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구지 못한 마음 하나

부끄러움의 찌꺼기

by 고요정



[에세이 & 시] 떨구지 못한 마음 하나


책상 서랍 깊은 곳에서 꼬깃꼬깃해진 메모 하나를 꺼내왔습니다. 그 속에 적힌 글자들은 하나같이 "부끄럽다"라고 아우성치고 있었습니다. 차라리 지우고 싶어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지만, 지우개 똥처럼 뭉쳐진 것은 종이 위의 흑연이 아니라 내 마음속 찌꺼기들이었습니다.

젊은 날, 나는 윤동주 시인의 그 맑고 결이 고운 시심(詩心)을 닮고 싶었습니다. 그가 바라보았던 '하늘과 바람과 별'을 나도 우러르며, 내 안의 텃밭을 보석처럼 귀하게 가꾸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거울 속에 비친 나는 시인이 되기는커녕 생활의 때가 묻은 찌꺼기만 가득한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오르고 싶은 정상은 여전히 저 높은 곳에서 나를 부르는데, 나는 자꾸만 비탈길에서 미끄러집니다. 낙상하고 부딪혀 무릎은 깨지고, 가슴엔 굳은살 대신 상처만 겹겹이 쌓였습니다. "나는 안 되는구나, 여기까지구나." 하는 절망감이 엄습할 때면, 윤동주의 시집을 펼치는 일조차 죄스러워 황급히 덮어버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일입니다.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뚝뚝 떨구는 그 비참한 순간에도, 단 하나, 마음만은 바닥으로 떨구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가야 하는 길이 남아서일까요. 아니면 내 안의 사랑이 비록 떫고 설익었을지언정, 거짓은 아니기 때문일까요. 다 익지 못한 사랑이라 해서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윤동주가 그토록 부끄러워했던 것이 시대를 향한 양심이었다면, 내가 느끼는 이 부끄러움은 아직 포기하지 못한 나의 꿈에 대한 예의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다시 펜을 잡습니다. 찌꺼기가 보인다는 것은, 아직 내 영혼이 맑아지고 싶어 한다는 증거일 테니까요. 비록 시인의 텃밭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상처 입은 채 싹을 틔우는 이 투박한 텃밭도 나의 것이기에.

나는 오늘 부끄러움을 안고, 다시 펜을 들어 마음을 적습니다.


[부끄러움의 찌꺼기]


부끄러워

차라리 지우고 싶었다.


지워도 다시 돋아나는 기억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이 되었다.


오르고 싶은 정상은 아득한데

딛는 걸음마다 미끄러지고 부딪혀

쌓이는 것은 상처뿐이다.


아직도 가야 하는 길

아직도 놓지 못한 소망

아직도 부여잡은 끈,

나의 다 익지 못한 사랑아.


고개는 떨구어도

눈물은 떨구어도

끝내 이 마음 하나는

떨구지 못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