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상으로 피어난 화원, 그 깊은 속내

이름보다 깊은 향기, 당신이라는 화원

by 고요정

***이름보다 깊은 향기, 당신이라는 화원***

살면서 가장 눈부신 풍경은 의외로 화려한 명승지가 아니라, 기억의 구석진 모퉁이에서 발견되곤 합니다.

내게는 고향 집 앞마당이 그랬습니다.


그곳은 계절마다 꽃이 피었지만, 정작 내 눈길을 붙잡았던 것은 흙을 뚫고 나온 식물이 아니라 그 마당을 지키던 사람들의 **'속내'**였습니다.

지금도 가끔 눈을 감으면 툭, 하고 기억의 단추가 터져 나옵니다.

그러면 어느새 내 발목은 유년의 앞마당에 찰랑하게 잠깁니다.

그곳엔 망각의 벼랑 끝에서도 탯줄처럼 질기게 이어진 안색들이 있습니다.

세월의 풍파에 거칠어진 손마디를 가졌음에도, 그때만큼은 수박처럼 붉고 달콤하게 갈라지던 그 얼굴들

여름날의 지독한 열기를 식혀주던 것은 등물을 치던 차가운 우물물만이 아니었습니다.

뙤약볕 아래서도 우리네 입에 들어갈 토마토를 닦아내던 그들의 평온한 챙김, 그 무언의 위로가 내 마음의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주었습니다.

그들은 삶이 비바람처럼 몰아쳐도 기어이 챙김의 꽃잎을 틔워내던 강인한 정원사들이었습니다.


이제 세월은 흘러 그 얼굴들은 생의 기슭에서 노을을 등지고 서 있습니다.

화려한 이름표 하나 달지 못한 채 들꽃처럼 저물어가지만, 그들이 남긴 향기는 세상 그 어떤 명화(名花) 보다 깊고 진합니다.

그것은 소리 내어 생색내지 않는 **'침묵의 기도'**였고, 존재 자체로 바치는 헌신이었습니다.


사람은 가도 향기는 남는다고 합니다.

내 생의 가장 화려한 시절은 당신들의 이름 끝에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지는 저 노을 아래 꽃들이 실은 내 영혼의 가장 깊은 속내를 적셔온 진정한 꽃이었음을, 이제야 고백합니다.

오늘도 내 마음 한편엔 당신들이 가꾼 무명의 화원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그 향기를 맡으며, 나는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무명의 꽃, 그 깊은 속내***


삶이 꽃이라면,

그 뿌리는 분명 누군가의 웃음 속에 박혀 있었으리라.

가물거리는 기억의 단층 너머,

오직 온기 하나로 나를 마중 나오는 얼굴들.


유년의 앞마당, 그 흙먼지 날리던 투박한 공간은

이제 내 영혼이 돌아갈 유일한 성지가 된다.


붉은 토마토의 선연함과

우물물의 투명한 날카로움으로

내 모난 마음의 모서리를 깎고 다듬어주던 손길들.


삶의 무게에 짓눌려 흐드러진 애달픔이었을지라도,

당신들이 끝내 나에게 도착시킨 것은

눈물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워낸 삶의 터였다.


해지는 저녁, 이름 없는 언덕에

그저 묵묵히 저물어가는 당신들.

이름으로 기억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증명되는 사랑.


당신들은 내 생애 가장 고귀한 꽃이며,

그 향기는 이름보다 깊어

오늘도 내 가장 깊은 속내를 적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