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안의 목격자가 들려주는 그 날, 광주의 진실
서울 택시, 독일인을 싣고 광주로 달려가다
택시운전사 김만섭. 손님이 없을 때면 텅 빈 택시 안에서 목청 껏 노래를 부르고, 괜히 길만 막히게 하는 배부른 대학생 시위대를 향해서 볼맨 소리를 뱉어내기도 하는 너무도 평범한 택시 기사다.
그러나 사람좋은 만섭은 갑자기 뛰어든 학생 때문에 백미러가 망가져도,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가 지갑을 놓고와 택시 요금을 못준다고 할 때도 악착같이 달려들어 제 몫을 챙기기보다는 그냥 손해를 감수해 버리고 만다. 당장에 집 월세가 넉달치나 밀려있는데도 말이다.
그는 친구의 집에 세들어 산다. 그래서 친구이자 집주인의 아들인 상구가 자신의 딸 은정을 괴롭히는 것을 보면서도, 당당히 바로잡질 못한다. 이제는 작아져 꺾어신은 딸아이의 운동화를 보며 짠한 마음이 드는 만섭. 이래 저래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지 못해 미안한 마음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만섭에게 밀린 넉달치의 월세를 한 번에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이하 피터)가 광주-서울 왕복 요금으로 10만원을 부른 것이다. 즐거운 마음에 왕년에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트럭 몰던 시절의 콩글리쉬를 남발하는 만섭. 피터는 말도 안되는 영어로 시종일관 떠들어대는 만섭에 한숨으로 대응한다.
민주 광주, 고립과 폭압 속에서 정의를 외치다
만섭은 사실 광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 때는 1980년 5월, 수상하고 흉흉한 시절이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군사 정권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광주 고립작전에 들어간다. 모든 도로가 통제되고 출입이 제한된 가운데, 멋모르고 도로를 누비는 초록색 택시 한 대.
우여곡절 끝에 기지를 발휘해 광주 시내로 진입한 만섭과 피터는 흡사 폐허와도 같은 광주를 보고 깜짝 놀란다. 그 때, 낡은 군용 트럭 한 대 위에 옹기 종기 모여선 대학생 무리를 발견하고 자초지종을 묻는다. 대학생 재식은 영어를 좀 한다는 이유로 피터의 통역을 맡고, 국내 기자들마저 광주를 외면하는 실정인데 제발로 걸어들어와 광주의 진실을 알리겠다는 독일인 기자에게 꼭 세계에 광주의 현실을 알려달라고 부탁한다.
그들을 따라 광주 시내의 한 복판으로 들어가니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무기라고는 맨 몸 하나가 전부인 광주시민들을 향해 날아드는 최루탄과 총탄. 그리고 마구잡이로 시민들을 진압하는 몽둥이와 군홧발. 말그대로 아비규환인 시내의 풍경을 바라본 만섭은 큰 충격에 빠진다. 그러면서도 집에 혼자 남겨두고 온 은정이 생각나 본능적으로 몸을 사리게 되는 만섭.
그는 고민한다.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현장에 남아 무고한 시민들을 지원할 것인지, 아니면 은정의 곁으로 가 아버지로서 그 역할을 다 할지 말이다. 실제로 차를 돌려 순천까지 갔던 만섭은, 고심끝에 다시 피터의 곁으로 돌아온다. 손에는 딸 은정에게 줄 분홍색 구두를 들고.
계엄군의 총구는 시민을 겨누고,
독일인 기자는 카메라 앵글으로 대응사격한다
광주는 철저히 혼자였다. 도로는 폐쇄되고 시외 전화선은 모두 끊겨 개미 한 마리마저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 만섭은 택시를 몰고 현장으로 돌아가 시민들을 향해 발포되는 계엄군의 총탄을 막아주기도 하고 부상자들을 옮기기도 하며, 마지막남은 인류애를 쥐어짜낸다. 공포와 두려움을 뒤로한 채 목숨을 걸고 지킨 광주.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쓰러져 도로위를 뒹군다.
시민들이 가진 유일한 무기는 독일인 기자가 가진 카메라 한 대가 전부다. 그의 앵글은 계엄군의 횡포와 광주시민의 무고한 희생을 그대로 담아낸다. 너무도 비극적인 순간, 아가씨도 학생들도, 아저씨도 할머니도 다 같이 피에 젖어 하나 둘 쓰러진다. 재식 역시 마찬가지다. 대학가요제에 나가고 싶어 대학을 갔다는 재식은 꿈도 못이루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벗겨져 나뒹구는 낡은 운동화. 그 운동화를 재식의 발에 신겨주는 만섭.
시체를 옮기는 시민을 향해서도 총탄은 멈추지 않는다. 총을 맞는 사람도 총을 맞은 사람도 대한민국 광주광역시의 시민이다. 시체를 옮기는 사람도 시체가 된 사람도, 모두 광주 시민이자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나라의 주권을 가진 국가 최대의 VIP. 극진히 대접해도 모자랄 판국에 그들을 향해 총을 쏜다는게 말이나 되나...
이제 만섭은 독일인 기자의 필름을 사수하여 김포공항까지 실어다 주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의 손에 광주의 목숨이 달려있는 것이다.
