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3
들레는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이고 여전히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다. 들레와 처음에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특이한 이름이 내 관심을 끌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들레는 뭐랄까. 나와는 정반대의 사람이다. 겹치는 지점이 어느 정도 있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다. 반대가 끌려서 내가 들레와 친구가 된 걸까 싶지만 글쎄, 내가 그것 때문에 들레와 노는 건 아니다. 들레와 나의 다른 점을 나열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한도 끝도 없는지 적어봐야겠다. 분량도 차지하고 좋을 것이다.
*들레와 나의 다른 점
1) 들레는 동생이 많은 K 장녀이고 나는 외동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들레를 보면 든든한 언니 같은 느낌이 든다거나, 들레가 나를 볼 때 저 안하무인의 철부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단지 가족 구성원의 차이일 뿐이다.
2) 이상형 역시 극과 극이다.
이 점은 다행인 부분 중 하나이다. 이상형이 같아서 한 사람을 두고 다투거나 속앓이를 하는 짓은 할 필요가 없었다. 어느 날 들레가 누군가를 보고 외모가 괜찮다고 했는데 전혀 동의를 할 수 없었다. 들레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다.
3) 들레는 이과이고 나는 문과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이후로 우리는 당연히 멀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후로도 계속 같이 석식을 먹었다. 아무래도 친구가 될 운명이었나 보다.
4) 들레는 눈치가 없는 편이고 나는 눈치가 빠른 편이다.
들레가 얼마나 눈치가 없냐면 오후 1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내가 조금 늦어져서 3시쯤에나 도착할 것 같다고 얘기했더니 그 말을 정말로 믿고 그 시간 동안 뭘 하고 있을지 고민했다. 전부터 그랬지만, 이 일이 있고 난 이후로 들레에게는 이런 장난을 더더욱 안치게 됐다.
5) 들레는 말이 많은 편이고 나는 말이 없는 편이다.
그래서 들레의 말을 듣고 호응하는 걸 좋아한다. 다만, 들레는 같은 얘기를 몇 번이나 한다. 취하지도 않았는데....
6) 들레는 자신에 대해 거의 모든 걸 얘기하고 나는 나에 대해 거의 모든 걸 얘기하지 않는다.
들레는 과연 나에 대해 아는 게 있기는 할까...?라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근데 이건 들레뿐만 아니라 엄마 아빠를 포함한 모두에게.... 나는 어디에도 내 얘기를 안 하는 못된 습성이 있다.
7) 들레는 고양이를 싫어하고 나는 고양이에 환장한다.
엥... 이런 것까지...? 아직 7번인데 벌써 고갈되면 어떡하지. 하지만 고양이를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는 거람.
8) 들레는 맥시멀리스트에 가깝고 나는 미니멀리스트에 가깝다.
그래서 들레가 자꾸 사다 주는 선물들이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중이다. 이번에는 나를 위해 반려 돌을 구입했다고 한다. 그 돌.... 자연으로 되돌려 놓아도 되는 걸까....?
9) 들레는 약속이 많고 나는 약속이 없다.
근데 그 약속에 가끔 나를 데리고 가려고 할 때,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덕분에 들레의 친구들과 실제로 자주 만나서 놀았고, 심지어 이십 대 초반엔 같이 토익학원도 다녔었다. 최근엔 들레의 회사 동료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다. 이런 나 사실은 즐기고 있었을지도....?
10) 들레는 자산이 많고 나는 없다.
정확한 자산은 사실 알 수 없지만 들레는 빨리 취업했고, 정확히 뭘 하는지는 몇 번을 들어도 잘 모르겠지만 이과 계열의 기술이 필요한.... 아무튼 돈을 잘 벌었고, 쉬지 않고 일했고, 집도 있고 차도 있고 다 있다. 나는 그 반대라고 보면 된다.
11) 들레는 외형이 자주 변하고 나는 거의 변화가 없다.
이십 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들레를 만날 때면 매번 현란한 머리색과 머리길이, 머리스타일의 변화를 보여주었고, 어느 날은 빼빼 말랐다가, 또 어느 날은 벌크업을 했다가, 또 다른 날은 팔뚝 살이 어마어마하게 쪘다며 가리기 바빴다가, 또 어떤 날은 바디프로필을 찍어 완벽한 몸매를 자랑하며 나타났다. 그에 비해 나는 들레를 만난 그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비슷한 스타일에 10년 이상 거의 동일한 체중을 유지하고 있다.
12) 들레는 잘 떠나고 잘 정착하지만 나는 상당히 머뭇거리는 스타일이다.
괜히 들레라는 이름을 가진 게 아니다. 민들레 홀씨처럼 미련 없이 멀리멀리 날아갔다가 금세 어느 한 곳에 정착해 꽃을 피워낸다. 물론 들레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들이었겠지만 보통 이상의 추진력을 갖고 있는 듯하다. 거지 같은 두 번째 회사를 관두고 훌쩍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오질 않나, 쉴 때 확실히 쉬자는 주의를 갖고 또 바로 호주 여행을 다녀오질 않나, 내가 타지에 있으면 이것저것 재지 않고 "나 그럼 거기 놀러 가도 돼?"라고 묻고 당장 오질 않나, 내가 추천했던 관광객들은 잘 가지 않는 유럽의 어떤 소도시도 기꺼이 다녀오질 않나,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안 나온다. 나였다면 환율을 따지고, 상황을 따지고, 날씨를 따지고 따지고 따지고 한참을 따진 뒤에 결정을 내릴지 말지 또 고민했을 것이다.
쓰다 보니 들레와 왜 친구가 되었고, 여전히 친구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없는 부분을 동경하는 게 아닐까. "쟤는 왜 저럴까" 싶을 정도로 안 맞는 부분이 더 크더라도 어떤 마음 하나로 긴 세월을 붙들 수 있을 만큼 서로에게 애틋한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아주 작은 동경이 서로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게 만들지도 모른다. 들레와는 10년 뒤에도 여전히 가장 친한 친구였으면 좋겠다. 당연히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조금씩 이해하며 친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