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 안에 갇힌 자아,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의 이야기
부제; 결국, 내 안의 그녀가 죽었다.
차승원 주연, 장진 감독작.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 완벽한 형사 윤지욱에게는 비밀이 있었다. 바로 성정체성 때문에 항상 성전환을 하고 여자로 살아가려는 계획을 마음에 품고 다닌다는 것.
여자가 되고 싶은 마음을 부정하려고 더욱 남성성에 집착하게 된 나머지, 해병대에 입대했었고 제대 후에는 깡패들 사이에서도 유명할 정도로 싸움 잘하는 경찰이 되었지만 남몰래 여자 옷을 입어보고 화장을 해보는 윤지욱.
트렌스젠더 바에도 드나들며, 화장도 해보고 여자 옷을 입어보며 슬며시 자신의 여성성을 비밀의 장소에서 꺼내어 본다.
결국 해외에서 성전환수술을 하기로 결심하고 사직서를 제출하지만, 출국 직전 공항에서 소중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발길을 돌리게 되고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오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성전환 수술을 포기하고 남자로 살아가지만, 주스를 마실 때 새끼 손가락을 들고 마시는 그 여성적인 본연의 성정체성을 아직도 마음에 품고 있는 윤지욱의 모습이 그려져 더욱 가슴이 아팠다.
정상과 비정상 사이, 중간은 없나
다수의 범주안에 들어간다고 해서 감히 정상이라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오랜 시간의 학습기를 거쳐 기득권이 정해 놓은 선택지 이외의 답을 고르면 오답으로 처리된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그 선택지는 기득권의 편리와 편의에 맞추어져 있는 것일 뿐 항상 옳지 않다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저항하거나 반대함 없이 순응하고 침묵하며 살고 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영화는 지금 소망하고 바라는 것이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다. 정말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상황때문에 불가능한 꿈들이 있다. 타인의 시선때문에 노력조차 못해보는 소망들도 있을테고.
극 중 윤지욱의 말대로 신이 너무 많은 사람을 창조해서 몇몇에 대해서는 잊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여자가 되고 싶지만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더욱 남성적이 되어야 하는 윤지욱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못했던 하이힐.그렇게 감추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여성성이 남성 윤지욱을 비집고 나와 평생을 괴롭힐 것이다.
<나>와 다르다고 차별하게되면 남과 다른 <너> 또한 차별받게 된다. 다양성이 존중받는다고해서 개별성이 침해당하는 것도 아닌데 유연해 지는 것이 뭐가 어떤가. 사회가 좀더 자신의 것에 집중하여 타인에 대한 오지랖은 지양하고, 성숙한 어른으로서 차이를 보듬어줄 아량을 베풀줄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세상의 모든 윤지욱들도 행복할 수 있을 테니까.
성 정체성의 확립, 심리학으로 알아 보기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은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자신의 안에만 머무른다. 주변에서 이상하게 보는 것도 문제지만 사회적 편견에 물들어 자신 스스로도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 정체성은 자기 자신의 성별에 대해 남성이나 여성으로 확실히 인식하는 자아 의식을 말한다. 이것은 보통 2세 경에 형성되기 시작하여, 4세경에는 상당히 확고하게 굳어 진다. 아이들은 먼저 자신의 신체에 대해 인식하고, 이차적으로 내가 아닌 다른 것에 대해 인식하게 된다. 이 때 남녀간 성별의 차이를 깨닫게 되고, 주관적으로 습득한 남성성이나 여성성에 대한 인식을 심리적으로 내재화하고 자신의 성과 동일시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성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
객관적으로 구분되는 신체적 성별은 타고나는 것이지만 주관적으로 형성되는 성 정체성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체적으로는 여성이나 남성성을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고, 혹은 반대의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사회적 관념에서 보면, 신체적인 성별과 성 정체성은 서로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 그러나 어머니와의 관계나 주변의 환경, 호르몬이나 뇌의 발달 등 여러 요소에 의해 성 정체성이 신체적 성별과 다르게 형성되는 경우도 있다.
요즘에야 트렌스젠더와 제 3의 성별까지 인정해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동성연애자' 혹은 '변태 성향'으로 치부되며 부정적으로 인식되었었다. 앞서 말했던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는 도대체 어떻게 구분지어 진 것일까. 단순히 다수와 소수로 나뉜 것은 분명 아니다. 남과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고집과 아집, 그리고 다수에 편승하여 자신은 정상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비겁함의 불협화음일 뿐이다.
윤지욱이 여성으로 성별을 전환한다고 해서 우리의 삶에서 달라지는게 있을까. 단언하건데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과 다르다고 차별할 권리도, 틀렸다고 지적할 권리도 없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성별을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성별을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태어나자 마자 결정권 없이 얻게 된 생물학적 성별과 반대되는 심리학적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길, 손가락질 하기 보다는 박수를 쳐 주는게 더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