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시작이 어려웠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울컥 대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에서 늘 멈췄다. 중간은 머릿속에서 좀 꺼내 달라 아우성인데 시작이 문제였다. 내게 시작은 반이 아니라 거의 전부였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이유를 대기 위해선 먼저 사랑하는 이유를 이야기해야 했다. 쉬이 행해지는 일이 아니지만 시작해야만 했다. 알을 깨고 나는 사랑한다고 말해야만 했다.
그것이 내가 시작하는 이유이다.
사람들은 나라는 사람을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나에 대해 잘 몰랐다. 아마 거의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 놓고 하는 말은 "내가 워낙 기억력이 안 좋잖아. 이해해주라. 나 그래서 남자 친구(여자 친구)한테도 매일 혼나ㅠㅠ" 본인이 세심하지 못해서 섭섭한 건 나인데, 왜 내가 상처까지 받아가면서 이해해야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갔다. 나는 매일 기억 못 해서 연인에게도 혼나니까 너는 그냥 알아서 이해해라? 넌 언제 헤어질지도 모르는 그보다 나를 몇 배의 시간을 더 알아왔는데? 이런 식의 반복되는 대화 신물이 났다. 가끔 연락이 오면 온갖 어두운 이야기들, 불안정한 미래, 침침한 고민들을 늘여놓고 난 또 열심히 같은 질문에 그가 원하는 같은 대답을 해주며 영혼까지 빨렸다.
사람들은 종종 내 존재에 힘을 얻곤 했다. 본인들은 부인하지만, 난 안다. 뒤쳐져있어 보이는 내 모습에 어찌 됐던 힘을 얻는다. 일자리도 없고, 연인도 없고, 집도 없고, 차도 없는 나를 보며 본인은 나름 잘 살고 있는 거였구나 싶어 약간의 기분전환이 된다. 이런 식으로 힘이 되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러곤 그들은 꼭 나에게 밥을 사준다. 그러면서 꼭 하는 말. 이거 얼마나 한다고. 커피는 네가 사면 되잖아. 참나, 나도 비싼 밥 사주고 싶고, 커피도 빵도 다 사주고 싶은데 왜 매번 이런 거지? 이거 데자뷔인가? 하지만 결제 단계에서 실랑이하고 싶지 않기도 하고, 돈을 보내는 것도 괜히 구질구질한 자존심 세우는 것 같아 그냥 얻어먹어버리고 만다. 동정과 의무, 그리고 사랑은 약간 다르다.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 때론 같은 바탕 위에 이루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미세한 다름을 느낄 수 있다. 내가 받은 대부분의 식사는 동정이었고, 버는 사람이 내야지 하는 의무 같은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난 비참했다. 안 그래도 쭈그러진 마음이 더 꽉 쥐어졌다. 이 모든 마음은 내 크기가 작기 때문일 것이다. 준 것은 잊고 받은 것만 생각하자고 몇 번이나 되뇌었는데도 그게 가장 어렵다. 준 것도 없이 받은 동정만 가득해서일까.
며칠 전 오랜만에 연락이 된 친구는 말했다. 언제나 응원하고 있다고. 네가 어디서 뭘 하던 변함없이 응원한다고. 아야. 아팠다. 내가 어떻게 무엇을 버텨가면서 간신히 살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대체 뭘 응원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어서, 그래서 많이 아팠다. 우리 사이에서까지 이런 틀에 박힌 뻔한 문장들에 난 자주 다치고 멍들었다. 우리 사이라는 게 이런 거라면 없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팠다.
내 친구들은 세 갈래로 나뉜다. 표현에 인색하다 못해 짜디 짠 A 유형과, 흘러넘쳐 다 담지도 못하고 흘려보낼 수밖에 없는 B 유형과, 그 중간에서 노력하는 C 유형. 세상의 모든 사람이 이렇게 나뉘었던가.
나 : 고마워!
A : 응답 없음
나 : 사랑해!
A : 잘 지내?(쑥스럽고 민망해서 화제 돌림)
나 : 짠! 선물이야!
A : 반응 없음. 혼자 고마워할 것으로 예상.
나 : 고마워!
B : 나도 너무 고마워!!!! 덕분에 힘이 되는 하루였어. 많이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어.
나 : 사랑해!
