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할머니의 좌충우돌 국제가족 생존기

영어는 적, 김치는 무기

by 고요정


K-할머니의 좌충우돌 국제가족 생존기: 영어는 적, 김치는 무기


프롤로그: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태평양을 건너온 지 몇십 년. 여권에는 미국 시민권자라고 찍혀 있지만, 내 혀는 여전히 한국어만 편하다. 영어는 내게 옷과 같다. 밖에 나갈 땐 억지로 입지만, 집에 들어오면 벗어던지고 싶은 불편한 정장.


우리 집은 UN 총회장이다. 푸른 눈의 남편, 한국계 딸들, 그리고 이제 곧 태어날 혼혈 손주까지. 가족 모임 때마다 나는 동시통역사가 된다. 아니, 되어야 한다. 하기 싫지만.


오늘도 나는 두 개의 언어, 두 개의 문화, 그리고 하나의 정체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1장: 아침은 영어 폭격으로 시작된다


남편은 아침형 인간이다. 눈을 뜨자마자 엔진이 풀가동된다. 문제는 그 엔진이 영어로 돌아간다는 것.


"Honey, did you sleep well? I was thinking about our financial situation. You know, the electricity bill came in yesterday and it's 15% higher than last month. I think we need to reconsider our usage patterns. Also, I applied to three more jobs today. One of them looks really promising. It's a senior position at a tech startup. They use AI integration, which is ironic because AI took my last job, but anyway..."


아침 6시 30분. 나는 이불속에서 신음한다.


"응..."


'응'은 마법의 단어다. 모든 대답이 될 수 있다. Yes, No, Maybe, I don't care, Please stop talking. 남편은 내 '응'의 뉘앙스를 구분 못 한다. 나는 그걸 악용한다.


"So what do you think? Should I apply?"


"응응."


"Great! I knew you'd agree!"


나는 아무것도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단지 영어를 듣기 싫었을 뿐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피신한다. 화장실은 내 성역이다. 유일하게 영어가 침투하지 못하는 공간. 변기 뚜껑에 앉아 핸드폰을 꺼낸다. 네이버 뉴스. 한글의 천국.


"배우 김 OO, 10살 연하와 열애설"

"주식 폭락, 개미들 '멘붕'"

"이 과일 하나로 10kg 감량 성공"


아, 한글. 내 눈이 살아난다. 뇌세포가 깨어난다. 영어는 나를 반쯤 잠들게 하지만, 한글은 나를 완전히 깨운다.


남편이 문을 두드린다.


"Honey, are you okay in there? You've been in for 15 minutes."


15분? 벌써? 한글은 시간도 빨리 가게 만든다.


"Yes! Belly problem!"


배탈은 만국 공통 핑계다. 남편은 더 이상 묻지 않는다.


2장: 둘째 딸의 코드 스위칭 곡예


부엌으로 내려가니 둘째 딸이 이미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 재택근무하는 딸은 파자마에 헤드폰을 낀 채 화상회의 준비 중이다.


"엄마, 나 오늘 진짜 die 할 것 같아. Boss가 완전 미쳤어. Deadline을 갑자기 당겼다고. I mean,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So unreasonable 하잖아! 나 오늘 meeting 다섯 개야. FIVE! 그리고 presentation도 prepare 해야 하고. I'm literally gonna collapse."


딸의 코드 스위칭은 예술이다. 한 문장에 한국어와 영어가 물감처럼 섞인다. 나는 가끔 딸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헷갈린다.


"힘들겠다. 커피 마셔."


"Thanks, 엄마. 그나저나 언니가 어제 텍스트 보냈는데, baby name을 Noah로 정했대. 나는 '준서'를 suggest 했는데 사위 오빠가... 아니 brother-in-law? 아 씨, 뭐라고 불러야 돼?"


"그냥 사위라고 해."


"근데 사위라는 게 너무 한국적이잖아. 영어로 sister's husband라고 하면 너무 길고."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딸아, 엄마도 30년째 네 아빠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남편이 거실에서 소리친다.


"What are you two talking about?"


딸과 나는 동시에 대답한다.


"Nothing!"


'Nothing'은 두 번째 마법의 단어다. 한국어 대화를 차단하는 방패막.


3장: AI에게 밀린 남편과의 동거


남편은 3개월 전 해고당했다. 평생을 컴퓨터 사이언스로 먹고살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컴퓨터(AI)에게 자리를 빼앗겼다.


요즘 남편은 하루 종일 집에 있다. 거실에서 노트북을 열고 구직 사이트를 뒤진다. 가끔 이력서를 수정한다. 가끔 한숨을 쉰다. 가끔 나를 부른다.


"Honey, can you look at my resume? Does this sound good?"


