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준비

20251128

by 고요

어제저녁이었다. 이모에게 연락이 왔다.

"할머니가 의식이 없으셔."


숨은 쉬는데 깨어나질 않으신다고. 4남매 중 막내인 엄마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을 터뜨리고, 외삼촌은 "울지 마라. 울지 마라. 울면 미련 남아 좋은 곳 못 가신다."라며 오빠 같은 모습을 보인다. 연세가 많은 할머니가 편찮으시게 된 뒤로 항상 염두하고 있던 일이지만 막상 나중의 일일 거라고 걱정은 뒤로 미뤄뒀었는데 코 앞에 닥쳐오니 정신이 없었다. 장례를 처음 치르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어른의 죽음이라 당연히 제정신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아직 돌아가신 건 아니니까, 할머니 얼굴을 보러 가야 할 테니까, 날 보고 싶어 하실 테니까 급하게 씻었다. 샤워를 하면서 이렇게 많은 눈물을 흘려본 게 언제였던지도 모르겠다. 처음이던가. 다 씻고 나가면 혹시나 안 좋은 소식을 듣게 될까 봐, 일부러 천천히 더 꼼꼼하게 씻었다. 로션도 평소보다 더 느릿하게 바르고, 괜히 젖은 머리카락에 에센스 발라 깔끔하게 빗어도 보고. 그래도 멈추지 않는 눈물에 세수도 몇 번이나 더 해보고. 다행히 나간 화장실 밖 세상은 씻기 전과 그대로였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게 맞는 건가. 불행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할머니가 의식이 없다는데.


안 그래도 정신없을 외삼촌에게 어떤 상황이냐고 닦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잠자코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4남매 중 우리만 멀리 떨어져 살아서 당장 갈 수도 없었다. 병원은 잘 도착했는지, 검사 결과는 나왔는지 어떤 상황인지 알고 싶었지만 그저 잠자코 기다렸다. 각자 할 일을 하려 했지만 일단 손에 잡히지도 않았고, 누군가는 생명이 꺼져가는데 나는 생명을 이어가는 행위를 한다는 게 좀 그랬다. 아닌 걸 알면서도 그랬다.


11시가 조금 넘어서 외삼촌에게 전화가 왔다. 구급차를 불러서 인근의 병원에 갔지만 자리가 없어서 울산에 있는 병원으로 왔다고. 할머니는 지금 중환자실에서 알 수 없는 수액들을 주렁주렁 달고 계시며 여전히 의식은 없다고. 아직은 내려오지 말고 기다리라고. 이모에게도 전화가 왔다. "엄마~ 딸내미 왔다." 했더니 눈물을 주르륵 흘리시더라고. 그럼 귀는 들리는 건가? 의식이 없는 게 아니라 정말 정말 깊게 주무시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잠에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잠이 오려나? 잠이 오는구나 하면서 잠에 들었다.


다음 날 검사 결과는 뇌출혈이라고 했다. 최근 다리에 엄청 커다란 멍이 든 것도 이와 관련이 있으려나. 의학적 지식이 없으니 뇌출혈에 대해 검색해 봤다. 뇌출혈. 뇌출혈 노인. 뇌출혈 의식 없음. 할머니는 특히 좋지 못한 부위인 데다가 연세도 많으시고 애초에 몸이 많이 안 좋은 상태라 수술은 모두에게 힘든 일일테고 일단 시술을 해보기로 했다. 중환자실에 계시기 때문에 하루에 딱 한 번 만날 수 있는데, 면회가 길게 되지도 않을뿐더러 한 번에 두 명씩만 가능하다고 하여 시술 보호자 동의서에 싸인을 한 큰외삼촌과 작은 외숙모가 함께 들어가셨다고 한다. 둘 다 하고픈 말이 많았을 텐데 서로의 존재가 겸연쩍어 애꿎은 할머니 손만 양쪽에 하나씩 꼭 붙들어 잡고만 있다 나오셨다는데 그 마음이 어떤 걸지 너무도 알겠어서 마음이 아팠다. 오늘 내 사촌오빠와 사촌동생이 그러고 있었을 테고, 내일은 이모와 사촌이, 이틀 뒤엔 나랑 엄마가 그러고 있을 게 눈에 훤해서.


할머니는 여전히 이상한 것들을 달고 잠만 주무시고 계신다. 이게 우리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기다려주는 건지, 아니면 푹 주무셨다가 아무렇지 않게 개운한 마음으로 함께 집에 돌아가려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뭐가 됐든 우리는 할머니를 너무 사랑하니까 각자 한 손씩 꼭 쥐어 잡고 밖으로는 쑥스러워 못할 말들을 꾹꾹 눌러 담아본다. 할머니가 들을 수도 있으니까 울지는 않고서. 씩씩하게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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