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어디 있노?

by 고요정

마음

이놈아

어디 있노?



마음을 둔 곳을 잊은 채, 마음을 쫓는 여정

숲에서 들려오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문득 걸음을 멈춥니다. "이놈아, 어디 있노..." 나직하게 내뱉는 이 한마디는 비단 숲 속에서 길을 잃은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아닙니다. 평생을 '내 것'이라 믿으며 살아온 '마음'이라는 녀석을 향한, 가장 가깝고도 낯선 추궁입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마음이 시키는 대로, 마음이 가는 곳을 향해 걸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을 쫓고, 꿈을 쫓고, 안식을 쫓습니다. 하지만 그 긴 추적의 끝에서 마주하는 진실은 다소 허망하고도 서늘합니다. 인생이란 결국 내가 내 마음을 어디에 두었는지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라는 이름의 도망자

어린 시절의 마음은 문간방 문틈 사이에 둔 사탕처럼 달콤한 곳에 있었습니다. 청춘의 마음은 뜨거운 광장이나 누군가의 눈동자 속에 머물렀겠지요. 우리는 그 마음을 지키기 위해 애를 썼고, 마음이 상할까 봐 전전긍긍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니 마음은 단 한순간도 내가 정해준 자리에 고분고분 앉아 있어 준 적이 없습니다. 내가 '여기'라고 믿었던 곳에 마음은 이미 없었고, 마음이 '저기'에 있다고 해서 달려가 보면 그것은 이미 낡은 기억의 허물 뿐이었습니다.


마음을 둔 곳을 모른다는 결론

열심히 살수록, 역설적으로 마음을 둔 곳은 점점 더 묘연해집니다. 자식의 뒷모습에 떼어주고, 일터의 고단함 속에 묻어두고, 지나간 후회 속에 흘려보낸 마음의 조각들은 이제 어디에 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습니다.

"이놈아, 어디 있노"라는 물음은 그래서 슬프지만 정직합니다. 이것은 상실에 대한 한탄이 아니라, 비로소 나의 통제를 벗어난 마음의 독립을 인정하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조차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그 거대한 무력감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인생의 다음 장이 열립니다.


숲에서 들리는 대답

결국 인생의 황혼에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마음을 찾는 법'이 아니라, **'마음을 놓아주는 법'**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어디에 마음을 두었는지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집니다. 특정한 장소나 대상에 묶여 있던 마음의 밧줄을 풀고, 그저 지금 이 순간 숲을 스치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 내 안에서 일어나는 소리에 가만히 응답하는 것임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비록 대답 없는 낙엽만이 쌓여갈지라도, "어디 있느냐"고 묻는 그 목소리 자체가 바로 살아있음의 증거이자 가장 뜨거운 기도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