나는 남편의 이력서를 본다. 영어로 빼곡하게 쓰인 경력들. 나는 70%도 이해 못 한다.


"Good. Very good."


"Really? You think the part about 'synergistic cloud integration' is clear enough?"


뭐? 뭐라고? 구름이랑 통합? 날씨 앱인가?


"Yes. Very clear."


남편은 안심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솔직히 말하면 2시간 영어 강의를 들어야 하니까.


남편의 실직은 우리 가정 경제에 직격탄이었다. 이제 우리는 '절대 절약 모드'다.


- 외식? 취소.

- 쇼핑? 중단.

- 여행? 꿈도 꾸지 마.


내 유일한 낙은 책 읽기와 시 쓰기다. 다행히 둘 다 공짜다. 도서관 책은 무료고, 시는 종이와 펜만 있으면 된다.


"여보, 내 취미가 돈 안 드는 거 진짜 다행이야."


"What?"


"Nothing. Very thankful."


남편은 고개를 갸웃하지만 더 묻지 않는다. 그는 내가 가끔 혼자 중얼거린다는 걸 안다. 한국어로.


4장: 김집사님, 내 한국어 생명줄


오전 11시. 핸드폰이 울린다. 발신자 표시: 김집사님.


내 얼굴이 환해진다. 김집사님은 내 한국어 생명줄이다. 그녀와 통화할 때만 나는 완전한 문장을 구사한다. 필터 없이, 번역 없이, 주저함 없이.


"여보세요?"


"언니! 어제 드라마 봤어?"


"당연하죠! 마지막 장면 완전 대박이었어요!"


우리는 40분 동안 드라마를 해부한다. 남자 주인공의 갑작스러운 기억상실, 여자 주인공의 눈물, 악역의 개과천선, 마지막 회의 반전.


"아니, 그게 말이 돼요? 15회까지 멀쩡하다가 16회에서 갑자기 기억 상실이라니!"


"그러니까요! 작가가 약 하셨나 봐요!"


"그래도 저 울었어요. 마지막에 둘이 손잡을 때."


"저도요! 티슈 한 통 다 썼어요!"


우리는 낄낄거린다. 한국 드라마의 막장 전개를 욕하면서도 우리는 매주 빠짐없이 본다. 그게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이다.


전화를 끊고 거실로 나오니 남편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본다.


"You were on the phone for 45 minutes?"


"Yes... church business."


"Church business for 45 minutes?"


"Yes. Very important. We... uh... discuss Bible study."


남편은 여전히 의심스러워한다. 하지만 'Bible study'라는 단어 앞에서는 더 이상 묻지 못한다. 예수님은 만능 방패다.


딸이 옆에서 킥킥 웃는다. 딸은 안다. 엄마가 김집사님이랑 드라마 얘기했다는 걸. 하지만 딸은 공범자다. 우리는 한국어로 공모한다.


5장: 점심은 파스타, 저녁도 파스타


절약 모드의 우리 집 메뉴는 단조롭다. 파스타. 또 파스타. 그리고 파스타.


"How about pasta for lunch?"


남편의 제안에 나는 인상을 찌푸린다.


"Again?"


"It's cheap and filling!"


딸이 끼어든다.


"Dad, 우리 이번 주에만 다섯 번 먹었어요."


"Five? I thought it was four..."


나는 냉장고를 열어본다. 토마토소스 두 병, 파스타면 세 봉지, 그리고 슬픈 양파 하나.


"No pasta. Today, Korean food."


남편의 얼굴이 굳는다. 그는 내 한국 음식의 '빨간 테러'를 안다.


"Korean food? Like... kimchi jjigae?"


"Yes! Kimchi jjigae!"


"But... it's very spicy..."


"Spicy is healthy!"


나는 냉장고에서 김치통을 꺼낸다. 1년 묵은 신김치. 완벽하다. 고춧가루를 듬뿍 넣는다. 고춧가루는 사랑이다. 한국식 사랑은 맵다.


30분 후, 식탁에 빨간 김치찌개가 올라온다. 김이 모락모락 나고, 냄새는 진동한다.


남편은 숟가락을 든다. 조심스럽게 국물을 떠먹는다. 그의 얼굴이 빨개진다.


"OH MY GOD! WATER!"


남편은 물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딸은 낄낄 웃는다. 나는 태연하게 김치찌개를 먹는다.


"Too spicy?"


"TOO SPICY? This is FIRE!"


"First time always spicy. You get used to it."


남편은 눈물을 글썽이며 물을 마신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여보, 이게 한국식 사랑이야. 맵지만 따뜻하잖아.


6장: 푸른 눈 사위, 그는 내 사위인가?


