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으로 읽는 영화 이야기 #8 눈길

가슴속에 너무나도 당연한 분노를 일깨워주는, 누구나 알아야 할 이야기

by 고요


눈길,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


배경은 1944년, 일제강점기 말. 아직은 전쟁의 손길이 닿지 않은 평화로운 마을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전매서기 강희원의 딸 영애는 부유한 집안에서 곱게 자란데다 똑똑하기까지한 엄친딸이다. 일본어에도 능통하여 미래에 선생님이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고 있는 영애는, 위로 오빠(영주)가 하나 있다. 또한 같은 마을의 동갑내기 소녀 종분은 영애네 집에 소일거리를 해주고 쌀을 한 됫박씩 받아 끼니를 해결하는 가난한 집안의 딸으로, 영애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며 영애의 삶을 동경한다.


어느 날, 영애는 근로단으로 뽑혀 일본으로 건너가 상급학교에 진학하기로 한다. 종분은 마냥 영애가 부럽기만 하여 어머니에게 자기도 가겠다고 떼를 써 보지만, 어머니는 괜히 핀잔만 줄 뿐이다. 그러다 어머니가 시장으로 놋그릇을 팔러 간 사이, 일본군이 들이닥쳐 종분을 끌고가 열차에 싣는다. 열차 안은 종분과 또래인 소녀들로 북적인다. 심부름을 하러 갔다 잡혀온 아이도 있고, 종분 처럼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아이들도 많았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 낯익은 얼굴이 있다. 영애다.



영애는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아버지때문에, 근로단이 아니라 만주행 열차로 열외되었다. 비싼 모직코트에, 단정한 흰 얼굴을 했던 종분의 우상이 한 순간에 열차 속 소녀 무리 중 하나가 되어 버린 순간이다. 그 후로 종분과 영애는 끔찍한 위안부의 삶을 살았다. 차디 찬 독방에 갇혀, 자신의 이름이 아닌 일본식 이름의 나무 명패를 달고 두려움과 고통에 시달렸다. 일본군의 성욕을 해결할 도구로 쓰여지다, 병이 들거나 임신을 하면 가차없이 쓸모없는 것으로 분류되어 버림받았다.


소녀들은 씻을 수 없는 상처로 얼룩졌으며, 영애는 낙태를 거부하다 두들겨 맞고 밑까지 들어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 자살시도도 해 보았지만 가혹하게도 세상은 영애에게 살라고 했다. 종분은 꼭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가 차려준 쌀밥을 먹겠노라며 애써 힘차게 버티고 버틴다.


그래도 시작을 한 이상 끝은 있다. 일본의 패전 소식이 들리는 가운데, 현지 보급 물품은 모두 소각하라는 명령을 받은 일본군은 소녀들을 향해 총질을 시작한다. 한 떨기 꽃같은 아름다운 소녀들은, 그들에게는 단지 보급품일 뿐이었다.


일본군의 총알 세례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쳐 나온 영애와 종분앞에 끝없이 펼쳐진 눈길. 눈길은 과연 그들을 어디로 데려다 줄까. 위안부 소녀들의 삶.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할 이야기이자, 당연히 분노해야 할 역사의 아픔이다.



이 영화에는 <아버지>가 없다


집이 가난해 제사 때 지방쓸 남자아이만 학교에 보내 놓고, 학교 가고싶다고 떼를 쓰는 누이에겐 감자 광주리를 대신 쥐어 동생의 끼니를 챙겨 주라던 어머니. 전쟁에 차출될 만한 소년들을 모조리 잡아다 끌고 가느라 집안이 쑥대밭이 돼가는 와중에 군홧발에 채이면서도 오라버니를 붙잡아 보겠다는 어린 여동생. 그리고 소녀들이 일본군의 위안부로 억지로 끌려가는 동안에도 코빼기 조차 보이지 않는 아버지.


