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결의 파도를 타는 늙은 서퍼의 노래
김수영은 엽전의 쇳내와 보리밥의 구수한 냄새가 진동하는 **‘객주’**의 뒷골목에서 비로소 민중의 생명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거대한 뿌리’**라 불렀다. 손에 잡히는 투박한 실체만이 역사의 근간이 된다는 믿음이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우리의 객주는 비릿한 삶의 냄새 대신 차디찬 디지털의 파동 속으로 옮겨갔다. 만질 수 없는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매초 쏟아지는 새로운 **‘레몬’**을 강박적으로 베어 물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해 있다. 상큼한 지적 유희를 기대하며 입을 벌리지만, 이내 덮쳐오는 것은 감당하기 벅찬 정보의 시큼한 마비 증상이다.
한때 메타버스라는 거대한 물결이 밀려왔을 때, 진작 올라타지 못했다는 후회가 밀려들 무렵 그것은 이미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그 속도를 바라보는 마음은 아찔하기만 하다. 노트북(Linux) 사용을 욕심내어보기도 하지만, 이내 "나이가 든 나에게 이게 무슨 소용일까"라는 포기가 발목을 잡는다. 특히 양자 에너지와 같은 신지식은 아무리 읽어도 넘기 힘든 거대한 언어의 벽으로 다가온다. 그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시대의 뿌리에서 잘려 나간 ‘뒤처진 존재’가 될 것만 같은 공포, 그 시큼하고 아린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그러나 포기하려던 순간, 이해를 돕는 다정한 기술의 도움으로 신지식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경험은 경이로웠다. 비로소 느껴지는 그 엄청난 상큼함. 모르는 것을 알게 되고, 끊겼던 맥락이 연결되는 지적 희열은 나이라는 장벽을 무색하게 만든다.
노인에게 길을 지탱해 줄 지팡이가 필요하듯, 초연결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자각'**이라는 지팡이가 필요하다. 내가 지금 이 거대한 연결망 속에 숨 쉬고 있다는 자각, 그리고 이 시대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평안하고 여유로운 노년은 고립이 아니라, 이 시대의 흐름을 긍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초연결사회에서 단순히 생존을 꿈꿀 것인가, 아니면 이 파도를 타고 나도 서핑을 즐길 것인가? 답은 결국 자신에게 있다. 서핑을 즐기기 위해서는 학습과 훈련이라는 고된 과정을 기꺼이 통과해야 한다. 레몬의 강렬한 신맛(모호함과 공포)을 견뎌내야만 비로소 그 뒤에 숨겨진 진정한 상큼함(지혜와 여유)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기꺼이 레몬을 베어 문다. 찌푸려지는 미간은 내가 여전히 이 시대의 뿌리에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그 신맛 뒤에 반드시 찾아올 상큼한 도약을 기대하며, 나는 오늘도 초연결의 바다 위에서 나만의 보드를 고쳐 잡는다.
"시린 신맛에 눈을 감을지언정
파도를 버리고 해안가에 머물지는 않으리니
내 손에 쥔 학습이라는 지팡이는
늙은 서퍼를 거대한 뿌리의 심장으로 인도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