첫째 딸이 결혼을 발표했을 때, 나는 복잡한 감정이었다. 평생 "나 싱글로 살 거야!"를 외치던 딸이 갑자기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그 남자는 푸른 눈이었다.


딸이 그를 집으로 데려왔을 때, 나는 긴장했다. 키 크고, 금발이고, 착해 보이는 청년. 그는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Nice to meet you, Mom!"


Mom. 그는 나를 'Mom'이라고 불렀다. 나는 당황했다. 우리 만난 지 5분도 안 됐는데 벌써 'Mom'?


하지만 딸의 눈빛을 봤다. 딸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웃었다.


"Nice to meet you too."


그는 착했다. 정말 착했다. 딸을 사랑하는 게 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는 내가 요구한 단 하나의 조건을 충족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를 '사위'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냥 '딸을 사랑해 주는 착한 사람'이다. 우리는 공통 기억이 없다. 한국의 명절, 제사, 김장, 설날. 그는 이런 걸 모른다.


가족 모임 때마다 남편과 사위는 영어로 쫙쫙 대화한다. 같은 푸른 눈끼리 통하는 언어들.


"You know what I mean?"


"Absolutely! That's hilarious!"


"Exactly! I was thinking the same thing!"


나는 옆에 앉아 웃는 척한다. 하지만 나는 외계인이다. 그들의 웃음 코드를 이해 못 한다.


딸이 옆에서 속삭인다.


"엄마, 재미있죠?"


"응... 재미있어..."


재미있지 않다. 나는 웃음의 타이밍을 맞추려고 애쓴다. 다들 웃을 때 나도 웃는다. 1초 늦게.


7장: 노아 준서, 내 손주의 이름


첫째 딸이 임신을 발표했을 때, 나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럼 나는 할머니? 60대 중반에 할머니?


현실감이 없었다.


그러다 딸이 아기 이름을 발표했다.


"Noah!"


노아. 성경 이름. 예쁘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


"Korean name! Need Korean name too!"


딸과 사위가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Korean name?"


"Yes! Baby need Korean name! Korean identity!"


나는 단호했다. 내 손주는 반쪽 한국인이다. 한국 이름이 있어야 한다.


"준서! How about 준서?"


사위가 발음을 시도한다.


"Joon... suh?"


"Jun-seo!"


"Jun... say... oh?"


가까워졌다. 나는 만족한다.


결국 우리는 합의했다. Noah Jun-seo. 영어 이름과 한국 이름. 두 개의 정체성.


딸이 물었다.


"엄마, 준서가 무슨 뜻이에요?"


"준은 '뛰어나다', 서는 '길조'라는 뜻이야. 뛰어나고 복 많은 아이라는 의미지."


사위가 감동한 표정을 짓는다.


"That's beautiful, Mom."


그 순간, 처음으로 그가 내 사위처럼 느껴졌다. 아주 조금.


8장: 나만의 은신처, 한글의 세계


집에서 유일하게 온전히 나일 수 있는 시간은 내 방에서 시를 쓸 때다.


문을 잠그고 책상에 앉는다. 노트를 편다. 펜을 든다.


그리고 한글을 쓴다.


*"태평양 사이

나는 아직도 건너는 중

발끝에 닿는 것은

땅도 바다도 아닌

어중간한 떨림"*


한글을 쓸 때, 나는 숨을 쉰다. 영어는 나를 조인다. 문법, 발음, 단어 선택. 모든 게 계산이다.


하지만 한글은 자유다. 생각이 바로 손끝으로 흐른다. 필터가 없다. 번역이 없다. 그냥 나다.


'그리움'을 영어로 뭐라고 하나? 'Longing'? 'Yearning'? 아니다. 둘 다 아니다. '그리움'은 번역되지 않는다. 가슴 한편이 텅 빈 듯한, 그러면서도 달콤한, 아프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은 그 감정. 영어에는 없다.


'한(恨)'은? 'Resentment'? 천만에. '한'은 수십 년 묵은 응어리, 풀리지 않지만 내려놓을 수도 없는 그 무게. 영어로는 표현 불가다.


그래서 나는 한글로 쓴다. 내 정체성은 한글 속에 있다.


남편이 가끔 묻는다.


"What are you writing?"


"Poem."


"Can I read it?"


"No. It's in Korean."


"I can use Google Translate."


나는 웃는다. 구글 번역으로 시를 번역한다고? 그건 꽃에서 향기를 빼는 것과 같다. 형태는 남아도 영혼은 사라진다.


9장: 영어여, 멀어져도 좋다


은퇴 후, 나는 영어를 의도적으로 피한다. 교회 가면 한국인 집사님들과만 논다. 마트 가면 셀프 계산대를 쓴다. 은행 일은 온라인으로 처리한다.


