다. 끝까지 비겁함을 잃지 않는 선택적 피해자들.
이들은 약자가 되기 싫어 약자들을 혐오한다. 사실 가해자에게로 흘렀어야 할 증오는 거짓혐오로 둔갑해 약자에게로 흐른다.
그러나 모든 피학적 성격의 사람들이 약자를 괴롭히는 것은 아니다. 피학적 성격이 약자를 대하는 태도는 여러가지가 있기 때문이다.(해당 내용은 7월 출간될 필자의 저서에서 확인해보세요^^)
여러 영화를 닮은 <허스토리>
오마주 투 코리안 히스토리!
사실 <허스토리>를 보며, 여러 영화가 떠올랐다. 표절이나 모방은 절대 아니다. <허스토리>역시 한국의 아픈 역사를 담은 여러 영화들과 그 결을 같이하기 때문일 터.
영화에서 배정길이 위안부 시절 깊이 의지했던 황금복이라는 친구와의 일화를 떠올리는 장면은, 꽃다운 나이에 위안부로 끌려가야했던 두 소녀의 우정을 그린 영화 <눈길>이,
문정숙이 위안부 및 정신대 할머니들과 함께 힘겨운 재판을 거듭하며, 이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과정은, 사회적 약자들을 마주하며 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린 <변호인>이,
재일교포인 이상길 변호사가 뻔뻔한 일본정부에 맞서 법정의 시인처럼 열성적으로 차별과 불합리에 맞서는 모습에서는, 약촌 오거리사건을 다룬 <재심>이,
자신의 위안부 시절을 숨기고 살아가던 할머니들이 정의를 위해 힘든 여정을 떠나는 장면에서는, 위안부 할머니의 자기고백을 그린 <아이 캔 스피크>가 각각 떠올랐다.
사실 한국 근현대사는 그릇된 권력의 폭정으로 점철돼 있다. 그러나 한국 국민은, 시민은, 위안부 할머니들은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식민지배를 벗어나자마자 한국전쟁이 일어나 원치않게 열강들의 신탁통치를 받았고, 독재와 쿠테타, 비리와 부정부패로 얼룩진 현대사를 거쳐 왔다. 그러나 역사의 고비마다 강한 국민들이 있었다. <허스토리>는 그녀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의 근현대사를 겪어온 우리 국민 모두의 이야기다. 동시에 한국의 역사에 바치는 오마주라고 할 수 있겠다. 많이 슬프니, 휴지는 필수!
* 7월초, 저의 책이 출간됩니다. 6월 마지막주부터 카카오페이지와 네이버책문화판에서 사전 연재를 시작해요.
관련해서는 곧 따로 글을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