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과 ㅆ ㅏ ㅎ 임

내 삶의 사계절이 정제되는 과정: 나이 듦이 준 가장 따뜻한 겨울잠

by 고요정




1. 운명처럼 주어진 사계절

삶은 하나의 씨앗에서 비롯된, 그렇고 그런 수많은 생명체 중 하나로 태어나 겪는 운명적인 사계절의 반복이었습니다. 내가 잉태되고 태어나고 자랐던 곳은 그랬습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당연히 존재하는 줄만 알았습니다. 우주가 그런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나의 사계절은 책에 적힌 순서와 달랐습니다. 왜 나의 봄은 춥고 오한이 서렸을까? 왜 봄의 희망은 내게 더 움츠러드는 에너지였을까요? 이처럼 삶의 초반부는 계절의 순리대로 흘러가지 않는 **혼돈의 '쌓임'**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이 듦은 그 혼돈을 겪어온 사람에게만 허락하는 놀라운 '정제'의 시간을 가져다주었습니다.


2. 전쟁 같은 여름, 쌓임의 고독

젊음의 시간, 나의 여름은 무작위의 광란이 춤추는 전쟁터처럼 요란했습니다.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가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오늘 밤을 불태울 때, 저는 끝이 보이지 않는 무사의 춤사위 속에서 내 울타리를 치고 숨어 살았던 나그네였습니다.

이 격렬했던 **'쌓임'**의 시간은 외롭고 고통스러웠지만, 결국 저를 단련시킨 **'광야'**였습니다. 그때 입술이 부르트고 피가 나서 말 대신 눈빛으로 버텨야 했던 경험은, 앞선 글에서 이야기했던 **'침묵의 언어'**를 단련시키는 필살기가 되었습니다. 혼란 속에서 굳은살을 만들고, 불필요한 소음을 비워내는 미학을 배운 것입니다.


3. 가을의 서사시와 고요함의 발견

그렇게 혼란스러운 계절을 지난 후에야 가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가을이 오면 내 눈에는 들길 따라 피어난 코스모스가 내 고향이 되어 주었고, 하늘이 되어 주었고, 나의 서사시가 되었었습니다.

비로소 고요함과 정제됨 속에서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윤동주의 별 하나에 나의 꽃잎을 그릴 수 있는 성숙한 시선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을이 삶을 아름다운 서사시로 만들어준다면, 겨울은 그 서사시를 숙성시키는 시간이었습니다. 폭군이 휘둘렀던 세상도 겨울엔 잠잠했었고, 쌓인 눈으로 세상은 잠시 겨울잠에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그 겨울은 영원하길 바랐던 어린 여자아이의 심장을 안고, 비로소 고요한 어른이 되는 과정이었습니다.


4. 삶의 끝자락, 희망을 읽다

오랜 나그네 길의 끝자락에 다다라서야, 사람에게 봄이란 겨울이 희망을 꿈꾸는 계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고난과 혼돈을 겪어온 삶의 **'쌓임'**이 결국 가장 따뜻하고 정제된 깨달음을 선물해 준 것입니다.

눈가에 이슬이 맺히고 심장에 박힌 수치가 나를 깨우는 순간, 살았다는 게 더 부끄럽다는 고백은 곧 가장 진실한 자기 성찰이자 **'비움의 미학'**의 완성입니다. 이 부끄러움은 삶의 군더더기를 모두 비워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한 통찰입니다. 저는 이처럼 혼돈 속에서 고요함으로 나아가는 '나이 듦과 쌓임'의 지혜를 브런치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