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깊고 넓은 영토에 대하여: C.S. 루이스와 나의 식탁
오랫동안 부엌에서 불 앞에 서며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맛있는 요리에는 단맛, 짠맛, 쓴맛, 신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하듯, 우리 인생을 채우는 사랑에도 각기 다른 색채와 무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다시 펼쳐 든 C.S. 루이스의 『네 가지 사랑』은 제 부엌에서 끓고 있는 감정들에 명징한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루이스는 가장 기본적이고 본능적인 사랑을 ‘애정’이라 불렀습니다. 저에게 이 사랑은 언제나 어머니라는 이름의 ‘커다란 우산’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당신이 젖으면서도 자식이라는 존재 자체를 묵묵히 덮어주셨습니다. 그 시절엔 그 우산이 당연한 풍경인 줄 알았으나, 이제야 깨닫습니다. 내가 세상의 비바람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그분이 내 인생에 존재하신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이미 완벽한 보호였다는 것을요. 그것은 무언가를 바라지 않는, 존재에 대한 지극한 ‘감상의 사랑’이었습니다.
세 번째 인연인 저의 남편에 대한 이야기는 루이스가 말한 ‘우정’과 ‘에로스’가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을 축복하는지 보여줍니다. 루이스가 중년에 조이를 만나 누렸던 그 축복처럼, 저 또한 남편이라는 존재를 통해 사랑의 확장을 경험합니다. 남편이 나를 위해 얼마나 헌신했느냐를 따지기보다, 내 곁에 ‘누군가를 위해 헌신할 줄 아는 고결한 영혼’이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그것이 저에게는 최고의 경탄입니다. 그는 제 부엌 창가 너머의 풍경을 함께 바라봐주는 가장 다정한 도반입니다.
루이스는 인간의 모든 사랑이 부패하지 않으려면 결국 신적인 사랑인 ‘자비’라는 비가 내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관계 안에서의 갈등과 아픔은 결국 ‘나의 몫’이었습니다. 내가 깊어지고, 넓어지고, 높아진 만큼 사랑의 영토는 확대됩니다. 상대를 바꾸려 애쓰기보다 "우선 나부터" 정성껏 마음을 다듬을 때, 비로소 자비라는 향기로운 양념이 생의 식탁을 완성합니다.
사랑은 타고나는 재능이 아니라, 매일의 끼니를 준비하듯 정성껏 가꾸어가는 ‘준비된 자’의 몫이라는 것을 루이스를 통해 다시 배웁니다. 어머니의 우산 아래서 배운 사랑을 이제는 제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제가 쓰는 시(詩) 속에 담아내려 합니다. 내가 넓어진 만큼, 우리 인연의 식탁도 조금 더 풍성해질 것을 믿으며 오늘도 저는 부엌의 불을 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