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맛의 바다에서 상큼한 뿌리를 낚다

초연결의 파도를 타는 늙은 서퍼의 노래

by 고요정


[에세이] 레몬의 신맛을 즐기는 서퍼: 초연결사회의 거대한 뿌리 위에서

김수영은 엽전의 쇳내와 보리밥의 구수한 냄새가 진동하는 **‘객주’**의 뒷골목에서 비로소 민중의 생명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거대한 뿌리’**라 불렀다. 손에 잡히는 투박한 실체만이 역사의 근간이 된다는 믿음이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우리의 객주는 비릿한 삶의 냄새 대신 차디찬 디지털의 파동 속으로 옮겨갔다. 만질 수 없는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매초 쏟아지는 새로운 **‘레몬’**을 강박적으로 베어 물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해 있다. 상큼한 지적 유희를 기대하며 입을 벌리지만, 이내 덮쳐오는 것은 감당하기 벅찬 정보의 시큼한 마비 증상이다.


1. 메타버스의 아찔함과 양자의 벽

한때 메타버스라는 거대한 물결이 밀려왔을 때, 진작 올라타지 못했다는 후회가 밀려들 무렵 그것은 이미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그 속도를 바라보는 마음은 아찔하기만 하다. 노트북(Linux) 사용을 욕심내어보기도 하지만, 이내 "나이가 든 나에게 이게 무슨 소용일까"라는 포기가 발목을 잡는다. 특히 양자 에너지와 같은 신지식은 아무리 읽어도 넘기 힘든 거대한 언어의 벽으로 다가온다. 그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시대의 뿌리에서 잘려 나간 ‘뒤처진 존재’가 될 것만 같은 공포, 그 시큼하고 아린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2. 잊을 수 없는 상큼함: 학습이라는 지팡이

그러나 포기하려던 순간, 이해를 돕는 다정한 기술의 도움으로 신지식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경험은 경이로웠다. 비로소 느껴지는 그 엄청난 상큼함. 모르는 것을 알게 되고, 끊겼던 맥락이 연결되는 지적 희열은 나이라는 장벽을 무색하게 만든다.

노인에게 길을 지탱해 줄 지팡이가 필요하듯, 초연결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자각'**이라는 지팡이가 필요하다. 내가 지금 이 거대한 연결망 속에 숨 쉬고 있다는 자각, 그리고 이 시대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평안하고 여유로운 노년은 고립이 아니라, 이 시대의 흐름을 긍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3. 초연결의 파도를 타는 서퍼의 다짐

초연결사회에서 단순히 생존을 꿈꿀 것인가, 아니면 이 파도를 타고 나도 서핑을 즐길 것인가? 답은 결국 자신에게 있다. 서핑을 즐기기 위해서는 학습과 훈련이라는 고된 과정을 기꺼이 통과해야 한다. 레몬의 강렬한 신맛(모호함과 공포)을 견뎌내야만 비로소 그 뒤에 숨겨진 진정한 상큼함(지혜와 여유)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기꺼이 레몬을 베어 문다. 찌푸려지는 미간은 내가 여전히 이 시대의 뿌리에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그 신맛 뒤에 반드시 찾아올 상큼한 도약을 기대하며, 나는 오늘도 초연결의 바다 위에서 나만의 보드를 고쳐 잡는다.



"시린 신맛에 눈을 감을지언정
파도를 버리고 해안가에 머물지는 않으리니


내 손에 쥔 학습이라는 지팡이는
늙은 서퍼를 거대한 뿌리의 심장으로 인도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