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으로 읽는 영화 이야기 #1 재심

약촌 오거리에서 찾은 진실과 진심

by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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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재심


약촌 오거리. 어쩐지 귀에 익는다. 바로 SBS의 간판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동 사건을 다루어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영화 <재심>은 경찰의 강압 수사로 인해 누명을 쓰고 10년 간 억울하게 복역한 청년, 약촌 오거리 사건의 장본인 '조현우'의 이야기다.


사건은 2000년 8월, 현우가 우연히 약촌 오거리를 지나가다 숨진 택시기사를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처음엔 목격자 신분으로 수사에 협조하고 있었던 현우의 오토바이에서 칼 한 자루가 발견되면서, 현우는 졸지에 용의자가 되어 강도높은 심문을 받게 된다. 거짓 자백을 이끌어 내기 위한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는 허름한 모텔방 안에서 굴복하고 마는 현우. 1심에서는 극구 범행을 부인하다가 경찰의 회유와 협박에 또다시 굴복하여 2심에서 10년 형을 받게 된다.


누명을 쓴 것도 억울한 데 출소하고 나니, 빚이 현우를 기다리고 있다. 약촌 오거리 사건의 피해자인 택시기사 측에 지급된 산업재해 보험금 4000만원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에서 현우에게 구상권을 청구한 탓이다. 4000만원의 원금은 현우가 복역하는 동안 1억 7천으로 불어났고, 아무리 억울함을 호소해 봐도 들어주는 이 하나 없었다.



신뢰 vs 불신, 3분 10초 사이의 간극



이 때, 현우의 앞에 변호사 이준영이 나타나서 달콤한 제안을 하나 한다. 바로 약촌 오거리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겠다는 것. 사실 준영은 공익성보다는 자신의 명예욕을 채우기 위해 변호를 맡고자 한다. 청년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댓가로 자신이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된다면 스타 변호사로 유명세를 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우는 이미 세상엔 정의가 없다는 것을 몸소 체득한데다가,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아 억울함과 분노로 가득차 있으며, 어떻게 해도 달라지지 않는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똘똘 뭉쳐 있는 상태다. 준영의 설득이 먹히지 않는다. 하지만 준영의 야망 또한 만만치 않았다. 결국 끈질긴 노력끝에 현우의 마음을 얻게 된 준영은 재심 청구 건에 대해 사건 조사를 시작한다.


함께 약촌 오거리로 향하는 현우와 준영. 조서 상으로는 현우가 통화를 마친 후 오토바이에서 내려 살해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분 40초, 그러나 시뮬레이션 상으로는 4분 50초가 소요 되었다. 애초에 현우는 범인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때 인간 이준영은 부조리한 세상에 처음으로 분노하게 된다. 힘없고 돈없고 못배운 소년에게 보호를 제공해야 할 국가와 공권력이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준영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저항할 힘도 없는 사회 밑바닥의 약자를 유린한 작자들을 상대로 시원하게 싸워보기로 결심한다.


타인을 불신했던 현우가 준영을 신뢰하게 된, 그리고 세상을 신뢰하던 준영이 사회 정의를 불신하게 된 순간이다.



재심, 만인에게 새로운 시작이 되다


현우의 어머니는 학교 다니기 싫어하는 현우에게 이렇게 말 한 적이 있다. 학교를 꼭 다녀야 하는 이유는 '나도 너 같은 사람이라고, 다른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고 말이다. 다시금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똑같은 보통 사람으로 살아 가고자 하는 희망의 불씨를 살려 보는 현우. 적은 돈이나마 벌어 준영에게 변호사 선임비용을 전달하고, 낡은 검정고시 책을 꺼내 들어 본다.


준영 또한 정의 구현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재심이라는 것은 이론상으로는 가능하지만 한 번 선고된 사건을 뒤엎는 것은 사법부의 결정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나도 힘든 일임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 때문이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의해 동일 사유건으로는 단 한 번만 청구 가능한 재심. 현우와 준영에게는 단 한 번의 기회만이 남은 셈이다. 현우의 전재산이 담긴 꼬깃한 봉투를 안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투지를 불사르는 준영에게 연수원 동기인 창환은 지나친 감정 이입은 금물이라고 충고한다. 변호사가 해야할 일은 법정 대리인으로서의 역할, 그 뿐이라며.


그러나 이제 준영에게는 '10년의 시간'과 '보통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잃어버린 현우의 누명을 벗기는 것이 삶의 목표가 돼 버렸다. 당장의 빚을 청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세상에서 살인자라는 주홍글씨가 낙인 찍힌 채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왜곡된 진실을 바로잡고자 분투한다.