이게 나라냐! 나라다운 나라를 위한 울분섞인 지탄
국민을 향해 총을 쏘는 군인이 어디있나. 국민이 얻어맞고 있는데 빨갱이라고, 폭도라고 도리어 몰아부치는 언론이 어디있나.
유감스럽게도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는 군인이 국민을 폭압하고 언론이 국민을 외면하는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었다. 그 때, 광주시민을 제외한 모든 국민은 알권리로부터 철저히 배제되어 그 날의 진실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날. 함께 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은 마음속 깊이 부채감으로 남았다.
그러나 언제나 그러하듯 역사에는 온갖 변수가 존재한다. <위르겐 힌츠페터>. 한국 근현대사 최대의 변수가 아닌가 싶다. 펜촉은 칼보다 날카롭다고 했던가. 기자 정신은 위기의 순간 가장 밝게 빛난다. 안정되다못해 심심하기까지한 일본의 국내 정세의 지리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바로 한국행 비행기를 탄 독일 제1공영방송의 일본특파원 위르겐 힌츠페터. 그는 진실을 세계에 알린다는 일념하에 전쟁터와도 같은 광주 시내에 제발로 걸어들어간다.
그리고 그는 광주 시민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다. 나라를 나라답게, 사람을 사람답게 바로잡기 위하여 위급한 상황 어디서든 카메라 앵글을 들이 댔다. 그 결과, 세계는 광주의 진실을 알게되었고, 그 순간 광주 시민들은 더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에 안도했다.
지금이라도 그 날의 사건이 폭도나 빨갱이의 데모로 전락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정신을 지켜낸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명명되어 바른 지식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희생정신, 영웅 DNA는 존재하는가
위르겐 힌츠페터는 계엄군의 포신 앞에서 겨우 카메라 한 대로 버텼다. 어찌보면 무모한 일이다. 목숨을 잃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생명이라는 것은 모든 존재의 근거가 된다. 태어났으니 사는 것 아닌가? 이렇게 사는 것을 가능케 해주는 생명을 담보로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은 여간 큰 희생정신을 필요로 하는게 아니다. 진실을 알리고자 혈혈단신 광주로 온 벽안의 사나이. 그의 희생정신은 과연 영웅적 DNA의 산물인 것일까.
이렇게 자기의 피해나 손해를 감수하고 남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피학성 성격의 한 갈래라고 볼 수 있다. 피학적 성격의 사람들은 지나치게 도덕적이고 절제와 겸손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고 고통이나 두려움을 감수하며 남에게 이타적으로 구는 것이다. 이는 성적인 의미에서의 피학과는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 도덕적 의미에서의 피학은 자신을 희생하여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의 모성, 그리고 예수나 부처처럼 자신을 희생하여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성인의 그것과 같다.
가끔 사회면에서 누군가를 돕기위해 선뜻 나서는 사람들의 일화를 엿볼 수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누구라도 그랬을 거라고. 하지만 불행하게도 누구에게나 영웅 DNA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는 것을 가능케 해주는 생명. 그것을 지키기 위해 몸을 사리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우리 사회에서 영웅은 극히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영향력은 아주 크다. 영웅이 괜히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니다.
태양은 하나 뿐이지만 지구 전체를 비춘다. 이처럼 피학적 성격을 타고난, 영웅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제 한몸 희생하여 사회 전체를 밝게 비추는 것이다. 위르겐 힌츠페터가 얼마만큼의 고통과 두려움을 감수했는지는 나는 모른다. 일반인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의 철두철미한 직업의식, 윤리의식, 그리고 올바른 정의관이 광주의 진실을 세계로 널리 알린 일등 공신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피학적 성격. 그리고 희생정신. 바로 그것들이 시대의 영웅을 만들어 낸다.
다시, 광화문으로.
영화 <택시운전사>의 주인공 만섭이 마지막으로 손님을 실어나를 종착역, 광화문. 만섭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만원 밖에 없다는 학생에게 택시 요금을 전부다 청구하지도 않고, 여전히 피터가 준 목걸이에 가족사진을 이어 달아 백미러에 매달아 놓는다. 만섭이 택시운전사로 제 역할에 충실히 임하고 있을 때, 피터 또한 기자로서 열심히 역할을 다한다.
모든 국민이 자기 할 일을 다하는 것을 미덕으로 아는 사회. 이제 정말 상식적인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기자는 진실을 알리고, 택시운전사는 손님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고, 군인은 나라와 국민을 지키고, 시민은 민주주의를 만끽하면 되는 너무도 상식적인 사회. 모두가 자기 할 일 제대로 하는 건강한 사회의 모습이다.
지난해 국정농단을 향해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고, 그 결과 올해 장미대선을 기점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이 시작되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촛불의 시대. 국가와 국민이 소통하는 바른 예라고 할 수 있다. 국가가 길을 잃을 때, 방향을 바로잡아주기 위하여 광화문을 환하게 밝히는 국민의 촛불. 이제 그 곳에는 계엄군이 없다. 만섭이 운행하는 택시의 종착역이 광화문이었던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는 않았을 터.
다시는 무고한 희생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그리고 국가의 주권을 지닌 국민이 보내는 날카로운 견제. 이를 등에 업고 택시는 다시 광화문으로 간다. 사방이 탁 트여 절대 고립시킬수 없는 그 곳, 광장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을 그린 또 다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