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er up!" (주문 나왔습니다!) "Behind you!"
대학 시절, 나를 감싸던 공기는 언제나 묵은 책내음과 훈훈한 온기였다.
도서관 서가 사이로 비스듬히 들어오는 햇살 아래서 행간의 의미를 곱씹고, 적당한 단어를 골라 문장을 다듬던 시간들. 그곳은 내게 세상의 소음이 차단된 따뜻한 안식처이자, 정적(靜寂)이 흐르는 평화로운 세계였다.
그러나 낯선 미국 땅, 플로리다에서 마주한 디즈니의 주방은 내가 알던 그 온화한 세상의 문법이 통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곳은 화려한 무대와 환호하는 관중들 틈새에 숨겨진, 거대하고도 **'보이지 않는 세계'**였다. 겉으로 보이는 환상의 세계와 그 뒤편의 치열한 현실 사이에는 아찔할 만큼 깊은 격차가 존재했다.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은 오직 땀과 속도뿐이었다.
"Order up!" (주문!)
책장의 온기 대신 쏟아지는 주문서와 김이 펄펄 나는 냄비들 사이에서, 나는 길 잃은 아이처럼 서 있을 수 없었다. 이 거대한 미로에서 살아남으려면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해야 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그러나 그림자처럼 조용하게.
문학을 공부하던 정적인 손은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빨라져야 했다. 무거운 식재료를 나르고, 뜨거운 불판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가며 나는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런 내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던 걸까. 헐떡이며 주방을 가로지르는 나를 보며 당시 헤드 셰프는 껄껄 웃으며 나를 이렇게 불렀다.
"Hey, Ninja!" (어이, 닌자!)
동양에서 온, 체구 작은 여자가 거구의 요리사들 사이를 휙휙 빠져나가며 일을 쳐내는 모습이 영락없는 닌자 같았으리라. 책장을 넘기던 시인의 손은 그렇게 생존을 위해 칼을 쥔 닌자의 손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별명은 훈장이자, 동시에 나에게 주어진 무거운 미션이었다. 그래, 이 보이지 않는 세계의 질서를 지키는 닌자가 되어보자.
나의 9년, 그 뜨거웠던 디즈니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닌자'라는 이름과 함께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