B : 내가 더 사랑해!!!!!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을 너에게 주고 싶어!(느낌표가 없으면 안 됨)
나 : 짠! 선물이야!
B : 고마워!!!! 완전 감동이야. 나도 사랑을 마구마구 줄 거야!!
나 : 고마워!
C : 네가 내게 해 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걸.
나 : 사랑해!
C : 오래 보자 우리. (사랑한다는 말은 듣기 힘듦)
나 : 짠! 선물이야!
C : 지금 나 하나도 안 기뻐 보일 수도 있는데 표현에 서툴러서 그래. 너무 행복하고 고마워.
여기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C 유형이다. A와 C는 둘 다 표현을 어려워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노력의 차이가 있다. A들을 볼 때면 돌과 교류해도 이보다는 격정적이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지만, C는 서툰 게 아니라 용감한 것이라고 감히 정의하고 싶다. 고민 끝에 어렵게 내뱉은 그 말들은 나를 더 충성스럽게 만든다. 서툴다와 용감하다가 반대어가 아니고 우정과 충성이 유사어가 아님에도 그걸 성립시키는 이들이 그들이다. 그렇다면 B는 어떤가. 사랑이 넘치다 못해 난무하는 그들은 종종 그 사랑을 주체하지 못한다. 내뱉은 사랑을 책임질 수 없다면 자중하는 것이 좋다. 몇 번이나 그들의 사랑에 높이 높이 붕 떴다가 쿵, 하고 떨어졌다. 사랑의 크기가 크고 높을수록 떨어지는 데에 가속도가 붙었다. 많은 사랑엔 더 많은 대가가 따른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하지만 난 여전히 당신을 사랑한다. 나에 대해 늘 잊어버리지만 지치지도 않고 묻고 또 물어봐주는 당신을, 어떤 마음일지라도 나와 마주 보고 식사를 하고 든든한 한 끼를 챙겨주는 당신도, 무조건적인 응원으로 나에 대한 신뢰를 표하는 당신도, 그 자리에 가만히 우직하게 있는 돌 같은 당신도, 사랑에 베일지언정 주저하지 않는 당신도, 솔직한 노력이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러운 당신도, 모두.
사랑하지 않는다면 쓸 이유가 없다.
어렵다. 사랑엔 이유가 없다고 배웠는데.
상처받는데 익숙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받아도 받아도 아프고 저린 것이 상처다. 내게 있어 모든 관계는 상처로 점철되어있다. 그 속에서 더 단단해진다 싶다가도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또 포기하고 싶어 지게 만든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을 놓을 수가 없다. 그들이 내미는 손을 잡는 건 내 인생에 무조건 반사 같은 것이다. 굳이 이유를 따지자면 이런 단조로운 내 삶에 나타나 생채기를 내고 또 언제든 손을 내밀어 주었기에.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 그저 이런 게 사랑이구나 짐작만 할 뿐.
정정한다. 우리 사이라는 게 이런 것이라면 몇 번을 반복해도 기꺼이 겪겠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아, 내가 이 사람에게 이렇게나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이구나. 이 사람은 날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이런 교만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또 심술궂어진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당신이 내게 준 상처들이 그것 때문에 묵인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고맙다거나 미안하다고 하는 건 내게 있어 어려운 일이 아님 역시 알았으면 좋겠다. 1%의 고마운 마음과 99%의 원망하는 마음 중 전자의 것만 전하는 것이 내게는 정말 쉬운 일이고, 딱히 거짓도 아니기에 거북함 역시 없다. 나머지 99%의 마음은 그럼 어디로 갔느냐 묻는다면, 여전히 내 마음에 남아있다. 이만저만 손해가 아닐 수 없다. 매일 적자가 나는 감정을 가지고 한껏 교만해져 있는 당신을 대할 때면 힘에 부치기도 여러 번. 하지만 이런 1%의 마음이 당신을 기쁘게 하고 그 힘으로 다시 나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면 그것은 다시 곧 나의 힘이 된다.
엇, 시작만 했는데도 이만큼이나 써졌다. 역시 내겐 시작이 반 이상이 맞았다. 이제 이 정제되지 않은 투박함을 깨고, 갈고, 어르며 다듬어야지. 그 누구도 어느 모음의 끝에 찔리지 않도록 만들어야지. 그래도 만약 누군가가 찔린다면, 꼭 껴안아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