<재심>은 사법부의 기만과 오만에 대한 사죄의 계기이자, 인간 조현우에게는 새 삶을 살 수 있는 기회이다. 타성에 젖은 변호사 이준영에게도 삶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만인에게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는 <재심>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정신적 트라우마, 마음의 상처


현우가 낙담하고 좌절할 때 마다 귓 속에 울리는 이명. 그리고 순식간에 지나가는 환영. 바로 강압 수사때의 기억이다. 무차별적인 폭력과 욕설은 그에게 육체적인 고통 뿐만이 아니라 정신적 외상까지 남겼다. 트라우마는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 촉각, 심지어 후각적 기억까지 되살려 낸다. 즉 피해를 입었을 때의 순간이 매번 되풀이 되는 것이다.


보통 충격을 받았을 당시의 상황과 비슷한 환경이 되면 트라우마가 되살아 나거나, 심한 경우 그 순간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정신적 트라우마는 곧 마음의 상처라 할 수 있다. 그 상처가 아물기 까지는 긴 시간이 걸린다. 어디가 아픈지 콕 찝어 설명할 수 없고,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외과적 수술을 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저절로 낫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의외로 우리는 트라우마를 갖게 될 수 있는 환경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 꼭 물리적인 사건이나 사고로 인해 정신적 외상을 입게 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꾸중, 선생님의 체벌, 친구간 일어나는 왕따 문제, 폭력 등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우리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권력이 행사하는 폭언이나 폭력은 가장 흔한 트라우마 유발 요인이 될 수 있다.


사회는 약육강식의 메커니즘으로 돌아간다. 권력자는 약자를 보호해 주는 댓가로 굴종과 약탈을 요구한다. 여기에 정의라는 것이 입혀지면 조금더 세련되어질 뿐 기본적인 뼈대는 같다. 우리는 세금을 내고, 그들은 사회적 인프라를 제공한다. 우리가 웃어른을 공경하는 댓가로, 그들은 내리사랑을 베푼다. 친구들 간의 사이에도 여지없이 적용된다. 한 학급 내에서도 정치질이 난무하고 권력싸움이 팽배하다. 어렸을 때부터 강자와 약자로 흘러가는 정치 싸움을 접하며 자라온 우리는 너무나 쉽게 '지배'당한다. 친구의 관심을 얻기 위해, 상사의 총애를 받기 위해 무리한 요청에도 순순히 응하고, 사랑에 목말라 정작 자신은 쪼들리면서도 부모님 용돈은 넉넉히 챙겨 드린다.



이쯤에서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있다.


권력은 왜 항상 이기는가.


우리가 착한 아이로 살 것을 강요받은 탓이다. 권력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순응하는 법만을 가르친 사회 탓이다. 소심한 약자들은 기득권의 배만 불려 줄 뿐, 정작 그들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우리 사회 또한 트라우마로 얼룩져 있다. 왜 선생님의 실수는 지적하면 안되는 지, 왜 아버지에게 바른 말을 하면 안되는 지, 왜 기업의 비리를 고발하면 안되는 지, 왜 속칭 일진 무리들에게 그만하라고 말 하면 안되는지에 대해 영문도 모른 채 수그리라는 강요만을 받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당연한게 아니다. 이것은 학대이자 폭력이다.


영화 <재심>의 현우 또한 공권력에 굴복하고 만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다. 굴복하지 않으면 맞아 죽는 길 뿐이고, 돈없고 빽없는 소년 하나 죽었다고 눈 하나 깜빡할 자들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것이다. 현우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아버지라는 울타리 없이 성장했다. 가난한 형편과 제대로 교육을 마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매번 무시당하고 좌절한 소년은 불가능에 익숙해져 있다. 아버지상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권력은 선도자와 보호자의 역할이 아니라 두렵고 무서운 존재로써 다가올 뿐이다.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과 정신적 압박에 이어 자신의 약점(어머니)을 잡고 협박하는 공권력 앞에서 현우가 별달리 무엇을 선택할 수 있었겠는가?


목표는 생존, 수단은 거짓 자백.


권력이 이기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들은 <이기는 법>만을 배우고 살았고, 우리는 <지는 법>만을 배우고 살았기 때문이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 못하고, 옳은 것을 옳다고 말 할 수 없는 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답안은 순응 뿐이다. <투쟁>이라는 훌륭한 선택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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