<눈 길>에는 아버지가 없다. 어린 소녀들을 지켜줄 국가가 없다. 힘없고 무능한 아버지는 앵글 바깥 어딘가에 등을 돌린 채 웅크려 앉아있다. 세계를 제패하려는 일본의 야욕은 시대의 아버지들을 모두 빼앗아 갔다. 그렇게 담을 넘어, 사립문을 지나 시대의 소년들과 소녀들을 빼앗아 갔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부성애는 결여돼 있다. 진심어린 사과 대신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을 알량한 돈 몇푼으로 덮어보려고 발악하는 일본.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는 피해자보다 목소리 큰 진상 가해자에게 호되게 한 소리 꾸짖어 줄 아버지가 없는 것이다. 그 시절, 앵글 밖으로 나간 아버지는 오늘까지도 돌아오질 않는다.



삶의 바닥에서 찾은 조국의 뿌리, 한글


영애의 오빠 영주는 언젠가 종분에게 <소공녀>라는 책을 준 적 있다. 학교를 다니지 않아 한글에 서툰 종분은 마을의 어르신에게 소공녀가 무엇이냐 여쭙고, 어르신은 공주라고 답한다. 꼭 소공녀 같았던 이미지의 영애는 종분에게는 다다르고 싶었던 이상향이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영애가 자신과 함께 상처를 입고 고통 속에 살고 있다니...


종분은 꼭 제 어미처럼 억척스레 살고자 하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매번 살아서 돌아갈거라고 말하는 종분의 다짐이 무색하게, 항상 죽고자 하는 영애. 그런 영애를 돌려 세운 건 종분의 품속에서 꺼낸 <소공녀> 책이었다. 한글을 알려달라며,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자신을 바라보는 종분을 한 참 동안 바라보다가, 영애는 살며시 옆자리를 내어 준다. 그리고 둘만의 한글 수업이 시작된다.


극한의 상황에서 한글은 다시 살고자하는 희망이 되어 피어났다. 영애도 한때는 꿈이 있었던 소녀였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민족의, 조국의 뿌리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힘은 그 권력을 강한 곳에 과시하지 않고, 여지없이 가장 약하고 연한 살을 파고 든다. 일본군들이 짓 밟은 순수한 소녀들은,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는다. 살아서 돌아가겠다는 희망만이 잔인한 일본군에게 저항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놓을 수 없어 붙잡고 있었던 친구의 이름, 영애


종분은 영주를 짝사랑했다. 그 마음을 모를 리 없었던 영애는 매번 종분의 기대를 꺾어 놓았지만, 이제는 고통의 나날을 함께한 전우애로 종분에게 오빠를 허락한다. 예상치 못한 영애의 허락에 기분이 좋아 활짝 웃었다가도 금새 시무룩해지고 마는 종분. 짓밟힌 시절에 대해 떳떳할 수 없다는게 그 이유다.


영애는 위안부였던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이라 말한다. 어머니에게 조차 털어 놓을 수 없는 삶의 치부가 돼버린 기억은 근로단으로, 간호부로, 방직 공장의 직원으로 그 모습을 바꾸며 가슴 깊은 곳으로 쳐박힌다.


자신 하나만 속이면,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될 위안부로서의 삶. 속으로 끙끙 앓으며 삭힌 그날의 기억들은 종분이 호호 할머니가 될때 까지도 따라붙어 불쑥불쑥 심장을 찔러 댄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친구의 이름을 빌려 살아 온 종분의 곁에는 항상 소녀의 모습을 한 영애가 따라 다닌다. 상실은 우울을 가지고 온다. 친구를 잃고 가족을 잃은 종분의 마음 속에 가라 앉은 우울감은 자신의 소녀 시절을 고스란히 함께 보낸 영애의 환상을 불러낸다. 잃어버린 소녀로서의 삶을 되찾고 싶은 간절한 마음은 친구의 모습으로 나타나 홀로 살아남은 종분의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죄책감을 어루만져 준다.


수십 년 동안 빌려 썼던 친구의 이름을 떠나보내고 최종분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되찾은 날, 눈이 펑펑 쏟아져 내린다. 종분은 눈을 한 참 동안 바라보고 서 있다. 흰 눈을 보고 있노라니, 예전 영애네 집에서 목화솜을 따다가 고르게 펴 이불을 만들던 추억이 되살아 난다. 종분의 눈에 탐스럽게 나리는 눈송이의 모습이 옛날 그 따끈한 아랫 목의 열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목화솜 이불이 겹쳐 보이는 이유는 <그 날>, 한 소녀의 아픔이 눈발처럼 가슴에 날아들어와 박혀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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