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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Jul 11. 2017

한강, 소년이 온다

그 때, 광주의 이야기


왜 선은 항상 위협받는가


한국 근대사는 억압과 쟁취의 역사다. 타협이 아니라 싸워서 이겨야만 생존할 수 있는 양립구도의 전쟁. 물론 대립각을 세우는 무리들의 체급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자유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토마스 제퍼슨의 말처럼,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너무나도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를 수호하려는 자들은 실로 많은 피를 흘려야만 했다.


일제의 식민지배와 한국 전쟁의 상흔이 채 아물지도 않았을 때, 군부 독재에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은 강한 힘에 지배당하고 억압받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그러나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던가. 꽃같이 여리고 약한 학생들이 일제에 항거하고, 이팔 청춘의 군인들이 나라를 지키고, 시민군이 낡은 카빈총으로 80만 발의 총탄에 맞섰을 때, 우리의 자유는 온전히 우리의 것이 되었다.


영웅들은 대단치 않았다. 오히려 평범하디 평범한, 약하디 약한 '우리'의 모습을 한 학생, 아들과 딸,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그들은 우리의 친구요, 우리의 이웃이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빼앗기지 말아야 할 것을 빼앗긴 게 아니다. 빼앗지 말아야 할 것을 빼앗아 간 것이 그들이지. 지금은 공기처럼 너무나도 당연스레 누리고 있는 인간의 권리와 자유가, 그 당시에는 억지로 빼앗겨 우리의 손에 없는 것이었다.


<소년이 온다>는 그 당연한 것을 되찾으려는 영웅들의 이야기다. 아니, 평범한 우리 이웃의 이야기다.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정대의 혼, 은숙, 교대 3학년 남학생, 선주, 어머니의 시점에서 그 날의 사건을 이야기 하고 있으며,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동호네 가족이 살았던 중흥동 집 전주인의 딸이 동호의 이야기를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그 날의 진실을 소설로 만들고자 동호네 가족을 찾아가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해마다 5월이면, 광주는 한 집 걸러 한 집이 제사라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광주민주화운동은 한국 역사의 아픈 상처다. 그들의 희생으로 얻게 된 자유에, 우리는 자연히 마음의 빚을 기꺼이 떠안고 살게 되었다.


중고등학생, 대학생, 방직공, 목공소 보조... 아직 발육이 덜돼 갸름한 목을 가진 학생들과 서른도 채 못된, 성인이라 부를 수도 없는 이십대 초반의 청춘들. 이런 오합지졸의 사람들이, 총이란 것을 실제로 본 적도 없던,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 다는 것을 알기에 절대 발포할 수 없다고 손을 덜덜 떨었던 사람들이, 시민군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그날 밤 광주 시내를 지키고 있었다. 누군가가 남아야 한다면, 자신이 남아야 한다고, 죽을 것이 뻔한데도 계엄군을 기다리며 사지로 걸어들어가 공포와 두려움에 맞섰다.


그러나 그 영웅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우리에게 자유와 편리를 남긴 채, 그들은 어디로 가 버린 걸까.


뼈마디가 드러나게 고문을 당하고, 피똥을 지리게 얻어맞고, 매 끼니마다 밥 한 줌에 쉰 콩나물 대가리가 든 국을 먹겠다고 식판 앞에서 짐승처럼 으르렁 거리게 만들고... 총과 탱크, 수천 개의 군홧발 앞에서도 끝까지 애국가를 부르며 맞섰던 숭고한 정신을 가진 영웅들은 육체적 치욕을 목표로 자행된 고문에 그야말로 개같은 삶을 강요당했다.


형량을 채우고 사회로 나온 영웅들은, 사람과 어울리는 방법을 잊었고, 기억력이 나빠지고, 온 갖 고문의 후유증으로 몸이 좀 아픈 사람들이 되었다.


왜 자유를 수호한 영웅들은 남의 배만 불려주고, 본인들은 그 날의 고통에 사로잡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방황하게 되었나? 그 날, 관이 즐비하게 들어섰던 분수대는 왜 그리도 빨리, 그리고 세차게 물을 뿜어대게 되었나?


바로 영웅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죄책감 때문이다. 침묵했다는 죄책감, 몰랐다는 죄책감, 합류하지 않았다는, 그리고 피흘리지 않았다는 죄책감에, 초라한 행색의 영웅들을 모른 체하고 싶었던 것이다.


영웅들은 자신의 희생으로 쟁취한 자유의 달콤함을 즐기지도 못한 채, 술에 의지하여 평생을 고통 속에 산다. 그들은 한 톨의 자유에도 생색을 내지 않는데, 그들 덕에 권리를 찾게 된 우리들은 그들을 잊고 산다. 때문에 소년은 그렇게 사람 사이에 불쑥 나타나, 자신을, 영웅들을 잊지 말라고 한다.



소년이 온다.
시류에 편승한 사람들 앞으로,
1980년 5월의 소년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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