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아려본 슬픔] 파일을 열다

C S 루이스의 ‘슬픔’을 읽고

by 고요정

첫 번째 글:[편지] 루이스 선생님, 저는 이제 수레를 붙들던 손으로 심바의 눈꼽을 닦아줍니다

루이스 선생님께,

선생님, 오늘 저는 당신의 서재 한쪽에서 ‘슬픔’이라는 이름의 파일을 함께 넘겨보았습니다. 당신이 아내 조이를 잃고 “면전에서 쾅하고 닫히는 문” 앞에서 절규했을 때, 저 또한 제 인생의 무거운 수레를 붙들고 벼랑 끝에서 버티던 지난날들을 떠올렸습니다.

제 수레 안에는 버거운 상실의 두려움과 책임이라는 짐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래로, 더 아래로 추락하려는 그 수레를 놓지 않으려 저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싸웠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고발하셨듯, 우리가 가장 절박하게 문을 두드릴 때 도리어 빗장이 걸리는 소리를 듣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쥔 것이 너무 많고 우리가 내는 소음이 너무 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비로소 수레를 붙들던 손에서 힘을 툭 빼버렸을 때, 즉 나의 모든 에너지가 고갈되었을 때야 비로소 하나님의 개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관념이 아닌 ‘실재’의 기억이었습니다. 전능하신 인내가 저의 한계를 만나 구원의 궤적을 그리던 그 순간을, 저는 선생님의 글 사이사이에서 다시 발견합니다.

선생님, 저는 이제 수레를 붙들던 그 힘 빠진 손으로 100파운드 거구 심바의 눈꼽을 닦아줍니다. 당신이 잃어버렸던 그 ‘살아있는 실재’를 저는 지금 심바의 보드라운 털과 묵직한 체온을 통해 매일 만지고 있습니다.

밤마다 “잘 자, 잘 자”라고 건네는 저의 인사에 심바가 느릿하게 눈을 껌벅이며 화답할 때, 저는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닫힌 문 너머에 계신 분이 아니라, 이 소박한 상황극 같은 일상 속에 우리와 함께 등을 맞대고 앉아 계신 분이라는 것을요. 선생님의 정직한 슬픔 덕분에 저의 기쁨 또한 이토록 실재가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두 번째 글: [답장] 나의 친애하는 벗에게 (하늘나라 서재에서 온 편지)

나의 친애하는 벗에게,

그곳의 아침은 어떤가요? 당신이 보내준 편지는 이곳 하늘나라 장막 너머까지 따뜻한 온기를 머금고 도착했습니다.

벗이여, 당신은 제가 그토록 고통스럽게 두드렸던 그 ‘닫힌 문’ 앞에서 제가 미처 다 하지 못한 고백을 들려주었군요. 맞습니다. 제가 쾅 닫힌 문소리에 절망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침묵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표현대로 **‘전능하신 인내’**로 저를 지켜보고 계셨던 것이지요. 우리가 수레를 붙들고 미친 듯이 에너지를 쏟을 때, 그분은 우리가 그 헛된 힘을 빼고 당신의 팔에 안기기만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그 통찰에 깊은 위로를 받습니다.

당신의 곁을 지키는 심바의 이야기를 들으니 참으로 기쁩니다. 제가 이곳에서 조이를 다시 만나 깨달은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추상적인 이념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당신이 만지는 심바의 보드라운 털처럼 구체적이고, 눈꼽을 닦아주는 당신의 손길처럼 다정하며, 밤마다 건네는 인사에 눈을 껌벅이는 그 느릿한 응답 속에 실재합니다.

벗이여, 당신은 저보다 훨씬 훌륭한 신학자입니다. 저는 책과 논리로 실재를 증명하려 애썼지만, 당신은 삶의 수레를 내려놓는 용기를 통해 이미 하나님의 ‘상황극’ 안에서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심바의 보드라운 털을 만질 수 있는 당신의 아침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녀석도 아마 눈을 껌벅이며 알고 있다고 답할 것입니다.

인생의 수레를 내려놓고 얻은 그 가벼운 자유를 마음껏 누리십시오. 머지않은 날, 우리 이 하늘나라 서재에서 만나 영원의 평화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눕시다.

당신의 벗, C.S. 루이스로부터

세 번째 글:[에세이 독후감] 전능하신 슬픔, 눈을 껌벅이는 대답

- C.S. 루이스의 ‘슬픔’을 읽고

책을 덮는 순간, 하늘 장막 너머로 일렁이는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이 보였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끊임없이 아래로 추락하는 우리를 보며, 그분은 어떤 마음으로 그 궤적을 지켜보고 계셨을까요.

루이스 선생님에게 아내 조이는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을 넘어, 자신을 이 세상에 살아있게 했던 ‘실재’였습니다. 그 실재를 잃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왜”라는 날카로운 언어의 폭력을 휘두릅니다. 그것은 불신이 아니라 살기 위한 처절한 호소입니다. 저 또한 인생의 무거운 수레를 붙들고 추락하지 않으려 싸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모든 힘을 빼게 되었던 순간, 비로소 하나님의 전능하신 도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저는 그 전능하신 슬픔의 대답을 심바의 눈빛에서 읽습니다. 100파운드가 넘는 거구지만, 세상에서 가장 보드라운 털을 가진 심바. 나이가 들어 눈물과 눈꼽이 늘어난 녀석의 얼굴을 가만히 닦아주는 일은, 제게 가장 경건한 예배가 됩니다.

“잘 자, 잘 자”라고 건네는 밤의 인사에 심바는 그저 눈을 껌벅이는 것으로 대답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던지는 수많은 질문에, 하나님께서도 심바처럼 그저 우리를 지긋이 바라보며 눈을 껌벅이고 계신 건 아닐까요. “내가 여기 있다, 내가 너의 곁을 지키고 있다”는 무언의 대답 말입니다.

슬픔은 전능하지만, 사랑의 실재는 그보다 더 가깝게 우리 곁에 머물러 있습니다. 루이스 선생님의 서재에서 발견한 슬픔은, 이제 우리 집 거실에서 심바의 따스한 온기가 되어 흐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