영어를 안 써도 사는 데 지장 없다. 아니, 더 편하다.


문제는 남편이다. 남편과의 대화가 점점 짧아진다.


"Did you eat?"


"Yes."


"What did you eat?"


"Food."


"What kind of food?"


"...Korean food."


"Was it good?"


"Yes."


대화 끝.


나는 더 이상 영어로 긴 대화를 할 기력이 없다. 단어가 안 떠오른다. 문법이 꼬인다. 발음이 부정확하다.


그리고 솔직히, 하고 싶지 않다.


남편은 속상해한다. 가끔 말한다.


"Honey, we need to talk more."


"We are talking."


"No, I mean really talk. About our feelings, our dreams, our future."


나는 침묵한다. 내 감정을 영어로 어떻게 설명하나? 내 꿈을 'dream'이라는 단순한 단어로 어떻게 담나? 내 미래를 'future'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어떻게 이야기하나?


나는 한국어로만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런데 남편은 한국어를 모른다.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언어의 벽. 30년을 함께 살았지만, 이 벽은 점점 높아진다.


가끔 나는 생각한다. 내가 한국인과 결혼했더라면? 우리는 밤새 수다를 떨 수 있었을까? 드라마 보며 같이 울고 웃었을까? 김치찌개 먹으며 "이거 딱 좋다"라고 공감했을까?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남편은 좋은 사람이다. 나를 존중한다. 나를 사랑한다. 다만 우리는 다른 언어로 살뿐이다.


10장: K-할머니가 되는 날


가을이 오면 나는 할머니가 된다. Noah Jun-seo의 할머니.


나는 이미 계획을 세웠다. 손주에게 한국어로 자장가를 불러줄 것이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준서

멀리멀리 할머니가

건너왔단다 너를 위해"*


손주가 알아듣든 말든 상관없다. 내 목소리의 떨림, 내 품의 온기, 그게 전해지면 된다.


나는 손주에게 한국 동화를 읽어줄 것이다. 흥부와 놀부, 콩쥐팥쥐, 해님 달님. 사위는 못 알아들어도 괜찮다.


나는 손주에게 한국 음식을 만들어줄 것이다. 김치찌개는 나중에. 처음엔 미역국, 호박죽, 계란찜. 그리고 아주 조금씩 고춧가루를 늘려갈 것이다.


나는 손주를 통해 내 정체성을 전달할 것이다. 반쪽이라도, 4분의 1이라도, 손주는 한국인이다.


딸이 걱정한다.


"엄마, 사위 오빠가 알아들어야 하는데..."


"괜찮아. 사랑은 언어가 필요 없어."


그건 거짓말이다. 사랑에도 언어가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에필로그: 오늘도 나는 태평양을 건넌다


오늘 저녁, 식탁에 둘러앉았다. 남편, 둘째 딸, 그리고 나.


남편이 딸에게 묻는다.


"How was work today?"


"Busy. My boss is crazy."


그들은 영어로 대화한다. 나는 김치찌개를 먹는다.


딸이 나를 본다.


"엄마, 오늘 김집사님이랑 통화했어요?"


"응, 했어."


"뭐 하셨대요?"


"드라마 이야기."


딸과 나는 한국어로 대화한다. 남편은 우리를 본다.


"What are you talking about?"


"Nothing important."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를 한다. 남편은 거실에서 구직 사이트를 본다. 딸은 방에서 일한다. 나는 내 방으로 올라간다.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편다. 오늘의 시.


*"K-할머니의 하루

영어로 시작해서

한국어로 끝난다

그 사이 어디쯤

나는 존재한다

태평양 사이

나는 아직도 건너는 중

도착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 떠 있음이

어쩌면 나의 정체성"*


창밖을 본다. 미국 교외의 조용한 밤. 저 멀리 한국은 낮일 것이다.


나는 두 개의 시간대 사이에 산다. 두 개의 언어 사이에 산다. 두 개의 정체성 사이에 산다.


그리고 그게 나다.


K-할머니. 태평양을 건너온 여자. 영어 알레르기를 가진 시인. 김치찌개로 사랑을 표현하는 엄마. 곧 태어날 Noah Jun-seo의 할머니.


나는 완벽하게 한국인도, 완벽하게 미국인도 아니다.


나는 그 사이 어디쯤, 떠 있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다.


아니, 충분해야 한다.


[끝]


P.S. 내일 아침에도 남편은 영어로 폭격할 것이다. 나는 '응'으로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한글 뉴스를 볼 것이다. 이게 내 루틴이다. 이게 내 생존법이다. 이게 K-할머니의 일상이다.


무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