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으로 읽는 영화 이야기 #12

마가렛트 여사의 숨길 수 없는 비밀, 자기애의 비극

by 고요

십자가 서 있는 고목 앞, 한 중년의 남성이 담배를 피며 수심에 잠겨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마데우스 클럽의 자선 행사는 화려하고 시끌벅적하다.
가수들이 공연을 마칠 때 마다 우뢰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쏟아져 나오고, 드디어 피날레로 무대에 선 마가렛트.
상상치도 못했던 무대다. 그녀는 음치였다.

사람들이 애써 웃음을 참느라 안간힘을 쓰는 와중에, 마가렛트는 아랑곳않고 완창.
여차 저차 무대를 마친 그녀의 곁으로 두명의 청년이 찾아온다.
그들은 부유한 마가렛트에게 환심을 사려 아부를 하고, 마가렛트는 그들과 어울려 지내며 자유분방한 젊음을 따라잡기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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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청년들은 마가렛트에게 무대에 서 줄 것을 요청하고 마가렛트는 남편과 함께 노래 부를 장소로 떠난다.
남편은 마가렛트가 노래하는 것을 끔찍히도 싫어해서, 무대로 가는 길에 일부러 차를 고장낸다.
실의에 빠진 마가렛트와 상반되는 남편의 느긋한 모습.
그리고 그 뒤로 마가렛트의 충성스러운 집사 마델보스가 차를 몰고 온다. 마가렛트 부부가 차에 오르기 전, 남편이 일부러 차를 망가뜨린 것을 봤던 그는 역시나 마가렛트를 위해 먼 길을 달려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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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마가렛트는 무대에 서서,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를 부른다. 무대 주변은 점점 광기로 달아오르고, 과격해진 사람들은 피아노와 테이블을 깨 부수기에 이른다. 남편은 분위기가 이상함을 깨닫고 마가렛트를 부른다.

경찰들이 공연장에 들이닥쳐 현장을 정리하는 동안, 남편과 마가렛트는 이 공연장이 반정부주의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충격에 빠진다. 그 때문에 마가렛트는 아마데우스 클럽에서도 제명당한다.


여태껏 아마데우스 클럽의 후원자 겸 소속 멤버로 노래를 불러왔던 마가렛트는 슬퍼함도 잠시, 처음으로 무대다운 무대에 섰던 그 희열을 되찾고자 단독 콘서트를 개최하겠다고 결심한다.

마가렛트는 공연을 도와줄 적당한 사람들을 모으려, 청년들을 다시 찾아가고 그들 중 한명은 마가렛트의 순수함에 죄책감을 느껴 진심으로 마가렛트를 도와주겠다고 생각을 바꾼다. 그리하여 왕년에 잘나갔던 오페라가수를 초빙하여 한 달 간 단독 공연을 위한 준비에 돌입.

공연 준비가 막바지로 치달을 때 쯤, 마가렛트는 남편의 서재에 들렀다가 곱게 포장된 스카프를 발견한다. 당연히 자신의 선물인 줄 알았던 마가렛트는 스카프를 꺼내 둘러보고는 행복한 표정을 짓다가, 책상에 놓여있는 액자를 응시한다.


두려운 눈빛을 하고 두 손으로 무언가를 방어하려는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의 얼굴.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진 그녀는 서재를 박차고 나온다.

그리고 며칠 후, 남편이 다른 여자와 차를 타는 것도 보았고, 그 여자가 서재에서 본 스카프를 두르고 있는 것도 보았다. 낙담했지만 내색할 수 없는 그녀. 조금 더 사랑하는 쪽이 항상 지게 돼 있다.

공연 당일, 공연 시간이 가까워 졌는데도 남편은 오지않고, 마가렛트는 초조히 남편을 기다린다.
조금 늦게 남편이 도착한 것을 본 후, 안도의 한 숨을 쉬며 마가렛트는 무대 위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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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날개를 달고, 조명 가득한 무대위의 마가렛트는 단연코 아름다웠다. 남편에게 다시 돌아오라고 말하기라도 하듯 남편만을 위해 노래하는 마가렛트.


노래는 절정으로 치닫고, 마가렛트의 상상 속에서 그녀는 아주 아름다운 목소리로 남편에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지독한 음치의 우스운 멜로디가 흐르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의 비웃음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마가렛트는 집중하여 노래를 부르다 갑자기 쓰러지고 만다.

병원으로 옮겨진 마가렛트는 다행히도 다시 기운을 차렸지만, 의사는 수차례 상담을 통해 그녀가 상상 속에서 살고 있다며 심리적 문제가 있음을 남편에게 알린다. 덧붙여 환상속에 살고있는 그녀에게 현실을 알려주는게 좋겠다고 한다. 바로 본인이 부른 노래를 녹음해 들려주고 그 반응을 살펴보는 실험을 제안한 것.

항상 음치였던 부인을 괴물로 생각하고 있던 남편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이고 마가렛의 친구들을 불러모아 실험에 동참해 줄 것을 부탁한다.


의사가 마가렛트의 노래를 녹음하는 동안, 집사 마델보스는 마가렛트의 무대 의상들을 하나 씩 처분한다. 마치 화형이라도 하듯, 마지막 공연때 썼던 큰 날개를 마당에 걸어놓고 불태우며, 그것을 사진으로 남긴다. 마델보스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마가렛트의 옆을 지켰고, 매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왔다. 이제 그녀의 인생은 마델보스의 작품집이 되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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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당일 아침, 남편은 불현듯 실험을 중단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병원에 있는 마델보스에게 전화해 실험을 중지해 줄 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마델보스는 의사에게 그 말을 전달하지 않고, 실험은 계속된다.

