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건너간 K-여자의 대환장 스위트홈

k-여자의 회고록 표지 그림 그리기

by 고요정

아이고, 내 팔자야. 커피 한 잔 내려놓고 창밖을 보니 옛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치네요. 태평양 건너와서 산전수전 다 겪고, 이제 은퇴해서 'K-할머니' 소리 들을 때가 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내 인생 가장 큰 프로젝트였던 우리 재혼 가정. 남들은 "와, 대단하세요"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건 뭐 매일이 전쟁터였고 코미디 빅리그였죠.

미국 남편 하나에, 여기저기서 모인 오색찬란한 자식 다섯. 남편이 내 새끼 셋에 전 부인 딸까지 넷을 입양해서 키웠으니, 그 양반도 참 보살이긴 해요. 근데 그 보살님이 만든 우리 집구석 풍경을 지금 와서 그림으로 그려보자면... 이건 피카소도 울고 갈 추상화이자 대환장 파티의 한 장면이죠.

자, 상상력을 발휘해서 제 회고록의 표지 그림을 한번 묘사해 볼게요. 제목은 <폭풍의 언덕... 아니, 폭풍의 거실> 쯤 되겠네요.

[그림 묘사: 태평양 건너간 K-여자의 대환장 스위트홈]

배경은 지극히 평범한 미국의 중산층 거실인데, 온갖 물건이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날아다니고 있어요.


1. 그림 중앙: 태평양 건너온 K-엄마 (나)

저는 거실 한가운데, 마치 폭풍의 눈처럼 서 있어요. 한 손에는 펄펄 끓는 김치찌개 냄비를 (한국인의 매운맛 상징), 다른 한 손에는 코스트코에서 산 대용량 와인잔을 들고 있죠. 머리는 산발인데 표정은 아주 해탈한 부처님 반, "다 때려치울까" 하는 억척 아줌마 반이에요. 입으로는 웃고 있지만 눈으로는 레이저를 쏘고 있죠.


2. 그 옆의 남편 (미국 보살님)

남편은 제 옆에서 아주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어요. 그는 '입양 서류' 더미에 깔려 허우적대면서도, 한 손으로는 무너져가는 집 기둥을 간신히 떠받치고 있죠. 이마에는 "I Love Everyone (난 모두를 사랑해)"라고 쓰인 띠를 두르고 있지만,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잃었어요.

이제 그 주변을 날아다니는 다섯 요괴... 아니, 자식들을 볼까요?


3. 샹들리에에 매달린 첫째 (남편의 입양딸 - 와일드 & SNS 중독)

거실 천장 샹들리에에 거꾸로 매달려 있어요.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을 들고 셀카를 찍느라 플래시가 번쩍번쩍 터져요. 입술은 오리처럼 쭈욱 내밀고 있고요. 그녀 주변에는 '좋아요' 하트 모양 이모티콘이 날파리처럼 윙윙거리고, 옷에는 명품 로고가 덕지덕지 붙어있는데 다 짝퉁 같아 보여요. 밑에 있는 식구들은 안중에도 없어요.


4. 목마 타고 있는 둘째 (남편의 친아들 - 백인우월 & 자만)

이 녀석은 거실 한구석에서 실제 말도 아닌, 아주 높은 장난감 목마 위에 올라앉아 있어요. 거만한 표정으로 턱을 치켜들고 아래를 내려다보죠. 머리에는 자기 머리통보다 작은 'MAGA'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가슴에는 "내가 이 집의 유일한 순수 혈통"이라고 쓰인 훈장을 달고 있어요. 근데 목마 다리 하나가 부러져서 기우뚱한데 본인만 몰라요.


5. 꽃가루 뿌리는 셋째 (나의 첫째 딸 - 해피메이커)

이 난장판 속에서 혼자 디즈니 만화동산이에요. 등에는 천사 날개를 달고 공중부양을 하면서 바구니에서 끊임없이 반짝이와 꽃가루를 뿌려대요. 얼굴은 세상 해맑게 웃고 있는데, 그 꽃가루가 김치찌개 냄비에도 들어가고 백인우월주의 오빠 콧구멍에도 들어가서 재채기를 유발하죠. 혼자만의 세상에서 평화로워요.


6. 내 옆의 미니미 넷째 (나의 둘째 딸 - 나의 거울, 고집)

제 바로 옆에 저랑 똑같은 포즈로 팔짱을 끼고 서 있어요. 표정도 저랑 똑같이 미간에 주름이 잡혀있죠. 겉으로는 강철 갑옷을 입고 "흥! 다 덤벼!" 하는 표정인데, 자세히 보면 갑옷 틈새로 유리 조각처럼 여린 속살이 다 보여요. 고집 세게 입을 꾹 다물고 있지만, 눈가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아요. 제 분신이죠, 뭐.


7. 소파에 드러누운 막내 (나의 막내아들 - 착각 속의 고생)

제일 압권은 이 녀석이에요. 거실 한가운데 최고급 벨벳 소파에 세상 편하게 드러누워 있어요. 옆에는 감자칩 봉지가 터져 있고, 입 주변엔 초콜릿이 묻어있죠. 그런데 표정은 세상의 모든 고뇌를 짊어진 햄릿이에요. 손가락에 아주 작은 가시 하나 박힌 걸 가지고 붕대를 칭칭 감고는, 마치 전쟁터에서 팔 하나 잃은 상이용사처럼 울부짖고 있어요. "아, 내 인생은 왜 이리 가혹한가!" 하면서요.


[회고록의 지혜]

이 그림을 보고 있자니 기가 차서 웃음만 나오네요.

은퇴하고 나서 깨달은 K-여자의 지혜가 뭔지 아세요?

이 난리 통에도 밥은 먹여야 했고, 이 서로 다른 종족들을 한 울타리에 가둬두려면 결국 필요한 건 한국식 '정(情)'과 미국식 '개인주의'의 기가 막힌 비빔밥이었다는 거죠.

속이 문드러져도 김치찌개 한 솥 끓여서 "밥 먹어!" 소리치면 어쨌든 식탁으로 모이긴 했으니까요. 저 그림 속 난장판이 굴러가긴 굴러갔다는 게 기적 아니겠어요? 그게 바로 우리 K-엄마들의 저력이고요.

이제는 저 그림 속에서 빠져나와 멀리서 구경하니, 그 또한 한 편의 시트콤이었구나 싶습니다. 아유, 다시 하라면 절대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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