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 속에서 어린 왕자와 촛불을 켜다
플로리다의 태양이 자취를 감췄다.
뉴스에서는 며칠 전부터 거대한 허리케인이 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창문마다 두꺼운 덧창(Shutter)을 내리고, 마당의 화분들을 집 안으로 들였다.
이윽고 시작된 바람 소리는 짐승의 울음처럼 거칠었다. 야자수들이 허리가 꺾일 듯 춤을 추고, 억수 같은 비가 세상을 집어삼킬 듯 퍼부었다.
정전이 되었다.
집 안은 대낮인데도 동굴처럼 깜깜해졌다. 촛불 하나에 의지해 앉아 있는데, 덜덜 떨리는 창문 소리에 내 마음속 뮤즈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무서워. 이 비바람이 내 정원을 다 망쳐놓을 거야. 겨우 심어놓은 꽃들도, 기껏 말려놓은 마음의 늪도 다시 물바다가 될 거라고."
그녀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날씨 탓이 아니었다. 인생의 시련이 닥칠 때마다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던 과거의 트라우마가 폭풍우를 타고 되살아난 것이다. '행복은 역시 깨지기 쉬운 유리 같은 거야'라는 비관적인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그때, 촛불 그림자 속에서 어린 왕자가 턱을 괴고 물었다.
"아줌마,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로 올라가 본 적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알겠네요. 지금 우리 머리 위엔 아주 두껍고 먹먹한 구름이 덮여 있지만, 그 구름 바로 위에는 여전히 눈부신 태양이 빛나고 있다는 걸요."
"그야 알지. 하지만 지금은 안 보이잖아." 뮤즈가 투덜댔다.
"안 보인다고 없는 게 아니에요."
어린 왕자는 흔들리는 촛불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내 별에도 가끔 폭풍이 불어요. 그럴 땐 그냥 의자를 단단히 잡고 기다려요. 바람이 멈출 때까지, 구름이 지나갈 때까지. 폭풍우는 영원히 머물지 않아요. 그건 자연의 법칙이 아니거든요."
'기다린다.'
그 단순한 진리가 번개처럼 내 마음을 스쳤다.
나는 그동안 폭풍이 오면 그것과 싸우려 하거나, 절망하며 울기만 했다. 하지만 폭풍은 싸워서 이기는 대상이 아니라, 그저 지나가기를 견디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심바를 품에 꼭 안고, 촛불 아래서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바깥은 전쟁터처럼 소란스러웠지만, 덧창을 내린 집 안은 묘하게 고요했다. 우리는 그 어둠 속에서 서로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다음 날 아침, 거짓말처럼 하늘이 개었다.
덧창을 올리자 씻은 듯 맑은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정원에는 나뭇가지들이 부러져 뒹굴고 있었지만, 뿌리 깊은 나무들은 건재했다. 오히려 비를 듬뿍 머금은 초록 잎들이 더 짙게 반짝이고 있었다.
뮤즈가 창문을 활짝 열며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망가지지 않았어. 조금 헝클어졌을 뿐이야."
허리케인은 내 정원을 휩쓸고 갔지만, 내 마음의 태양까지는 끄지 못했다.
나는 이제 안다. 살면서 또다시 비바람이 몰아치겠지만, 그때마다 나는 촛불을 켜고 담담히 기다릴 것이다.
반드시 다시 뜰 태양을 믿으면서.