십자가가 서 있는 고목 앞, 또 다시 멈춰선 차. 이번엔 의도적인 고장이 아니라, 진짜로 멈춰 버렸다. 남편은 뒤늦게야 마가렛트의 순수함을 보았고, 그 실험을 멈추기 위해 어떻게든 병원으로 가려고 애쓴다.


그 사이 실험은 시작되고 마가렛트는 자신의 친구들이 하나 둘 모여 든 병원의 연회장에서 자신의 노래를 녹음한 레코드를 청취한다.

그녀는 마주한 진실 앞에 큰 충격을 받는다.
야속하게도 멈추지 않는 밤의 여왕 아리아.

남편이 뒤늦게 병원에 뛰어들어오지만 병원 전체에 흐르는 아내의 노래를 듣고는 절망한다. 그리고 연회장에 도착한 순간 바닥에 쓰러진 마가렛트가 보이고 남편은 곧장 달려가 마가렛트를 안아든다.
그리고 그 순간을 앵글 안에 담는 마델보스.

마델보스는 이 모든 불행의 시작이 남편에 의한 것임을 알고 있다. 일종의 복수임과 동시에 본인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한 컷. 피날레.


자기애의 비극, 비밀은 없다


나르시즘은 보통 결핍에서 시작한다. 마가렛트 또한 남편으로 인한 애정결핍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무대에서 노래를 했다. 가장 화려하게 꾸미고 가장 행복해 보이는 웃음을 띄고 할 수 있는 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노래를 하는 것. 남들이 자신에게 환호하듯 남편도 그러길 바랐다.


그러나 남편 서재 책상에는 자신이 얼굴을 가리고 분노하는 사진이 걸려있을 뿐,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 게다가 서재에서 발견한 포장된 스카프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마가렛트는 절망에 빠진다.

어떤 이는 순수의 죽음이라 했다. 음악과 남편을 사랑한 순수한 마가렛트는 죽기 전까지 그들을 놓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 그녀가 부른 노래가 흐르고, 남편이 자신을 위해 울어 주었으니 그녀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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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소망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슬프게도 우리가 굉장히 착한 사람이거나 딱히 법을 어긴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은 절대 한치의 환상이나 착각 조차 허용치 않는다.


코앞에서 원하는 것을 놓치게 하고, 몇 번이고 사랑에 실패하게 만들고, 낙담하게 만들어 불행히도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매분 매초마다 상기시켜 준다.


마가렛트는 어떻게 해도 음치였고, 남편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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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아내가 노래 하고있는 무대의 근처가 아닌 고목 근처에 멀찍이 떨어져 아내를 피하려고 했던 남편.
그에게 있어 차라는 장치는,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만나는 장소이자 아내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수단, 아내가 무대로 가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방해 요소임과 동시에 마지막 순간 아내를 위해 병원으로 갈때 선택했던 그리고 실패했던 나쁜 패였다.

마가렛트는 사랑스럽지만 가장 불행한 사람이었다. 남편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고, 후원자였을 때는 못 떠받들어 안달이었던 사람들이 또 다른 후원자가 나타나자, 작은 잘못을 꼬투리 잡아 회원 자격도 박탈해 버렸다. 돈이 아니었으면 남편도 사람들도 다 곁에 오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그녀가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충성스러운 집사로 알고 있었던 마델보스도 자신의 작품 속 가장 멋진 피날레를 위해 극적인 죽음을 의도적으로 연출하여 결국은 오열하는 남편의 품에 안긴 죽은 마가렛트를 앵글에 담았다.

그래서 본인의 환상속에 또 다른 세계를 만들고 그곳에서는 유럽 전역과 미국으로 공연을 다니느라 분주한 최고의 소프라노로서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마가렛트가 본인의 실제 노래를 들은 순간, 자기를 둘러 쳐 놓은 모든 방어벽이 산산히 부서졌을 것이다. 그 현실을 마주하고 정신이 번뜩 들었을 때는, 축음기 외엔 아무도 곁에 없었고, 그녀는 극심한 외로움에 심장마비로 쓰러져 버린 것이다.


모든 걸 알았음에도 오히려 더욱 당당하게 혹은 뻔뻔하게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온 마가렛트가 너무 안쓰럽다. 마가렛트가 사랑했던 그 음악, 오페라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아리아에서 처럼 실제로 마가렛트는 혼자서 외롭게 자라스트로와 맞서 싸우는 밤의 여왕이었고, 파파게노와 파파게나, 그리고 파미나와 타미노가 자신의 사랑을 찾아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써 나가는 동안 그녀의 세계는 무너져 버린다.

결국 이 영화에서 다루는 것은 마가렛트의 비밀이 아니다. 마가렛트가 음치였던 사실은 이미 그녀를 제외한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 공공연한 사실이었고, 진짜 숨길 수 없는 비밀은 마가렛트 주변의 사람들이 사실은 속물근성에 찌들려 있었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들 모두 마가렛트의 지위와 부를 탐내느라 속내를 감추고 겉으로만 값싼 웃음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불쌍한 여인의 삶을 화려하고 위트있게 연출하여 슬픔을 더욱 강조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의 노래를 듣고 충격받은 마가렛트의 눈빛이 가슴 한구석에 깊이 박힌다. 나도 이해타산적인 인간관계로 인해 누군가에게 충격을 주진 않았을까? 알면서도 감추기에만 급급해 정작 충격받은 당사자를 심장마비에 걸리도록 방치하진 않았을까.... 고민스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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